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분쟁 새 국면···美측에 2.8조 유상증자 추진
美투자금·차입 통해 JV 세운 뒤
고려아연 지분 10% 제3자 배정
영풍·MBK측 30%대로 떨어져
고려아연, 우호지분 40%대 가능
영풍,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계획
美투자금·차입 통해 JV 세운 뒤
고려아연 지분 10% 제3자 배정
영풍·MBK측 30%대로 떨어져
고려아연, 우호지분 40%대 가능
영풍,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계획
고려아연(010130)과 영풍(000670)·MBK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변곡점을 맞게 됐다. 지금껏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보유 지분이 영풍·MBK파트너스에 밀려 주주총회가 열릴 때마다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미국 제련소 건설을 통해 미국 정부와 투자자를 ‘백기사’로 맞게 돼 향후 주총 표 대결에서는 뒤집기가 가능해졌다는 분석이다.
고려아연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11조 원 규모의 미국 제련소 건설 안건을 통과시켰다. 총투자금만 11조 원에 달하는 이번 사업에 고려아연은 5억 8500만 달러(한화 8600억 원)를 출자하고 미국 정책금융 지원 대출 및 재무 투자자 대출 46억 9800만 달러(6조 9000억 원), 미국 상무부 보조금 2억 1000만 달러(약 3100억 원) 등을 통해 투자비를 조달할 예정이다.
미국 제련소는 아연·연·구리 등 주요 비철금속과 금은 등 귀금속, 안티모니·게르마늄·갈륨 등 전략광물을 생산하는 첨단산업 소재 공급 거점으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려아연은 60여 곳의 후보지를 놓고 검토를 이어간 끝에 기존에 나이스타 제련소가 있는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로 투자처를 정했다.
미국에 통합 제련소를 건설하면 고려아연은 탈(脫)중국 공급망의 핵심 기업으로 위상을 확고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 정부가 투자한 기업인 데다 중국이 무기화하는 희소 광물을 생산하는 만큼 미국의 안보 자산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다만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투자가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 목적이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는 없다. 특히 경영권을 놓고 격돌 중인 영풍과 MBK 연합은 “아연 주권을 포기하는 배신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며 강력 반발했다.
영풍과 MBK가 반발하는 이유는 일반적이지 않은 투자 구조에 있다. 미국 제련소 건설은 현지 생산법인을 세우고 여기에 미국 정부와 기업들이 고려아연과 함께 일정 비율로 출자하면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합작사(크루시블 JV LLC)를 세워 제련소를 건설하면서 합작법인에 고려아연 지분을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넘길 예정이다.
고려아연은 이에 220만 9716주(약 2조 8508억 원)의 신주를 발행할 계획으로 합작법인은 유증 후 고려아연 지분 10.25%를 갖게 된다. 결국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투자자를 대주주로 확보하면서 경영권 방어의 ‘백기사’ 역할을 맡겼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고려아연 측은 “미국 정부 등과 전략적 사업 제휴 구축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영풍·MBK 연합은 이날 곧바로 “사업적 상식에 반하는 경영권 방어용”이라고 반발하며 즉시 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겠다고 맞대응했다. 투자 업계에서는 경영권 분쟁 중 제3자 배정 유증이 적법하지 않다는 판례가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전략적 투자를 위해 추진하는 유증이어서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아울러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 희석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신주를 10% 발행하면 모든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현재 지분율의 90% 수준으로 축소되고 특히 첨예하게 대립 중인 영풍과 MBK 지분율은 단순 계산으로도 현재 44%가량에서 30% 후반대로 감소한다. 반대로 최 회장과 미 정부 등이 보유한 지분을 합친 우호 지분은 40%대까지 오를 수 있다.
이에 따라 내년 3월 개최될 고려아연 정기 주총에서 이사 선임을 위한 표 대결 역시 재차 불꽃이 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1명, 영풍·MBK 측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사진 최대 정원을 19명까지 늘려둔 상황에서 내년 최 회장 측 일부 이사들의 임기 만료를 고려하면 내년 주총 이후 이사회 구도는 9대6 혹은 8대7 정도로 비등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미 정부와 현지 합작법인 설립이 성공하고 유상증자까지 단행된다면 양측 진영의 이사 숫자 차이가 이보다 완만하게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고려아연이 집중 투표제 방식으로 이사를 뽑고 있는 만큼 최 회장 측이 신규 선임할 수 있는 이사들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합작사가 고려아연 유증에 참여해 10%에 달하는 지분을 확보하면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가 한결 수월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성호 기자 junpark@sedaily.com이충희 기자 mids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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