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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자 "민주당 축복 못하겠다"…'양쪽 어프로치' 통일교 변심 왜

중앙일보 이찬규.손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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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자 "민주당 축복 못하겠다"…'양쪽 어프로치' 통일교 변심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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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으로 치우쳤던 게 아니라 양쪽 모두 어프로치(접근)했다 " 지난 5일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정치권 로비 의혹과 관련해 법정에서 편 주장이다. 통일교가 거대 양당 모두와 고루 관계를 맺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통일교 유착의혹으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사퇴했다. 연합뉴스

통일교 유착의혹으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사퇴했다. 연합뉴스



그래서일까. 김건희 여사 청탁, 권성동 의원 뇌물 수수, 국민의힘 전당대회 개입 등 그간 야권에 치우친 듯했던 통일교의 정교유착 의혹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진영으로 거침없이 번져가는 모양새다. 이미 민주당의 차기 부산시장 유력 후보였던 전재수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사퇴할 정도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전 의원은 통일교 측에서 4000만원과 명품시계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옛 친명계 ‘7인회’로 꼽혔던 임종성 전 의원도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돼있다. 두 사람 모두 “허위 사실”이라는 입장이다.



정치권은 왜 하필 다른 종교도 아닌 ‘통일교 게이트’에 휘말렸을까. 먼저, 특검 측은 한학자 총재 때 만들어진 통일교의 ‘정교일치’ 이념이 정치권으로의 접근을 정당화하는 고리가 됐다고 보고 있다. 윤 전 본부장 등의 공소장에 따르면 통일교도들은 “문선명 초대 총재와 한 총재를 참부모 메시아로 믿고 세계를 하늘 아래 한 나라로 묶자”는 취지의 천일국(天一國) 이념을 따랐다. 한 총재가 2018년 10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정치인이 이 나라를 지배할 수는 없다. 참부모를 통해 신경원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교하기도 했다. 국가 통치도 통일교의 교리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믿음이다.

통일교 내부에선 다른 해석도 나온다. “이단 종교 이미지를 벗고 국가 종교 위상을 갖게 하자”(2022년 정원주 총재 비서실장-윤 전 본부장 아내 통화)는 일종의 이미지 변신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같은 시도는 정치 권력을 직접 획득하려다 실패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통일교는 2007년 ‘평화통일가정당’을 창당해 18대 총선 때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냈다가 정당 득표율 1.1%(18만857표)에 그쳐 정당 등록이 취소됐다. 복수의 통일교 관계자에 따르면, 이를 지켜본 윤 전 본부장 등 통일교 간부들은 “정공법으로는 실패가 불가피하다”는 교훈을 얻고 정치권으로의 ‘우회 접근’에 집중했다고 한다.

지난 2022년 7월 일본 나라현에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격을 당하기 직전 참의원 유세 가두연설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연설 도중 괴한에게 두 차례 총격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교도=연합뉴스]

지난 2022년 7월 일본 나라현에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피격을 당하기 직전 참의원 유세 가두연설하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연설 도중 괴한에게 두 차례 총격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교도=연합뉴스]



경제적 요인도 하나의 이유로 꼽을 수 있다. 통일교 내부 관계자는 “2022년 아베 피격 사건 이후 일본 정부가 통일교 종교법인 해산에 나선 것도 무시할 수는 없는 배경”이라며 “일본에서 걷히던 헌금이 급격히 감소해 대규모 해외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었고, 정치권과 정부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했다. 이는 특검이 통일교의 김 여사 청탁 목적에 ‘캄보디아 ODA(공적개발원조) 특혜’ 등을 적시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李 신천지 대응·통일교 행사 불참으로 尹 지지



통일교가 20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쪽에 고루 접근을 시도했던 것은 이런 맥락 속에서다. 초기에는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과 상대적으로 더 밀접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한 통일교 관계자는 “김혜경 여사가 통일교 계열의 선화예고 출신이다 보니, 내적 친근감이 있었다”며 “이 대통령도 통일교 목사님들을 잘 예우해줬다”고 회고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통일교 재단의 축구팀 성남일화 문제 해결에 당시 이재명 성남지사가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증언도 나온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이던 2020년 2월경이었다고 한다. 당시 방역수칙을 위반한 신천지 압박에 직접 나섰던 이 지사를 보고 통일교 신도들도 적잖은 거부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한 통일교도는 “신천지의 방역수칙 위반 논란에 신도 명단을 요구하는 것에 통일교 내부도 위기의식을 느꼈다”고 했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통일교 계열 ‘청심병원’을 방문했을 때, 이 대통령이 이를 막은 것 역시 통일교도들의 감정을 건드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당시 이 총회장은 결국 검사를 위해 과천보건소를 찾아가야 했다.

2022년 3월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의 검체 채취를 위해 가평군 평화연수원을 찾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평화연수원을 나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2022년 3월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의 검체 채취를 위해 가평군 평화연수원을 찾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평화연수원을 나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통일교 관계자는 “고위층들은 통일교를 무시했다고 판단했다. 이를 전해 들은 한 총재도 격노했다”며 “그러다 통일교가 대선을 앞두고 공들인 ‘한반도 평화 서밋’에 이 대통령이 최종 불참하자, 완전히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에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해당 서밋에서 마이크 펜스 미국 전 부통령과 만났다. 특검팀은 당시 윤석열 캠프가 이 행사를 일종의 ‘친미 후보 인증’의 의미로 활용했다고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통일교는 대선 직전 국민의힘 윤 후보를 전폭 지원하기에 이르렀다. 통일교 지구장 A씨는 “대선 투표 1주일 전인 2022년 3월 2일 한 총재가 주요 간부를 모아 ‘민주당을 5년 더 축복해야 하는지 의문이다’라는 말을 했다”며 “이는 윤 후보를 지원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특검에 말했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통일교를 비롯한 종교단체들의 접근을 선뜻 거부할 수 없는 처지라고 항변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치인은 종교 단체가 대규모 조직을 마련해주니 좋고, 종교인 입장에서는 다양한 이권에 접근하게 돼 자연스러운 공생 관계가 형성된다”며 “특히 통일교는 합동결혼식을 하며 신도들을 ‘식구’로 칭하는 단체라, 선거 운동에 활용하기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통일교가 ‘통일’, ‘평화’등을 키워드로 활동하는 것 역시 정치권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요소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통일’, ’평화’, ‘가족’ 등이 들어간 행사명만 보고 종교와의 연관성을 모르고 가는 의원들이 종종 있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도 “좋은 취지의 행사로 안내 받았는데, 막상 가보니 통일교 행사라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022년 2월서울 송파구 롯데 시그니엘에서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과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국민의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2022년 2월서울 송파구 롯데 시그니엘에서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과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 국민의힘



이찬규·손성배 기자 lee.chank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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