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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만 견디는 메모리 대란… 중소 플랫폼 기업은 비용 ‘압사’ 위기

조선비즈 황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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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만 견디는 메모리 대란… 중소 플랫폼 기업은 비용 ‘압사’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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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애쉬번에 위치한 아마존웹서비스(AWS) 데이터센터./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주 애쉬번에 위치한 아마존웹서비스(AWS) 데이터센터./로이터연합뉴스



인공지능(AI) 인프라의 필수 자원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램 가격이 최대 3~4배 치솟으며 기업 간 경쟁력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오픈AI,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은 대규모 선구매로 공급망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후순위로 밀린 AI 서비스 기업들은 폭등하는 반도체 가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AI 시대의 새로운 진입장벽은 메모리’라는 해석까지 나온다.

11일 포천, 더버지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오픈AI를 비롯한 미국 빅테크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체결한 대규모 공급 계약이 현재 범용 D램의 심각한 공급 부족을 초래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제 오픈AI는 지난 10월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하고 글로벌 AI 인프라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 합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월간 최대 웨이퍼 90만장 규모의 D램을 사들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 세계 D램 월 생산량 150만장의 절반을 웃도는 규모다.

이 외에도 구글과 메타 등도 브로드컴을 통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를 대규모로 조달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5세대 HBM(HBM3E)부터 브로드컴에 대한 납품 물량을 대규모로 늘리면서 SK하이닉스와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두 회사는 전체 D램 생산량의 약 40%에서 최대 절반 수준을 HBM에 할당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메모리 반도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못지않게 AI 학습·추론 비용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최근 1~2년 사이 HBM 가격은 최대 3~4배, 범용 D램 가격도 2배 가까이 오르며 비용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메모리 업체들이 생산라인을 HBM 중심으로 전환한 데다 글로벌 AI 기업들이 대규모 물량을 선점하면서 일반 기업이 구매할 수 있는 공급량은 크게 줄었다.

빅테크에 비해 구매력이 약한 IT 기업들은 HBM뿐만 아니라 범용 D램도 구하기가 어렵거나 과도한 비용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흐름은 국내 플랫폼 기업에도 직격탄이다. 네이버, 카카오 등은 자체 데이터센터를 갖추고 있지만, 대규모 모델 학습을 위해 여전히 외부 GPU·HBM과 같은 핵심 하드웨어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메모리 반도체 구매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국내 플랫폼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도 정체될 가능성이 높다. 네이버에 정통한 관계자는 “현재 폭등하고 있는 반도체 구매 비용을 계속 감당하며 대규모언어모델(LLM) 학습 인프라를 최신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기업은 빅테크 외엔 없다”며 “자체 모델을 통한 학습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경우 국내 기업들은 최적화만 지원하고 핵심 모델은 빅테크에 의존하는 방어적 전략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AI 품질이 서비스 경쟁력을 좌우하는 검색·광고·추천·커머스 분야에서는 이러한 부담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미국, 유럽의 빅테크가 최신 HBM 기반의 초대형 모델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동안 한국 기업은 같은 속도로 대응하기가 어려워 중장기적으로 서비스 품질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스타트업 생태계도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중소 기업이 자체 모델 개발을 포기하고 오픈AI, 구글 등 해외 의존도를 높일수록 국내 기술 자립도는 떨어지고, 플랫폼 기업 역시 글로벌 AI 공급자에 예속되는 구조가 굳어지는 것이다. 실제 작년과 올해 사이 많은 스타트업이 AI 학습 비용 부담을 이유로 사업 재조정을 발표했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은 단순한 원가 부담이 아니라, AI 시대의 새로운 ‘자본 장벽’”이라며 “조달력 격차가 기술 격차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공급망 양극화”라고 설명했다.

황민규 기자(durchm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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