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대선 결선서 승리…
범죄 증가·이민 문제로 유권자 불안 커져
[산티아고=AP/뉴시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 대통령 당선인이 14일(현지 시간) 칠레 산티아고에서 대선 승리가 확정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강경 보수 성향인 카스트 공화당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압승하면서 칠레에 35년 만에 강력한 우파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2025.12.15. |
14일(현지시간) 칠레 대선에서 강경 보수파 후보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59, 공화당)가 승리했다. 외신들은 카스트가 범죄 증가와 이민 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안감을 발판 삼아 1990년 군사 독재 종식 이후 가장 급격한 우경화를 이끌었다고 짚었다.
로이터 및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이날 카스트는 집권 좌파 후보인 자넷 자라(51, 공산당)와의 대통령선거 결선 투표에서 58%를 득표해 당선이 확정됐다. 자라 후보는 득표율 42%로 곧바로 패배를 인정했다. 이로써 칠레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전 대통령 이후 4년 만에 보수 정부를 맞게 됐다. 카스트의 취임일은 내년 3월11일이다.
이날 늦은 오후 카스트는 산티아고 고급 주택가 라스 콘데스에 위치한 공화당 본부에서 "안보 없이는 평화가 없고, 평화 없이는 민주주의가 없으며, 민주주의 없이는 자유가 없다. 칠레는 범죄, 불안,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승리 연설을 했다. 하지만 "마법 같은 해결책은 없다"며 변화에는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가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아 매우 힘든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카스트가 내세운 공약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결을 같이한다. 그는 미국의 이민세관집행국(ICE)을 본떠 불법 이민자들을 신속하게 구금 및 추방하기 위한 경찰력을 창설할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국경 인근에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했다.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군대를 배치하고, 공공 지출을 대폭 삭감하겠다고도 했다. 9명의 자녀를 둔 카스트는 과거 낙태와 사후피임약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산티아고=AP/뉴시스]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 대통령 당선인의 지지자들이 14일(현지 시간) 산티아고에서 당선인의 연설을 듣고 있다. 강경 보수 성향인 카스트 공화당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압승하면서 칠레에 35년 만에 강력한 우파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2025.12.15. |
카스트의 직전 2021년 좌파 성향의 가브리엘 보리치 현 대통령에게 패배하는 등 두 번의 대선 도전에서 실패했다. 그는 극단적인 인물로도 평가받았지만 칠레에서 범죄, 이민 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칠레는 남미에서 비교적 안전한 국가로 평가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조직 범죄 집단이 뿌리를 내리면서 강력 범죄가 급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베네수엘라 등 해외로부터 갱단이 들어오며 최근 10년 동안 살인율이 2배 이상 늘었다. 불법 이민자수는 2021년 이후 3배로 늘어 33만명에 달한다.
'칠레를 다시 위대하게'(트럼프의 구호를 본땀)라고 쓰인 빨간 모자를 쓴 23세 학생은 로이터에 "나는 평화로운 칠레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평화롭게 다닐 수 없다"고 말했다. 칠레대학교의 정치학자 클라우디아 헤이스는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이었던 일부 지역에서도 카스트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공산당원 하라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감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칠레도 남미의 보수화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앞서 에콰도르의 다니엘 노보아,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가 우파 지도자로 집권에 성공했다. 지난 10월에는 볼리비아에서 중도 성향의 로드리고 파스가 20년가량 지속된 사회주의 통치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카스트의 급진적 공약들은 의회의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칠레 상원은 좌·우파가 동수로 나뉘어 있고 하원도 포퓰리즘 성향의 국민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 여당이 밀어붙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낙태법을 개정하려면 의회 과반수의 지지가 필요한데 여론조사 결과 대다수 국민은 현행 낙태권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파라이소 대학교 교수이자 정치 분석가인 기예르모 홀츠만은 "카스트는 폭넓은 유권자층을 만족시켜야 할 것"이라며 "카스트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모두 그의 당 소속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카스트 당선인은 이날 조직 범죄 등 문제에 대해 야당을 향해 "서로가 필요하다"며 협조를 구했고, 이민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환영하는 나라"라면서 "단지 법을 지켜달라"고 합법 이민자를 차별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한편 칠레는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이자 주요 리튬 생산국이다. 결선 투표 이전부터 차기 카스트 정부 가능성이 커지면서 규제 완화와 시장친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으로 현지 증시와 페소화는 강세를 보여왔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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