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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관 마약 의혹 무혐의, 음모론 믿으면 이런 일 또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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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관 마약 의혹 무혐의, 음모론 믿으면 이런 일 또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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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동부지검 합동수사단이 그제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사건에 연루된 세관 공무원과 경찰 고위직 등 15명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수사 시작 6개월 만이다. 세관 직원들이 마약 밀수를 도왔다는 주장도, 경찰·관세청 지휘부가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이다. 아무 근거 없는 음모론에 기댔다가 공권력이 농락당한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사태는 2024년 7월 백해룡 경정의 폭로로 촉발됐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백 경정은 “2023년 마약 사건을 수사하다 세관 직원이 보안검색대 통과를 도왔다는 마약조직원의 진술을 확보했다”며 “경찰청·관세청이 외압을 행사했고 대통령실도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내란 자금을 마련하려 마약 사업을 했다”고도 했다. 합수단의 수사 결과 말레이시아 마약 밀수범이 조사과정에서 ‘세관 직원이 도와줬다’고 허위진술을 했고 이를 믿은 백 경정이 수사에 나서면서 경찰 지휘라인 등과 충돌하자 외압 의혹까지 꺼냈다고 한다. 밀수범의 거짓말에 속은 경찰관이 2년 동안 국회, 유튜브 등에서 일종의 ‘음모론’을 퍼트려 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사건은 애초 그리 커질 일이 아니었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6월 서울동부지검에 합동수사단이 구성돼 수사를 벌여왔다. 그런데 지난 10월 이재명 대통령이 갑자기 “성역 없이 엄정 수사하고, 백 경정을 수사팀에 파견하라”고 지시하면서 화를 키웠다. 대통령이 수사팀 구성까지 개입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백 경정은 기존 수사팀을 “불법단체”라고 비난하면서 별도 팀까지 꾸려 갈등을 빚었다. 지금도 백 경정은 합수단의 무혐의 결론에 “검찰이 사건을 덮었다”고 반발하며 검찰과 관세청 등 6곳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고 한다. 전담수사팀이 결론을 내린 사안에 다른 수사팀이 새 증거 없이 재수사하는 건 국가 수사체계의 규율을 망가트리는 일이다.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느낌과 추측을 사실과 구분해야 한다”고 하는데도 백 경정은 아랑곳없다. 위계질서가 엄연한 검찰과 경찰조직에서 이래도 되나.

더는 개인이 국가 수사체계에 혼란을 야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백 경정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진 이상 그는 수사할 자격이 없고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이 대통령도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만기친람식 국정운영을 자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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