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불확실의 혼돈이 밀려든 올해, 한국 사회가 겪은 격변도 만만치 않았다. 대학교수들이 올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변동불거(變動不居)를 가장 많이 꼽은 것도 작년 말 느닷없는 비상계엄 이후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 등 쉴 틈 없이 이어진 격동의 한 해를 떠올린 때문일 것이다. 교수신문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시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동불거’는 주역(周易) 해설서인 계사전에 나오는 구절로 변화의 불확실성과 유동성,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강조한다. 다만 변화가 아무렇게나 무질서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계절의 변화, 경제의 호·불황처럼 단순한 시작과 끝이 아니라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 되는 반복과 순환의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차면 기울고 비우면 채워지는 자연의 도리에 따라 세상도 변화한다. 인간은 이런 변화 속 이치를 상기하며 적응해야 한다고 주역은 이른다.
▷교수들이 올해 2, 3위로 꼽은 사자성어는 ‘하늘의 뜻은 일정하지 않다’는 천명미상(天命靡常)과 ‘오리 떼처럼 우르르 몰려다닌다’는 추지약무(趨之若鶩)였는데, 모두 변화하는 민심과 불안정한 여론을 경계하는 말이다. 지난해의 사자성어 ‘도량발호(跳梁跋扈·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전임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이 낳은 12·3 비상계엄을 지목한 바 있다. 그때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은 지금 초라한 모습으로 법정에 서고 있지만, 권력자가 추락하지 않고 명예롭게 퇴장하리란 보장은 누구에게도 없다.
▷물론 격동이 정치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변동불거를 추천한 양일모 서울대 교수는 “대외적으로는 미중 신냉전, 세계 경제의 혼미, 인공지능(AI) 혁신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AI와 로봇이 불러올 변화의 속도와 내용, 그 불확실성은 우리를 무섭게 엄습하고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과 결별하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가 돼 있는지 깊은 성찰과 폭넓은 의사소통이 필요한 요즘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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