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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버블붕괴 상징'서 '올해 IPO 대어'로···증시 복귀하는 SBI신세이은행[송주희의 일본톡]

서울경제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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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버블붕괴 상징'서 '올해 IPO 대어'로···증시 복귀하는 SBI신세이은행[송주희의 일본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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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행 인수·제4 메가뱅크 목표
금리인상기 예금유치 경쟁 은행권
금융권 통폐합 신호탄될지 주목속
헤지펀드와 소송·지배구조 우려도


일본 거품(버블) 경제 붕괴의 상징이었던 SBI신세이은행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약 12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2025년 일본 최대 규모의 IPO’라는 수식어와 함께 증시에 복귀한다. 이번 상장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일본 전역의 지방은행을 공격적으로 흡수·합병(M&A)해 기존 3대 메가뱅크 체제를 위협하는 ‘제4의 메가뱅크’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으로, 이번 상장이 금융권 통폐합의 촉매제가 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14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오는 17일 도쿄증시에서 거래가 시작되는 SBI신세이은행이 이번 IPO를 통해 24억달러(약 3조 5000억원)를 조달했다고 전했다. 전체 기업 가치는 83억달러(약 12조원)로 평가받았다. 모회사인 SBI홀딩스는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이번에 확보한 자금을 약 100개에 달하는 일본 지방은행들의 구조조정과 인수에 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 채권에 무너져 상폐까지 ‘파란만장’
SBI신세이은행은 1990년대 후반 부실 채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국유화됐던 일본장기신용은행을 전신으로 한다. 이후 2000년 사모펀드에 매각됐다가 2023년 SBI홀딩스에 완전 인수되며 상장 폐지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SBI홀딩스는 당시 장부가 0.5배 수준에 은행 지분을 사들였는데, 이는 경영 상태나 수익성 등을 고려할 때 시장이 회사의 자산가치만큼 값어치를 쳐주지 않고 있었다는 의미다. SBI는 저렴하게 신세이은행을 인수해 2년여 만인 올해 3700억엔(약 3조5000억원)의 정부 구제금융 잔액을 모두 상환했고, 그렇게 재상장 길을 열었다. 재상장 가격은 장부가치를 약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은 SBI신세이은행의 상장이 향후 일본 금융권 통폐합의 촉매제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현재 일본 은행업계는 미쓰비시UFJ, 미쓰이스미토모, 미즈호 등 시가총액 14조~29조엔(약 133조~275조원) 규모의 3대 메가뱅크가 장악하고 있다. SBI홀딩스의 시총은 2조엔(약 19조원)에 불과하지만, 기타오 요시타카 회장은 SBI신세이은행을 중심으로 “지방은행들과의 협력을 통해 거대한 금융 생태계를 구축해 제4의 메가뱅크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오랫동안 제시해왔다. 일본 투자은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메가뱅크가 되려는 야심을 가진 2~3개 대형 은행이 주도하는 지방은행 통폐합이 올해 일본 M&A의 주요 테마가 될 것”이라며 “SBI신세이가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3대 메가뱅크→4대 구도 재편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메가뱅크에 도전하는 것을 ‘엄청난 과제’로 보면서도, SBI가 온라인 증권과 암호화폐 인프라 등 디지털 뱅킹에 강점이 있고 부실 자산(Legacy assets)이 없다는 점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한다. 글로벌 리서치 플랫폼 스마트카르마의 트래비스 런디 애널리스트는 “SBI는 상품 폭이 넓어 더 많은 지방은행 지분을 확보해 산하로 편입시키려 한다”며 “(지방은행 지분을) 저렴하게 확보할 수 있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SBI의 지주회사는 증권·자산운용·보험 부문을 포함하며 9월 말 기준 약 7800만 명의 고객 기반을 보유하고 있다. 신세이은행이 그 중심에 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기조도 이러한 재편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수십 년 만의 금리 상승은 은행의 예대마진을 높여주지만, 고객 기반이 고령화된 지방은행들에게는 예금 유치 경쟁과 실적 압박으로 작용해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번 IPO에 참여한 일부 투자자들은 신세이은행이 규제 당국이 추진해온 약소 은행 통폐합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SBI가 보유한 10개 지방은행 지분을 신세이은행으로 이관하고, 신세이은행이 시장에서 추가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2023년 SBI가 신세이은행을 주당 2800엔(약 26500원)에 완전 자회사화할 당시 가격이 너무 낮았다며 헤지펀드들이 제기한 소송이 진행 중인 점은 불안 요소로 남아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높은 공모가와 함께 SBI가 신세이은행의 과반 지분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지배구조 문제도 우려하고 있어 향후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FT는 지적했다.





IOI로 카타르투자청 등 해외 거액 자금 유치

한편 SBI신세이은행은 이번 공모 과정에서 ‘투자수요 확인(IOI·Indication of Interest)’ 방법을 활용해 카타르투자청, 영국 M&G인베스트먼츠, 미국 블랙록 등 해외 대형 기관투자가를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IOI는기관투자자나 잠재 매수자가 상장 전 주식 매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는 비구속적 의사 표시로 미국, 유럽, 홍콩 등에서는 일반적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례적이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배정 확약보다 부담이 적으면서도 기업 입장에선 장기 투자를 전제로 한 안정적 주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사례가 일본 IPO 시장에 유력한 해외 투자자를 유치하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며 “IOI 정착 여부는 향후 신세이은행의 실적과 주가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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