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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단독 보도의 화려한 부활 [시민편집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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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단독 보도의 화려한 부활 [시민편집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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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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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민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도꾸다이’. 기자들이 단독 보도를 지칭할 때 쓰던 은어로, 일본어 ‘특종’을 지칭하는 ‘도쿠다네’의 한국식 음독이다. 20세기 한국 언론에서 다른 곳에 나오지 않은 단독 보도를 1초라도 빨리 내보내는 것은 지상의 명제였다. 언론사들의 기자 훈련 역시 ‘다른 언론에 없는 내용을 빨리 써 타사를 물먹이는’ 단독 기사를 물신화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단독 보도의 가치는 급락했다. 무엇보다 인터넷 등장 이후 뉴스 흐름의 속도가 빨라졌다. ㄱ매체가 단독 보도를 하더라도, ㄴ매체, ㄷ매체가 이를 인지하고 추가 취재를 거쳐 바로 만회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뉴스 소비의 무게중심이 포털로 옮겨가며 언론의 단독 경쟁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점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독자들은 기사를 볼 뿐, 어떤 언론사가 단독을 하고 이를 몇곳이 받았는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뉴스 가치가 크지 않은 기사에도 ‘단독’이라는 제목을 달아 주목도를 높이려는 언론계의 관행은 뉴스 이용자들 사이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언론의 뉴스 생산 관행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언론사들은 단독 스트레이트 기사가 아닌 분석과 해석 보도 강화에 앞섰다.



그런데 아뿔싸, 세상이 생각보다 다시 빨리 바뀌었다. 한때는 친절한 보도가 중요하다면서, 정책부터 날씨와 요리법 등 각종 정보를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이 역할을 탁월하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검색창에 키워드만 넣으면 맞춤형으로 친절하게 설명이 나오는데, 굳이 관련 해석기사를 찾아볼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해도 넘볼 수 없는 분야는 다름 아닌 단독 보도다. 인공지능은 통계에 기반한 모델이다 보니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내용이 들어간 특종을 요약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람들의 탐문과 증언을 통해 숨겨진 내용을 밝혀내는 탐사 보도 역시 인공지능이 발전을 거듭하더라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영역이다. 이에 향후 언론 보도의 중심은 다시 단독과 탐사 보도로 돌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달 들어 한겨레 지면에 굵직한 단독 보도가 많다. 김건희 특검과 통일교의 더불어민주당 정치인 지원 관련 보도도 그렇고(12월8일치 통일교 ‘민주당 정치인 15명 지원’ 정황, 특검은 수사 안 했다), 문화방송·뉴스타파와 공동으로 취재한 쿠팡의 산재 유족 입막음용 대응 지침 보도(12월11일치 쿠팡 제국의 그늘 3 “유족을 우리 편으로”…쿠팡의 대외비 ‘산재 대응 문건’) 역시 눈에 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이례적으로 신문사와 방송사, 탐사보도 전문 매체가 손을 잡고 쿠팡의 역사와 기업 거버넌스, 인사 구조와 관련한 깊이 있는 기사를 생산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외에도 스포츠 쪽 단독(12월10일치 학폭 맞다…전체 1순위 키움 지명 박준현에 교육청 ‘사과 명령’), 외교·안보 쪽 단독(12월1일치 “군, 계엄 1년 전부터 대북전단 살포”) 보도도 주목도가 높았다. 단독 보도에는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데 고질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한겨레에서 이런 기사들이 나오기까지 몇 안 되는 기자들의 헌신과 성실함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상상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냉정하다. 언론이 기사의 사회적 의의와 맥락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지 않고, 매체의 영향력과 출입처에서 타사와의 경쟁만을 의식하며 ‘단독을 위한 단독’ 기사를 남발한다면 이를 읽는 독자들의 피로감이 증폭된다. 21세기의 단독 기사는 작은 디테일 하나만 추가해 던지고 가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게 왜 중요한가’라는 큰 그림도 보여줘야 하고, 남다른 관점과 깊이가 있어야 한다. 탄탄한 내러티브와 인물들의 생생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인공지능 부장 올레 라이스만은 인공지능 시대 언론이 더욱 노력해야 하는 지점은 플랫폼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소수자의 이야기, 새롭고 예측 불가능한 기사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하버드대 ‘니먼 랩 2026년 저널리즘 전망’ 기고문에서 사람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한다. “기계와 경쟁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 인간적으로 되어야 한다. 갈등을 보여주고, 놀라움을 안겨주고, 의심해야 한다. 뉴스만 설명하지 말고, 우리가 그 뉴스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일하는지 보여주자. 모든 기자가 인플루언서가 될 수는 없지만, 인플루언서 기자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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