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2일 부처 업무보고 현장에서 윤석열 정부 당시 ‘낙하산 인사’ 논란 끝에 임명된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전 국민의힘 의원)을 집중 질타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세종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및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어디서 본 것인데 (출국 검색 때) 달러를 1만 달러 이상 못 가져가게 되는데, 그런데 (수만 달러를 책 사이에다가) 책갈피처럼 끼워서 나가면 안 걸린다, 이런 주장이 있던데, 실제로 그런가”라고 이 사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 사장은 “저희가 보안 검색하는 것은 유해물질을 주로 검색을 하고 있다. 칼이라든지 총기라든지”라고 대답했다.
이에 이 대통령이 “외화 불법 반출, 당연히 (검색) 해야 되는 것 아니에요”라고 재차 되물었고, 이 사장은 “저희가 그런 것들을, 이번에도 적발을 해서 세관으로 넘겼다”고 했다.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24일 인천 중구 그랜드 하얏트에서 열린 '첨단복합항공단지 정비시설(H3) 개발사업 투자유치 실시협약 체결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
비교적 단조로웠던 업무보고 현장 분위기는 이때부터 냉랭해졌다. 이 대통령이 이 사장에게 “옆으로 새지 마시고. 제가 물어본 것 이야기하라. 외화 불법 반출을 제대로 검색하느냐, 그 말이다”고 면박을 주면서였다. 이 사장이 “저희가 세관하고 같이 하고 있다. 주로 하는 일은 총기류라든지…”라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자꾸 다른 이야기를 하시네. 책갈피에 끼워서 100달러 가져가는 게 가능하느냐, 그 말이다”고 날카롭게 되받았다. 이 사장이 또다시 “이번에도 저희가 검색을 해서, 그래서 그것이 적발이 돼서 세관으로 넘겼다”고 비슷한 답변을 내놓자 이 대통령은 “참 말이 길다. 가능하냐, 안 하냐 묻는데 자꾸 옆으로 새요”라고 답답해했다.
이어 이 대통령이 “세관 쪽하고 협의를 좀 하세요”라고 대책 마련을 주문했지만, 이 사장이 즉답하지 않고 정적을 이어가자 이 대통령의 문책은 한층 강해졌다.
▶이 대통령=“지금 다른 데 가서 놀고 있나?”
▶이 사장=“의논하고 있었다.”
▶이 대통령=“언제 (공항공사) 사장 다셨나?”
▶이 사장=“2023년도 6월에 달았다.”
▶이 대통령=“임기가 얼마인가?”
▶이 사장=“3년이다.”
▶이 대통령=“(취임한 지) 3년차나 됐는데 업무 파악을 그렇게 정확하게 못하고 계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월 31일 가뭄 대책회의를 주재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소속 김홍규 강릉시장이 핵심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하자 실소를 터트리며 답답해 하는 모습. KTV국민방송 유튜브 채널 'KTV 이매진' 캡처 |
이후 후루가다 공항(이집트 홍해 휴양지 후루가다에 위치한 국제공항) 사업의 진척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이 사장이 구체적 답변을 못 내놓자 이 대통령은 “저보다도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쓰여져 있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며 “그 다음에 (후루가다 공항은) 놔두고, 카이로공항…. 아잇, 됐다”며 질문을 멈췄다. 이 사장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결국 이 사장은 외화 반출 문제를 파악해 부처 보고 말미에 발언을 요청한 뒤 “화폐가 100불짜리가 100장이 겹쳐져 있음 확인 가능한데 한 장씩 해서 책갈피로 꽂아 놓으면 현재 기술로는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만약 그런 거라면 책을 다 뒤져보세요. 원래 볼 책은 들고 다니게 하든지 가방에 넣어 검색 통과시키는 건 뒤져보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 출신 정부 인사를 공개적으로 질타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 가뭄 대책회의를 주재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소속 김홍규 강릉시장이 핵심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을 때도 “계속 (원수 확보 비용을) 그걸 묻고 있는데, 말이 이상하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지난 7월 집중 호우 피해 점검 회의 때도 이 대통령은 역시 국민의힘 소속인 이권재 오산시장에게 경기 오산시에서 발생한 옹벽 붕괴 사망 사고와 관련한 경위를 강하게 캐물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다원시스 철도 차량 납품 지연 사태를 직접 거론하며 “발주는 받아놓고 제작을 안 하고, 발주받은 선급금으로 본사를 짓고 있다더라”, “정부 기관이 사기당한 것 같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다원시스는 2022년 12월 11일까지 납품을 완료하기로 했던 ITX-마음 150칸 중 현재까지 30칸가량을 납품하지 않았다. 또한 2023년 11월 10일까지 납품을 마치기로 했던 ITX-마음 208칸 가운데 188칸도 미납품한 상태다. 납기를 맞추지 못했음에도 다원시스는 이후 116량, 2208억 원 규모의 추가 계약을 따냈다.
이 대통령은 “발주 선급금을 70% 준다는 게 사실이냐”고 물었고, 국토교통부 담당 국장은 “국가 계약법상 선급금은 70%까지 줄 수 있게 돼 있다”고 답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웃기는 얘기”라며 “줄 수 있다는 거지, 줘야 한다는 건 아니지 않으냐”라고 지적했다. 또 해당 업체가 납품 지연 이력에도 또 입찰받은 점을 언급하며 “감시 역량이 전혀 작동하지 못한 것”이라며 “뭔 행정을 이렇게 하느냐”고 다그쳤다. 그러면서 “국회가 난리 치니 이제서야 작업을 시작했다는 건데, 70% 선급금을 주는 규정을 바꾸라”며 “성남시에서 이미 봤던 건데, 조기 집행이니 뭐니 해서 사기 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선급금을 최대 20% 이상 넘지 못하게 하든지 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진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에선 윤석열 정부 때 임명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을 타깃 삼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역사 교육 관련해서 ‘환빠’ 논쟁이 있죠?”라고 묻자, 박 이사장은 “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환빠’는 주류 역사계에서 위서로 여기는 ‘환단고기’를 근거로 한국사의 기원을 주장하는 유사 역사학자들을 비하하는 용어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환단군 연구하는 사람들 보고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나. 그런 데는 아예 동북아역사재단은 특별히 관심이 없는 모양이군요”, “동북아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합니까”라고 질책했다. 박 이사장이 “소위 재야사업자들이라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시는 게 그분들 이야기인 것 같은데, 그분들보다는 전문연구자들의 이론이,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아마 전문연구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저희 재단에서도 한때 소위 재야사학자들하고 협력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별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결과가 좋지 않아서 싸웠나”란 이 대통려의 질문에 박 이사장이 “약간 그랬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이번에도 “이사장님, 언제부터 이사장하고 계세요?”라고 임명 시기를 문제 삼았다. 박 이사장이 “2023년 12월부터 하고 있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화해가 안 되는 모양이다”고 했다.
이 대통형은 국어 순화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엉터리 국어, 제가 정말 듣기 싫은 게 ‘저희 나라’, ‘염두해 두고’, ‘대인배’”라고 운을 뗐다. 이어 “’배’가 ‘쌍놈’ 소리지 않나. 저잣거리에서 노는 건달을 배라고 한다. 소인배, 시정잡배, 그런 건데 너무 짜증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엉터리 국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는데) 아무도 지적을 안 하고, 특히 문제 단어가 몇 개 있다. 집단 공지를 하든지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김언종 고전번역원 원장이 ”‘배’는 소인배에 해당되는 것이지 대인배엔 쓸 수 없는 것인데 한자를 하도 안 배워서 그렇다. 이 대통령의 성함들도 학생들이 ‘있을 재’(在)에 ‘밝을 명’을 모른다”고 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그래서 ‘죄명이’라고 쓰는 사람도 있잖나”란 농담을 덧붙이기도 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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