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靑年, 늘 푸른 마음]
영원한 여행 : <13> 의미 없는 상주 완장과 리본
Q: 60대 은퇴자이다. 아버님 상을 당해 상조회사를 통해 장례를 치렀다. 형제가 많아 완장, 리본, 등의 비용이 꽤 많이 나왔다. 들은 바가 있어 사전에 완장이나 리본 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상조회사에서는 상주가 지켜야 할 우리의 전통이라며 강권했다. 장례 후 관련 비용을 챙겨봤더니, 완장과 리본 비용으로 30만원 가까이 청구됐다. 상조회사가 강하게 요구했던 이유를 알고 싶다. 이들 물품의 사용이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의 전통예법인지, 아니면 드러내지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A: 결론부터 말하면, 해당 물품은 전통 예법과 아무 관련이 없다. 상조회사, 혹은 장례지도사가 강권을 했다면 조금이라도 매출을 늘리려는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 일부 현장에서는 해당 물품은 증빙자료를 첨부하지 않아도 되는 '잡수입'으로 회계 처리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불투명한 장례 문화의 사례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상주의 완장과 리본 등은 일본 관습이 장례업계의 이익 추구와 맞물리면서 국내에 정착된 것이다. 완장은 서양 관행이 일본을 거쳐 침투된 것이며, 리본은 아예 서양과는 관계없이 일본에서 만든 상품이다. 우리 전통에는 완장이나 상주 리본, 흰색 머리핀, 영정 리본은 찾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일본을 통해 들어온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전통 상복은 굴건제복으로 거친 삼베로 지었다. 상복에는 3개의 슬픔 상징이 부착되었다. 하나는 왼쪽 가슴에 최(衰, 눈물받이라고도 한다)를 달아 슬픔이 가슴으로 나왔음을 상징했다. 둘은 슬픔을 어깨에 메고 다닌다는 뜻으로 어깨에 벽령(辟領)을, 셋은 슬픔을 지고 다닌다는 의미로 부판(負版)을 등에 붙였다.
영원한 여행 : <13> 의미 없는 상주 완장과 리본
편집자주
완숙기에 접어든 '장청년'들이 멋과 품격, 건강을 함께 지키며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함께 고민합니다.장례 업계의 막무가내 사용 요구
구한말 일본에 오염된 장례 관행
장례를 돈벌이로 이용하는 관행
구한말 일본에 오염된 장례 관행
장례를 돈벌이로 이용하는 관행
삽화=신동준 기자 |
Q: 60대 은퇴자이다. 아버님 상을 당해 상조회사를 통해 장례를 치렀다. 형제가 많아 완장, 리본, 등의 비용이 꽤 많이 나왔다. 들은 바가 있어 사전에 완장이나 리본 등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으나, 상조회사에서는 상주가 지켜야 할 우리의 전통이라며 강권했다. 장례 후 관련 비용을 챙겨봤더니, 완장과 리본 비용으로 30만원 가까이 청구됐다. 상조회사가 강하게 요구했던 이유를 알고 싶다. 이들 물품의 사용이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의 전통예법인지, 아니면 드러내지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A: 결론부터 말하면, 해당 물품은 전통 예법과 아무 관련이 없다. 상조회사, 혹은 장례지도사가 강권을 했다면 조금이라도 매출을 늘리려는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 일부 현장에서는 해당 물품은 증빙자료를 첨부하지 않아도 되는 '잡수입'으로 회계 처리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불투명한 장례 문화의 사례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상주의 완장과 리본 등은 일본 관습이 장례업계의 이익 추구와 맞물리면서 국내에 정착된 것이다. 완장은 서양 관행이 일본을 거쳐 침투된 것이며, 리본은 아예 서양과는 관계없이 일본에서 만든 상품이다. 우리 전통에는 완장이나 상주 리본, 흰색 머리핀, 영정 리본은 찾을 수 없다. 일제 강점기 일본을 통해 들어온 습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전통 상복은 굴건제복으로 거친 삼베로 지었다. 상복에는 3개의 슬픔 상징이 부착되었다. 하나는 왼쪽 가슴에 최(衰, 눈물받이라고도 한다)를 달아 슬픔이 가슴으로 나왔음을 상징했다. 둘은 슬픔을 어깨에 메고 다닌다는 뜻으로 어깨에 벽령(辟領)을, 셋은 슬픔을 지고 다닌다는 의미로 부판(負版)을 등에 붙였다.
서양에서는 상복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의식이나 행사 때 금실로 화려한 수를 놓은 예복(禮服)을 입는 정도였다. 엄숙한 장례식에서는 화려한 장식을 검은 천으로 가리는 관습이 상장(喪章)으로 발전하였다. 말하자면, 화려한 예복에 상장을 부착하면 상복이 되는 원리였다. 군인이나 경찰 제복에도 검은 천이나 완장을 차면 상복으로 기능하도록 하였다. 1865년 링컨 대통령 장례식에서 호위병들이 왼쪽 팔에 묶은 스카프나 영국 조지 5세 국왕 장례식에서 운구 병사들이 왼쪽 팔에 찬 검은색 완장이 그것이다. 제복에 완장이나 리본을 부착하면 상복으로 변신하는 원리이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직후 만든 육해군회장식 규정. 한국학중앙연구원 |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후 전통 의례를 서구식으로 바꾸면서 해당 관행을 모방했다. 국장(國葬) 때 군인들의 왼팔에 완장을 차게 하고, 북이나 나팔에도 검은색 천을 붙여 제복을 상복으로 변신시켰다. 1879년에 제정한 '육해군회장식(陸海軍會葬式)'이 이를 공식화했다. 대한제국도 이를 따라 1895년 '무관표상식(武官表喪式)'이라는 군인과 경찰의 상복 제도 규정을 제정했다. 당시 대한제국 관리들은 일본의 '육해군회장식'(1879)을 그림까지 똑같이 베꼈다.
조선총독부는 1934년 '의례준칙(儀禮準則)'을 공포한다. 이때 조선의 의례는 번문욕례(繁文縟禮·번거롭고 까다로운 의례)라며, 양복을 상복으로 입을 때는 왼팔에 검은색 천을 두른다고 하여 일반인에게도 검은색 완장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검은색 완장은 1969년 '가정의례준칙'에서 사라진 후 더 이상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여성의 흰색 머리핀 리본은 1957년 보건사회부에서 '의례규범'을 제정할 때 "나비 모양의 흰색 리본을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 처음이다. 그것도 '장례가 끝난 후에'라는 단서를 붙였다. 애석하게도 이 '의례규범'은 공청회까지 했지만, 공포되지 않고 사장되었기에 근거로 삼을 수가 없다.
영정 리본도 마찬가지다. 초상화(肖像畵)라고도 했던 영정(影幀)은 돌아가신 분의 표상이다. '의례준칙'(1934)에서 고인의 혼백 대신 사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지만, 검은색 리본은 없었다. 그런데 영정의 검은색 리본은 어디서 온 것일까. 1879년 메이지 일왕의 양어머니인 에이쇼(英照)의 국장 기념 사진첩에 실린 영정에 검은 테를 둘렀던 관행이 1926년 순종 황제에 적용되면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상주라는 표시는 상복을 입으며 완성된다. 따라서 완장이나 상주 리본을 달고, 흰색 머리핀을 꽂는 것은 말 그대로 "개 발에 편자"다. 영정 리본도 마찬가지다. 최근의 '건전가정의례준칙'(2021)에서도 "상복은 '따로 마련하지 아니하되', 한복일 경우에는 흰색으로, 양복일 경우에는 검은색으로 하고, 가슴에 상장을 달거나 두건을 쓴다"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에도 완장이나 상주 리본, 영정 리본은 보이지 않는다. 장례용품 공급업자가 개발한 상품일 뿐이다. 상주를 구분하는 목적이라는 장례식장의 주장은 행정편의주의를 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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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을지대 장례지도학과교수·죽음문화연구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