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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 조선왕조의 생명력과 리더의 자격

머니투데이 최보기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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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 조선왕조의 생명력과 리더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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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위한 북(book)소리]

▲최보기 책글문화네트워크 대표

▲최보기 책글문화네트워크 대표

세계 역사에 5백 년 이상 유지한 왕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조선왕조가 그 중 하나다. 양반 중심의 신분제나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들어 조선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백 년 이상 동일한 국가체제를 유지했다면 어쨌든 그 부분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

학자들은 조선이 오랫동안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과 선비정신’ 때문이라고 한다. 신하로서 목숨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임금에게 할 말을 했던 언론 시스템이 가능했던 것은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선비정신 때문이었다.

선비정신의 요체는 염치(廉恥)인데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염치가 있는 사람은 자기절제와 사회적 책임의식이 강하고, 염치가 있는 사회는 신뢰와 질서가 있어 타락하거나 무너지지 않는다. 고로 염치는 타인과의 상대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체면(體面)보다 한 수 위 덕목이다. 기개와 지조의 선비정신을 잘 말하기로는 일석(一石) 이희승(1896~1989) 선생의 수필 <딸깍발이>가 유명하다.

이철우 사회심리학 박사의 산문집 『수치심 잃은 사회』는 ‘선비정신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을 수 없는 몰염치한 사회’를 향한 지식인의 비명이다. ‘염치가 밥 먹여 주냐’며 일탈을 거듭하는 리더들의 정신에 퍼붓는 얼음물이요, 등짝을 후려치는 죽비다. 지난달 ‘수고하는 리더로서 『천년사찰 힐링숲길 걷기명상』 선물’을 받은 대가로 치부하면 충분하리! 『수치심 잃은 사회』의 부제는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의 붕괴와 공동체의 해체’다.

수치심은 단순히 ‘쑥쓰러운 감정’이 아니라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통제장치다. 외부에서 통제하는 법, 제도와 달리 내부에서 스스로 작동하는 감시자다. 법은 허술하고, 감시는 한계가 있으며, 처벌은 사후적이다. 그러나 수치심은 실시간으로 작동하고, 미세한 행동까지 통제한다. 권력자가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여 수치심을 잃으면 본인도 국민도 참화를 입는 까닭이다.

1905년 11월 30일, 조선의 한 신하는 목욕재계 후 흰 도포를 입고 “나라를 팔아넘긴 자들과 함께 숨쉬는 것 자체가 수치스럽다”는 유서를 썼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충정공 민영환, 나이 44세였다. 저항의 불길을 일으킨 것은 법이 아니라 충정공의 의로운 죽음이었다.


그는 국가의 운명 앞에서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고,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선비정신을 지키려 했다. 만약 현재에 같은 상황이라면 스스로에게 수치심과 책임을 물을 리더가 있을까? 저자 이철우의 이 질문에는 ‘공동체를 확실히 무너뜨리는 몰염치’에 대한 심각한 걱정 천만 근이 들어 있다.

수치심을 회복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창한 개혁이나 결단이 아니라 사소한 감정(마음) 몇 가지만 다스려도 가능하다. 스스로를 바라보며 부끄러워하는 ‘양심’을 찾으면 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눈치를 살피는 ‘용기’를 발휘하면 된다. 사소한 부끄러움도 존중하는 신조가 있으면 된다.

가령 식당에서 직원에게 무례하게 굴었을 때나 익명에 숨어 악성 댓글을 달았을 때 스스로 얼굴을 붉힐 수 있어야 한다. 작은 부끄러움은 궁극적으로 더 큰 실수를 막아주는 내면의 제동장치가 되어주니까. 그리고 수치심은 성숙과 성장의 언어임을 깨닫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부끄러움을 서로 나누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남이 부끄러워할 때 그에게 조롱 대신 이해와 격려를 보내고, 나를 돌아보는 기회로 삼으면 된다. 우리가 서로서로 그렇게 하면 사회는 수치심을 회복해 튼튼해진다는 것이 사회심리학 박사인 저자의 주장이다.

▲『수치심 잃은 사회』 / 이철우 지음 / 시크릿하우스 펴냄

▲『수치심 잃은 사회』 / 이철우 지음 / 시크릿하우스 펴냄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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