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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연장, 질질 끌었다? 국민 안전 걸렸는데 실제 심사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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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연장, 질질 끌었다? 국민 안전 걸렸는데 실제 심사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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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용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이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진재용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이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제가 ‘질질 끌었다’는데, 실제 심사 시간이 겨우 6시간 정도예요. 월성1호기 때보다도 적어요.”



국내 ‘최장수 원전’ 고리2호기의 수명연장(계속운전)을 의결한 지난달 13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회의에서, 재적 위원 6명 중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진 진재용(43) 위원(변호사)은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원전 수명연장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일임에도 충분한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달 19일 서울 반포동 법무법인 ‘강남’ 사무실에서, 또 최근 전화로 이뤄졌다.



“9월엔 1시간도 못 했어요. 오후 5시에나 상정됐고, 10월엔 종일 다른 심의(사고관리계획서)를 하다 오후 4시 넘어 2시간 했어요. 11월에 3시간 만에 통과했으니 다 해서 6시간이죠. 하루에도 할 수 있는 양이에요.”



원안위는 안전성, 경제성 논란이 인 고리2호기 수명을 2033년까지 7년 연장했다. 9~11월 세차례 회의 동안 보수언론은 원안위가 “지연 전술을 편다”, “멀쩡한 원전을 세우려 든다”고 비난을 퍼부었고 화살은 유일한 ‘반대파’ 진 위원에게 쏠렸다. 진 위원은 현 원안위원 중 유일한, 지금의 여당이 추천한 위원이다.



진 위원은 고리2호기의 방사선환경영향평가를 문제 삼았다. 원자력안전법 시행규칙(20조 2항 2호)이 ‘계속운전을 하려는 경우 운영허가 이후 (부지 특성이나 환경, 계속운전 영향 등) 변화된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그저 현시점 평가만 했다는 것이다. 진 위원은 “처음 이 자리에 원전이 들어선 40년 전과 지금의 환경 변화를 비교하라는 게 규정의 취지”라 했지만, 다른 위원들은 ‘과거 자료가 없다’는 한수원 쪽 손을 들어줬다.



진 위원은 특히 중대사고(노심 손상)를 우려했다. 고리2호기가 스리마일섬 사고(1979년) 등으로 중대사고란 개념이 생겨나기 전인 1978년에 허가받은 원전이기 때문이다. “전력과 물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게 핵심인데, 한수원은 이를 이동식 발전기 같은 이동형 기기로 대비한대요. 고정형 설비는 ‘고장 날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 일리가 있지만, 그럼 큰 지진으로 길이 끊기면 어쩌죠?”



고리2호기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고리2호기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2012년 변호사가 된 뒤 각종 환경·원전 소송을 대리하다 지난해 9월 원안위원(임기 3년)이 된 진 위원이 보기에 원전 안전, 특히 중대사고 문제는 정답이 없다. 지난해 12월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는 조류충돌 가능성을 간과하고 콘크리트 둔덕을 방치한 데서 비롯했다. 원전 안전 문제도 마찬가지다. “‘공학적으로 가능성이 작다’지만 현실에선 후쿠시마 같은 사태가 발생하잖아요. 그러니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접근해야 하고 또 어느 단계에선 누군가 책임지고 결단해야 해요.” 그 일을 맡은 건 바로 원안위인데, 실제 책임지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이번에 수명을 연장한 고리2호기에서 만약 중대사고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질까요? 원안위원장? 비상임위원들? 저처럼 반대한 사람은 책임에서 자유로울까요?”



진 위원이 보기에 원안위는 늘 한수원의 입장을 우선한다. 국내 유일 원전 사업자 한수원 외에 다른 대안이 없으니 “원안위 역사상 수백건의 안건을 다뤘지만 재상정되거나 수정 의결된 안건은 있어도 부결시킨 건 하나도 없다”, “‘이상한’ 위원 한두명이 트집 잡아 늦어질 뿐 안건은 결국 통과되는” 상황이라는 게 진 위원의 얘기다. 향후 5년 내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나머지 9기의 원전들 모두 이번처럼 ‘6시간 심의’만으로 차례차례 수명이 연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기술적 검토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과 원안위 전문위원들의 사전 비공개 심사에서 이뤄져, 정작 원안위 본회의가 소홀한 상황도 문제 삼았다. 수명연장의 심사 기간인 18개월도 대부분 기술원과 전문위 심사 단계에서 쓰인다. 원안위 본회의는 그야말로 ‘최종 관문’인데도, “전문적 검토가 이뤄졌으니 빨리 통과시키자”는 주장이 위원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한다. 7명의 비상임위원을 원전뿐 아닌 다양한 전문가로 두게 한 법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진 위원은 “법적으로 원안위는 심의·의결권이 있다. 의결만 하는 게 아니라 심의도 하는 것”이라며 “자원과 시간, 전문성에 한계가 있지만 그게 법의 취지면 최대한 해야 한다. 유일하게 국민에게 공개되는 회의에서 그저 기술원과 전문위가 잘했으니 통과시키자? 그러면 원안위가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강조했다.



진 위원은 그러면서 “원안위라는 조직을 만든 이유는 원전 전문가들에게 다 맡겨둘 수 없다는 취지”라고 했다. 법률 전문가들도 법의 모든 것을 알 수 없듯 공학도 마찬가지로, 오히려 외부 비전문가 관점이 필요하다는 게 진 위원 생각이다.



“한수원이나 기술원, 원안위 사무처, 전문위원들 판단을 존중하고 노고도 인정해요. 하지만 각자 처한 배경이나 위치 때문에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누구나 그렇기에 원자력 비전공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이나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의돼야 한다는 거죠. 저 같은 사람도 설득 못 하면 국민도 설득할 수 없는 거 아닐까요?”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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