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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드러낸 한국 사회 책임의 빈틈

머니투데이 오동희산업1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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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드러낸 한국 사회 책임의 빈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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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균형발전 기여 기업에 세제 혜택·규제 완화 등 도입"
[오동희의 思見(사견)]

(서울=뉴스1) 이호윤 기자 = 고객계정 약 3370만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쿠팡 이용자 수가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9일 데이터 테크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쿠팡 일간 활성 이용자(DAU)는 1617만7757명으로 지난 1일 1798만8845명에 비해 181만명 이상 줄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모습. 2025.12.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호윤 기자

(서울=뉴스1) 이호윤 기자 = 고객계정 약 3370만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쿠팡 이용자 수가 급감한 것으로 집계됐다. 9일 데이터 테크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쿠팡 일간 활성 이용자(DAU)는 1617만7757명으로 지난 1일 1798만8845명에 비해 181만명 이상 줄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 모습. 2025.12.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호윤 기자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의 본질은 단순한 보안의식 결여문제가 아니다. 책임 회피가 일상화된 기업 문화 그리고 그 무책임을 방치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허점 탓이다.

쿠팡은 즉각적인 사과와 투명한 책임 규명 대신 '유출'을 '노출'로 축소하고 갖은 핑계로 책임회피에 골몰했다. 실질적 최고 책임자인 대주주(김범석 쿠팡Inc 의장)는 미국의 이름 뒤에 숨었다. 이민을 통해 미국 국적을 취득한 그는 2021년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직전인 2020년말 국내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 한국과의 법적 연결 고리를 끊었다. 한국에서 사업은 하지만 한국법이 자신에게 닿지 않도록 했다.

물류센터 화재 대응이나 플랫폼의 갑질 논란 등에서 보여준 모습은 '한국에서 수익은 극대화하되 법적·사회적 책임은 최소화'하는 회피의 전형이다. 한국에서 지난해 기준 연간 41조 원의 매출과 6000억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둔 회사의 태도라고 하기에는 한참 모자란다.

국민을 대신해 이런 행태를 따질 국회의 부름은 해외체류 중이라는 이유로 무시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조치는 솜방망이었다.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 회장이나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등 해외CEO들이 미국 의회의 부름에 직접 또는 화상으로 응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국회의 부름을 거부한 후폭풍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이라 불리는 이들(한국에서 태어나 이민을 통해 외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 중 일부의 그릇된 모습은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고 구본무 LG 선대회장의 맏사위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는 과세당국으로부터 종합소득세 123억 원을 부과받자 "한국 거주자가 아니다"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에 가족 모두가 거주하고 있고 국내에서 높은 투자 수익을 얻었음에도 종합소득세 납세 의무는 회피하려 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그는 고등학교 때 허위로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한 후 미국 국적을 얻어 병역 의무를 면탈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가수 스티뷰 유(한국명 유승준)가 미국 국적을 취득한 후 병역을 회피했다는 이유로 23년째 국내 입국이 거부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MBK파트너스 마이클 병주 킴(한국명 김병주) 회장도 세금문제 등에서는 비슷한 사례다. 김 회장도 소득세탈루 등을 이유로 국세청으로부터 수백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하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에서 기회와 이익은 취하지만 병역·납세·사회적 기여 같은 공동체의 기본의무는 피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이들의 공동체 의식 부족도 있지만 이를 제재할 우리 사회의 시스템 부재도 한몫한다.


국회의 출석 요구에는 "해외 체류 중"이거나 "우편물 송달을 못받았다"며 불응하던 이들이 정작 본인의 국내 형사재판에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 대표적이다. 책임의 명확성과 불법에 대한 엄벌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이었다면 징벌적 손해배상과 강력한 소환·책임 규명 제도가 즉각 작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 추궁이 느슨한 한국에서는 고의적 회피 전략이 통해 권한은 누리고 책임은 피하는 비대칭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 일탈이 아니라 공동체를 잠식하는 구조적 위협이다.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한 이재용 삼성 회장의 아들 이지호 소위나 자원입대했던 SK 최태원 회장의 차녀 최민정 예비역 중위의 모습이 이들과 대비되며 높이 평가받는 이유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그 사회의 구성원은 '공동체가 부여한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각종 혜택과 이익을 취한 이들이 정작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책무를 회피하는 것을 방치하면 우리 사회는 존립할 수 없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국적과는 무관하게 그 사회 속에 함께 살아가는 일원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지금 그 원리를 다시 세워야 하는 시대의 소명 앞에 서 있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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