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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외국인 교통사고…피해자 지원 대책 `절실`

이데일리 박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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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외국인 교통사고…피해자 지원 대책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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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불법 쪼개기 후원' 한학자 전 비서실장 검찰 송치
[외국인 교통사고 피해]①日모녀 관광객 사고 등 외국인 교통사고 피해 매년↑
최악의 경우 유가족 자비 들여 시신 송환 사례 빈번
英·베트남 등 교통사고 대응 기금 활용..외국인도 보상
전문가들 "법률자문 이외 사고 억제할 입법 보완 필요"
[이데일리 정윤지 김현재 염정인 기자] 지난달 9일 오후 8시께 충북 음성군에서는 네팔에서 온 유학생 다칼(22) 씨가 70대 남성이 몰던 트럭에 참변을 당했다. 사고를 접한 유족들은 사고 발생 일주일 만에 650여만원에 달하는 시신 운구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고인을 만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외국인 교통사고 피해가 지속 증가하고 있지만 피해자 지원대책은 미약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뷰티·K푸드 등의 인기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커지는 상황에서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다칼씨의 사례처럼 적절한 초기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우왕좌왕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서 오토바이 운전자가 인도를 주행하고 있다. (사진=김현재 기자)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서 오토바이 운전자가 인도를 주행하고 있다. (사진=김현재 기자)


◇교통사고에 운 외국인, 미흡한 피해 지원에 또 운다

14일 이성권 의원(국민의힘)실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3년 1579명이던 외국인 교통범죄 피해자는 지난해 1718명으로 늘었다. 올해도 8월말 현재 1169명으로 집계됐다. 이 추세대로라면 지난해 수치를 웃돌 전마이다. 2015년 23만여건이었던 교통사고가 2020년 20만건, 지난해 19만 6000여건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외국인 사고는 역주행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지난달 2일 서울을 방문한 일본인 모녀 관광객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50대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이보다 일주일 앞서 강남에서도 한국계 캐나다인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사망 사고가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외국인 교통사고는 빈번하다.

지난 3월 오후 보행자 신호에 길을 건너다 차에 치였다는 중국인 유학생 차오위(32) 씨는 “한국은 차량 속도가 빠른 것 같다”며 “사고 이후부터는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피면서 걷는다”고 했다. 지난 1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우회전 멈춤을 지키지 않은 트럭에 치인 몽골인 유학생인 A(24)씨도 “안전한 국가라 생각해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는데 손목과 어깨를 다쳐 수술을 받고 열흘쯤 입원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들이 사고를 당한 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부분 경찰서에는 ‘교통사고 피해자 지원 전담 경찰관’이 별도로 없다. 자동차보험 등을 통해 처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어가 서툴고 교통사고 처리 방식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부족한 외국인들의 경우 자신이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9월 미얀마 국적의 유학생 링곤(가명·25)씨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택시에 부딪쳤다. 이후 링곤씨는 의료비를 배상받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어도 서툴렀지만, 택시 기사가 “사고 기록이 많아서 추가되면 일이 끊길 수 있다”며 보험사 없이 개인적으로 배상하겠다고 해서다. 그는 유학생 지원 기관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적절한 배상을 받았다. 이삼성 울산외국인센터 센터장은 “상대방 과실로 난 사고여도 외국인이니까 덮어 씌우기도 한다”고 전했다.


고민석 법률사무소 KL 변호사는 “소통의 어려움이 있다 보니 보험사의 보상 절차가 지연되거나 다소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처리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6개월 이상 걸리는 소송 절차를 감당하기 어려워 유가족들이 민사소송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그래픽= 문승용 기자)


◇“외국인 지원 강화하고 교통사고 처벌 수위 높여야”


이 때문에 교통사고 피해를 입은 외국인의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외국에서는 외국인 교통사고 피해자 지원 제도를 운영하는 추세다. 영국은 ‘MIB’라는 보증기금을 통해 무보험 운전자나 뺑소니 고의 경우에도 조건에 따라 피해자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도 보상이 가능하다. 베트남도 이달부터 ‘자동차보험기금’을 시행해 인도적 보상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다. 베트남의 기금도 외국인도 보장받을 수 있게끔 설계돼 있다.

양태정 한국외국인법률지원센터 센터장은 “가해 운전자가 무보험이거나 보장 한도가 낮은 경우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하지만 외국인에게는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며 “이들이 현실적으로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현실”이라 지적했다.

이와 함께 구조적으로 교통사고 감소를 위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우리나라 음주운전 처벌이나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수준은 주요 선진국보다 낮다. 음주운전은 2019년 ‘윤창호법’ 시행으로 단속 기준이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화했지만 처벌은 집행유예 등으로 미약했다는 지적도 있다. 범칙금 수준 역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0.2%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이 최소 0.26에서 최대 3.61% 수준으로 규정한 데 비하면 낮다.

교통사고 전문 김경환 변호사(법무법인 위드로)는 “교통사고의 경우 재범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며 “벌금이나 집행유예 정도로만 그칠 게 아니라 형법상 벌금과 짧은 기간 구류 등을 함께 선고하는 것도 고려하는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