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의 제도화…금융사 독립성 침해·이해상충 우려 제기
"스튜어드십코드, 정부의 금융사 지배구조 개입 수단 활용될 수 있어"
국민연금 4대 금융지주 지분율/그래픽=이지혜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최근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을 권고하며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후보를 직접 추천하는 방안을 거론한 데 대해 금융권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원장이 그간 '참호 구축론'을 제기하며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관행을 비판한 만큼, 준정부기관인 국민연금을 통한 관치를 합법적으로 제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지난 10일 8대 금융지주 회장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지배구조 개선 TF'를 이달 중 가동해 개선방안을 도출한다고 밝혔다. 특히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 등 사외이사 추천경로 다양화와 사외이사 임기 차등화 등을 통해 독립성을 갖춘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과 공정한 운영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이는 사실상 국민연금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원장은 기관 투자자가 국민을 대신해 기업의 경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스튜어드십코드'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국민연금 기금운영위원으로서 포스코 등 문제 기업에 사외이사를 추천해야 한다는 안건을 내놨으나 관철되지 못했다.
현재 국민연금의 4대 금융지주 지분율은 △KB금융 8.56% △신한금융 9.10% △하나금융 8.68% △우리금융 6.56%다. 우리금융을 제외하고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다. 다만 KB금융을 제외한 3사는 단순투자 목적이어서 '일반투자'로 투자 목적으로 변경해야 사외이사 추천이 가능하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을 비롯한 금융지주회장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12.10. /사진=뉴시스 /사진= |
금융권에선 사외이사 및 이사회가 이미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준정부기관인 국민연금의 추천을 콕집어 거론하자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4대 금융지주 관계자는 "현재 금융지주의 사외이사는 서치펌을 통한 분야별 전문가 인력풀을 추천받고 있으며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는 사내이사 참여를 제한하고 있고 주요 위원회도 대부분 사외이사만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정부기관의 추천 인사가 어떠한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주주의 사외이사 추천은 받고 있고, 단순 추천권이 아니라 국민연금 추천 사외이사 의무 지정을 언급한 것이라면 부적절하다"며 "현재도 사외이사 임명 여부는 사추위에서 결정하고 있는데 이들은 굉장히 독립적이라 이같은 지침에 쉽게 응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의 정부 개입으로 금융사의 독립성이 침해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사회 구성에 공적 기관의 영향이 직접 반영되면서 자율적 의사결정이 제약될 위험이 있다"며 "투자자들은 정부 의중이 경영에 개입한다는 신호로 해석할 가능성이 농후하며 지배구조 불확실성 확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또 "감독·정책기관의 이해관계가 개입되면 본연의 견제 기능이 약화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원장-금융지주회장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12.10. /사진=뉴시스 /사진= |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와 대기업 등에 국민연금 손이 안 닿은 데가 없지만 그간 연기금 운용 목적에 맞게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며 의결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해왔던 것"이라며 "국민연금이 정부 입김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튜어드십코드는 정부가 금융지주를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최근 정부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김성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발탁한 대목도 금융권은 주목하고 있다.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을 전면에 내세워 금융지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 있어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과연 주주를 보호하려는 것인지 지배구조를 마음대로 하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며 "주주 편에 선다면 은행이 이자장사 해서 최대한 배당을 많이 하게 둬야 하는데 이율배반적인 얘기"라고 했다.
이해상충 우려도 제기된다. 4대 금융지주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추천 기관이 되면 사외이사를 통해 피추천 금융사의 주요 경영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며 "정보가 비업무적으로 활용되거나 타 기관과 공유될 가능성이 제기되며, 이는 연기금의 중립성과 금융사 기밀 보호 원칙을 흔들 수 있는 구조적 이해상충 리스크로 평가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8대 금융지주 이사회 의장도 조만간 소집할 예정으로 알려져, 국민연금의 사외이사 선임을 재차 주장할지 주목된다.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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