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훈 금융부 기자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칼이 최근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겨냥하고 있다.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 등 사외이사 추천 경로를 다양화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이나 참여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사외이사로 밀어넣겠다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원장은 이전에 "지주 회장이 된 뒤 이사회에 자기 사람을 심어 참호를 구축하는 분들이 보인다"며 군불을 땐 바 있다. 이런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국민 대표 기관'이라며 국민연금과 시민단체 인사를 암시한 것이다.
이 원장의 발언은 이번 정부의 경솔한 태도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국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발언과 행동을 한다. 국민연금을 마음대로 고환율 방어에 동원하거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젊은 층이 해외 투자를 많이 하는 이유에 대해 "쿨하잖아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먼저 '국민 대표 기관'을 이사회에 넣겠다는 표현이다. 이런 명분을 내세울 거면 이사회 참여도 국민 투표를 통해 결정하든가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원장이 언제 국민에게 허락을 구한 적이 있던가. 어디까지나 이 원장 개인의 입장을 마치 국민이 지지하는 것처럼 표현했다는 점에서 나쁘다.
이 원장의 발언과 달리, 국민연금은 '정부 대표 기관'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이며 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부·고용노동부 차관 등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석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정부 입김이 강한 연기금 중 하나다. 이런 곳에서 사외이사를 보낸다면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정부가 지주 인사에 영향을 끼치는 통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관료는 쉽게 국민의 이름을 빌려선 안 된다. 그렇게 국민연금을 여기저기 이용한 결과 국민연금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졌다. 이대로면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취지도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이 원장은 본인의 개혁 의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정부의 영향력 강화를 원하는지, 아니면 진짜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원하는지 말이다.
[안정훈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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