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도 경희대 전자정보대학 특임교수 |
이 대목에서 전국 범용망처럼 5G SA가 선구축되면 AI강국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얼핏 보면 5G SA 구축 조건이 6G와 AI 전환을 촉진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과기정통부는 5G SA를 기반으로 0.001초(1ms) 이하까지 지연시간을 줄이고 하면 로봇 자율주행차, 원격의료 로봇 등 다양한 피지컬 AI 서비스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피지컬 AI는 AI 모델과 기계 제어 그리고 실시간 통신 등이 결합돼 '초저지연' '초신뢰'를 보장하는 것이 필수이기에 맞춤식으로 실시간 판단 제어(real-time control)가 가능하도록 네트워크가 구축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처럼 범용 전국망 구축하듯이 5G SA망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산업별·서비스별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향후 피지컬 AI를 구현하는 데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5G NSA와 5G SA 비교. |
예를 들어 수천개의 센서로 수백대의 로봇이 움직이는 공장이나 물류창고 등에서는 대규모 사물인터넷(IoT) 연결(Massive IoT)과 슬라이싱 기술을 통해 분리된 전용망처럼 공장별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또 멀리 있는 데이터센터를 연결해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면 지연시간이 늘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현장에 가까운 곳에 실시간 AI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연산기능을 하는 '두뇌'를 최대한 현장 가까이 구축한 네트워크 환경 하에서 연산을 현장에 설치된 AI-MEC(Multi-access Edge Computing)로 처리가능해야 피지컬 AI가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상상하는 대부분의 피지컬 AI는 전형적인 기업(B2B)시장 서비스이며 산업용 킬러 서비스다. 따라서 주파수 할당의무로 5G SA 전국망 조기 구축을 강제해 일반 소비자(B2C)시장을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방식으로는 과잉투자를 유발할 뿐이다. 스마트 공장, 물류창고 자동화, 원격 제어와 정비, 로봇 수술 등 피지컬 AI가 산업적 필요에 따라 지역 공단 등지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5G SA의 수요는 점차 확대될 것이다. 즉 피지컬 AI 관련 기업(B2B)시장이 열리면서 통신사들은 5G SA를 기반으로 하는 AI 네트워크 서비스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년까지 5G SA 구축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산업별·사업별 맞춤형 AI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한 것이다.
향후에는 네트워크+엣지AI+플랫폼+운영 등 맞춤형 패키지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업자가 AI시대에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과기정통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AI를 도입하고 싶어도 AI 관련 인적·물적 기반이 없어 도태될 우려가 있는 중소 영세 제조업을 지원하는 것이다. 중소기업까지 AI가 확산되면서 통신사들의 B2B 시장 경쟁이 촉진되면 5G SA 네트워크도 점차 확산될 것이고 그 방향이 바람직하다. SA를 도입한다고 AI가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AI 서비스가 5G SA 등 네트워크 업그레이드를 견인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5G SA의 기술적 준비는 다 되어있는 상태이기에 지금은 소프트웨어(SW) 기반의 AI 모델과 플랫폼 활성화 정책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기존처럼 네트워크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관련 하드웨어(HW)가 활성화되면서 플랫폼과 콘텐츠가 확산되는 생태계 구조는 AI시대에는 구현되지 않을 것이고, 그 반대로 SW 기반으로 한 HW와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이를 지원하는 맞춤형 네트워크가 개발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다.
사업자별 주파수 할당현황. |
하지만 과기정통부의 통신사에 대한 불신이 매우 깊은 듯하다. 그래서 5G SA 구축 의무를 이행하면 할당대가를 할인해 주는 유인책을 썼다고 하지만, 재할당 조건으로 합당한 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재할당 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이용자 보호차원에서 기존 서비스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므로 1년 내 5G SA 조기 구축하다가 서비스 품질이 저하되는 상황을 정부가 더 걱정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는 서비스 품질유지는 통신사들이 알아서 할 일로 치부하고 있는 듯하고, 통신품질평가 규제를 더 강화할 듯한 분위기다.
과거 한국이 5G 세계 최초 상용화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 4G 코어망을 최대한 활용한 NSA 방식 덕분이었다. 당시 5G 세계 최초 상용화란 명분을 위해 변변치 않은 5G 네트워크 장비와 5G NSA 스마트폰으로 오직 전파만 쏘자는 분위기였다. 이후 4G 대비 속도는 빨라졌으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가 출현하지 않으면서 NSA 방식은 '가짜 5G'라는 오명을 쓰고 지금까지 온 것이다. 5G의 핵심 기능인 초저지연 기능이나 IoT 대규모 연결 등이 필요한 서비스는 비즈니스 모델 부재 등으로 상용화에 실패하거나 관련 산업내 이슈 등으로 좌초되기 일쑤였다. 향후 5G SA가 AI시대의 필수 신경망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킬러 서비스인 피지컬 AI 등이 5G SA를 선도하지 못한다면 정책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또 기존 할당대가를 참조해 조 단위로 산정된 재할당 대가를 할인하는 데 5G SA 구축을 조건으로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 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2019년 5G 세계 최초 상용화 당시에 NSA에서 SA 전환 의무를 부과하고 5G 할당대가를 할인해줬다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번처럼 3년과 5년 짧은 이용기간의 기존 3G와 4G 주파수를 재할당하면서 5G SA 구축의무를 부여하는 근거나 양자간 상관관계는 미미해 보인다. 과기부는 NSA에서 SA로 전환되면서 기존 4G 코어망 활용도가 떨어지는 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산정해 할인해주는 듯하나, 정부가 더 신경 써야 할 서비스 품질 훼손을 우려하면서까지 부과해야 하는 조건인지는 의문이다. 또 2022년 이전에 출시된 단말기는 SA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1년내 5G SA 구축 조건은 이용자를 위함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재할당은 과기정통부의 재량이기에 조건도 재량에 따라 부과하면 그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과기정통부의 재량권을 폭넓게 해석 가능하도록 할당대가 산정이나 조건 부과 등에 대한 법규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매번 주파수 할당시 산정방식 등을 공개하고 관련 법개정을 요청하지만 다음에 논의하자며 흐지부지됐다.
결국 주파수 할당정책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구체적이고 명확한 법규정 개정은 요원한 바램일 뿐이었다. 재량권 행사라는 명분 하에 애매하고 불확실한 법규정은 방패막이 되고 있기에 과기부 입장에서는 쉽게 고치고 싶지 않을 듯도 하다.
이제 막 열리는 AI시대의 주파수 정책은 규제보다는 투자 촉진과 산업진흥을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이번 재할당이 이용자를 위한 것이라면 서비스 안정성과 지속성에 더 중점을 두고 무리한 5G SA 조건부과로 인한 가치훼손에 대한 우려는 없어야 할 것이다.
서비스 품질 유지 의무를 오롯이 사업자에게 지우고 5G SA 구축 조건을 부과하는 것은 정책의 예측가능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불필요한 과잉투자를 유발하는 규제일 뿐이다. 미래 AI 산업 촉진을 위한 것이라면 이번 재할당은 정책 우선순위가 뒤바뀐 엇박자 정책인 것이다. 이번 주파수 재할당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책인지 되묻고 싶다.
임형도 경희대 전자정보대학 특임교수 hdlim2000@gmail.com
〈필자〉경희대 전자정보대학 특임교수 겸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이다. 서울대에서 정치학 학사와 정책학 석사를 받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책학(정보통신정책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민영방송사인 TBC와 iTV에서 보도국 PD와 기자로 근무 후, 2005년부터 SK경영경제연구소 정책연구팀장과 SK텔레콤, SK하이닉스에서 변화추진실장을 역임했다. ICT·반도체·뉴미디어 관련 규제 및 진흥 정책 전문가로서 정부 정책 입안과 산학협력 과제발굴에 많은 기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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