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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에는 연쇄살인 수사 인권침해, 연세대 사건 신청될까요?” [안녕 진화위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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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에는 연쇄살인 수사 인권침해, 연세대 사건 신청될까요?” [안녕 진화위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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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진실화해위 홍수정 조사8과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기 진실화해위 홍수정 조사8과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안녕’은 작별이자 환영의 인사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국가폭력 사건을 조사해온 독립기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또는 진화위)가 분기점을 맞는다. 5년간 활동해온 제2기는 11월26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국회는 제3기 탄생을 위한 법안 통과를 준비 중이다. 3기 설립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한겨레는 2기를 돌아보고 3기를 바라보며 ‘안녕 진화위’를 시작한다.



‘진화위’는 그동안 부정적 뉴스로 자주 등장했다. 내란 옹호 논란이나 설립취지에 반하는 발언으로 시끄러웠던 몇몇 위원장과 국회에 나와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기행을 벌인 국정원 출신 간부 탓이었다. 부정기 연재될 ‘안녕 진화위’는 그동안 조명되지 못한 얼굴과 목소리를 찾아 나선다. 과거사 조사와 규명에 진심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3기로 가는 여정의 의지와 기대를 담아본다.



굿바이 진화위! 헬로 진화위!!





“2기 해단식 했는데, 뭐 하고 지내세요?”



“(조사)보고서 읽어요.”



“네?”



“쉴 때 읽어야 보고서가 더 재밌어요.”



지난달 26일 2기 진실화해위가 활동을 종료한 뒤 별정직 간부와 직원들은 일터를 떠났다. 3기가 출범하면 각자 의사에 따라 다시 지원을 해 채용 절차를 거친다. 그는 퇴사 뒤 조사과에서 그동안 작성한 사건의 조사보고서를 열심히 읽고 있다고 했다. 무엇을 할지 탐색하며 읽는다고 했다.



홍수정(52) 조사2국 조사8과장을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4·9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조사실장으로 일한 곳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희생자들을 기리는 4·9재단은 2기 진실화해위의 산실 중 하나였다. 1기가 2010년 12월 문을 닫은 뒤 공백이 길어질 때 4·9재단은 과거사 자료 수집과 한국전쟁기 희생자 유해발굴을 이어가며 진실화해위가 할 일을 민간 차원에서 진행했다. 2기 출범 직후 출간된 ‘긴급조치위반 사건 재심현황 통계’도 이때 홍 과장이 법원도서관 특별열람실을 다니며 모은 자료다. 전국 12곳의 유해발굴 현장에선 발굴된 뼈를 세척하고 닦아 안치하는 일을 했다. 1·2기 조사관으로서, 그 사이 10년의 공백이 홍 과장에게는 사실상 없었던 셈이다. 그는 “이 일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준 인혁당 사건 유족 어머니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와의 인연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과거사법 제정 모임에 참여하던 2004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문사위) 조사관 출신인 ‘안경호 선배’(2기 정책보좌관 및 조사6과장, 1기 조사관, 4·9재단 사무국장 역임)를 처음 만났다. 그때 받은 첫 미션이 “의문사위 보고서를 읽어보라”는 거였다. 장준하·최종길 의문사 등 82개의 사건 조사결과가 그곳에 담겨 있었다. 다 읽었다고 했더니, 또 읽으라고 했다. 그렇게 세 번을 읽고 나니 사건을 어떻게 조사했는지가 눈에 들어왔다. 흥미가 생겼다. 직접 조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고서가 재밌다고 하니, 운명적 직업을 만난 셈이다.



홍수정 과장이 이끌었던 조사8과는 2기에서 굵직한 사건을 많이 다뤘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인권침해 사건과 납북귀환어부 사건, 서산개척단 사건, 시국사건 관련자 교원 임용제외 사건, 재일동포 인권침해 사건, 사북 사건 등이 리스트에 있다.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된 이들이 93개 사건 2000여명이라고 한다. 1기 때는 인권침해조사국 조사관으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과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했다. 홍수정 과장은 인터뷰 도중 “과거사 조사 일이 너무 즐겁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진실규명과 함께 피해회복을 위한 제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그는 “3기가 2기의 한계를 꼭 극복하고 마지막 과거사 조사위원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군법회의 판결문 발견으로 진실규명이 취소돼, 2기 진실화해위에서 쟁점이 됐던 고 백락정의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 판결 이유가 공란으로 비어 있다. 국방경비법 등 형무소 사건에서 ‘재판권 침해’를 진실규명하는 것은 3기 진실화해위의 과제다. 백남식 제공

군법회의 판결문 발견으로 진실규명이 취소돼, 2기 진실화해위에서 쟁점이 됐던 고 백락정의 군법회의 사형 판결문. 판결 이유가 공란으로 비어 있다. 국방경비법 등 형무소 사건에서 ‘재판권 침해’를 진실규명하는 것은 3기 진실화해위의 과제다. 백남식 제공


― 2기 5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먼저 1기에서 인권침해와 관련해 가장 큰 성과를 꼽으라면 제 개인적으로는, 긴급조치(1972년 유신헌법에 따라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제한한 대통령 특별조치) 사건입니다. 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사해서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지적했고 대법원과 헌재가 위헌 결정을 했어요. 한 시대를 장악했던 반인권적인 조치가 진실화해위를 통해 개선된 셈이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2기의 한계는 여전히 많이 남은 인권침해사건의 구조적인 문제, 즉 반인권적 법률과 관계된 문제에 접근하지 못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집단수용시설이나 해외입양 사건 등 개별 사건에서 진상규명 성과를 낸 건 분명하지만, 제도적 측면에서는 한계가 많아요. 특히 한국전쟁기의 형무소 사건이 아쉽습니다. 이 사건은 전쟁기에 국방경비법·비상조치령·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것들인데, 앞으로 3기에서 반인권적 법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국방경비법 위반은 한국전쟁기 사건을 다루는 조사1국 담당이었지만, 인권침해사건으로 보고 2국으로 72건이 넘어왔어요. 이게 조사5과에서 8과까지 일률적으로 배당됐고, 나중에는 저희 8과에서 60개 가까이 맡았죠. 그중에서 조사관들이 자료를 찾고 논리구성을 잘해서 진실 규명된 게 3건입니다. 저는 전반적으로 국방경비법과 비상조치령은 군법회의의 위헌성과 단심제를 문제 삼아 재판권 침해로 접근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불법구금이라든가 사망 과정의 문제를 찾아서 극히 일부의 사건만 진실 규명된 거죠. 결국 저희 과에서 형무소 사건과 의문사 사건을 포함해 70건이 조사 중지된 점이 크게 아쉬워요. 3기에는 이런 사건들을 구조적으로 접근해서 규명했으면 좋겠고요. 여기에 더해 반공법 4조나 국가보안법 7조에 엮여 (반국가단체) 고무·찬양으로 구속돼 인권침해를 받은 분들에 대한 직권조사가 이뤄지는 환경이 됐으면 합니다.”



2023년 4월12일 동해안 남북귀환어부 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에서 검찰의 직무유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2023년 4월12일 동해안 남북귀환어부 피해자모임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법원 삼거리에서 검찰의 직무유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




1968년 납북됐다 귀환한 뒤 8월 징역형, 72년 다시 7년형 선고받고 복역한 박충환씨(왼쪽)와 박씨가 수사받는 과정에서 경찰의 고문과 강압적인 강요에 의해 잘못 진술해 불고지죄의 누명을 쓰고 8월형을 복역한 임봉택씨가 2009년 6월9일 진실화해위가 전북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초등학교에서 연 ‘개야도 주민 화해 한마당’에 참석해 서로 화해의 포옹을 하며 울고 있다. 한겨레 자료

1968년 납북됐다 귀환한 뒤 8월 징역형, 72년 다시 7년형 선고받고 복역한 박충환씨(왼쪽)와 박씨가 수사받는 과정에서 경찰의 고문과 강압적인 강요에 의해 잘못 진술해 불고지죄의 누명을 쓰고 8월형을 복역한 임봉택씨가 2009년 6월9일 진실화해위가 전북 군산시 옥도면 개야도초등학교에서 연 ‘개야도 주민 화해 한마당’에 참석해 서로 화해의 포옹을 하며 울고 있다. 한겨레 자료


― 조사8과 사건 중엔 납북귀환어부 및 재일동포 인권침해(간첩조작 등) 사건의 덩치가 큽니다.



“네. 두 사건은 2기에서 핵심적인 자료를 입수해 조사의 확장성을 가질 수 있었어요. 특히 납북귀환어부들의 경우 불법구금이나 가혹행위 등과 관련한 조사뿐만 아니라 사건 이후의 인권침해 사항까지 조사를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의 가족까지 연좌제와 보안관찰 때문에 피해를 보았던 사실을 이번에 확인했어요.”





― 어떤 자료들을 얼마나 구했나요.



“납북귀환어부 사건과 재일동포 간첩사건 관련해서 과연 자료 입수가 가능할까 확신이 없었는데, 리스트 정리해서 각 기관에 자료 요청한 결과 제법 많이 들어왔어요. 그중에는 검찰청 수사공판기록이 가장 많아요. 물론 국정원·경찰청·방첩사 자료도 있습니다. 방첩사는 조사 관련성을 확인한 뒤 주기 때문에 가장 까다롭습니다. 분량은 어마어마해요. 두 사건 각각 수만장씩 됩니다. 납북어부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대략 3600여명 된다고 해요. 2기에서는 진실규명을 1200명 했어요. 이미 확보한 자료로 나머지 2400명도 조사가 가능한 정도에요. 다만 시간이 부족했어요. 3기에서는 추가 형사처벌과 이후 어부들이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도 규명해야 합니다.



재일동포 사건의 경우에는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나뉘는데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걸린 모국 유학생 간첩사건 △사업 등으로 한국에 왔다가 간첩이 된 경우 △내국인이 일본에 유학 갔다가 발생한 사건 △내국인이 일본에 사업차 또는 친지 방문차 갔다가 발생한 사건 등입니다. 저희 과에서는 9개 사건을 진실규명했습니다. 2기 활동 종료하면서 저희가 입수한 자료는 사건별로 신청서부터 결정통지까지 꼼꼼히 정리해 편철한 뒤 이관해 놓았어요. 그중 몇몇 사건은 3기에서 곧바로 조사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잘 활용되기를 바라요.”



2기 진실화해위 홍수정 조사8과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기 진실화해위 홍수정 조사8과장이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4·9통일평화재단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납북귀환어부 사건은 직권조사로 했네요.



“이 사건은 2기에서 가장 먼저 진실규명을 했고, 또 처음으로 직권조사(2022년 2월22일 결정)했습니다. 2기에서 8개 사건을 직권조사했는데 그중 2개를 저희 과에서 했어요. 하나는 납북귀환어부 사건이고 또 하나는 시국사건 관련자 교원 임용제외 사건입니다. 정부가 전교조 교사들은 해직시키고 예비 교사들은 임용배제를 해버린 건데, 진실규명 뒤 피해구제를 위한 입법(시국사건 관련 임용제외 교원의 피해회복을 위한 조치에 관한 특별법)이 이뤄져 더 뜻깊었어요. 1기에서는 2007년 재일동포 북송저지 공작 사건(1959년 재일교포북송저지 공작원으로 선발된 이들이 일본으로 밀파되는 과정에서 12명이 조난하거나 체포돼 방치된 일)이 진실규명되고 5년 뒤인 2011년 ‘재일교포 북송저지 특수임무수행자보상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거든요. 이런 식으로 진실규명 뒤 피해구제를 제도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춘재 연쇄살인의 여덟 번째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 2020년 12월17일 재심으로 살인범의 누명을 벗은 윤성여씨 등 ‘이춘재 연쇄 살인\' 수사과정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2021년 1월25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춘재 연쇄살인의 여덟 번째 범인으로 지목돼 20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 2020년 12월17일 재심으로 살인범의 누명을 벗은 윤성여씨 등 ‘이춘재 연쇄 살인\' 수사과정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2021년 1월25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 이춘재 사건(1986~1994년 15명을 살해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해 용의자로 몰린 분들 인권침해 사건은 엄청 큰 관심을 받았어요.



“사실 경기남부경찰청에서 굉장히 많이 협조해줬어요. 이춘재 사건 수사 원기록 전체를 사건 조사 끝날 때까지 대출해줬거든요. 5층에 보면 조사8과 옆에 문서고가 있는데, 초기에는 문서고가 비어있었는데 그곳이 다 찰 정도였어요. 1톤 트럭 한 대 반 분량이었거든요. 제가 보통 20만쪽 된다고 했는데, 정확한 쪽수도 모르겠어요. 이춘재 미제 수사팀에서 갖고 있던 기록을 통으로 가져왔던 거죠. 알다시피 이 사건으로 인해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가 상당수일 겁니다. 그런데 실제 조사가 가능한 피해자는 많지 않았어요. 사건 자체가 예민한 이유도 있고요. 다만 3기 위원회에 사건을 신청하는 피해자는 있지 않을까 싶네요.“





― 1987년 대선 직전에 발생한 칼기 사건(KAL 858 폭파사건)은 조사 중지됐어요.



“유족들이 우리 위원회에 신청한 내용에는 사건 발생 이후 받았던 인권침해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칼기 동체(인도양 안다만 해역에서 폭파된 후 실종된 잔해)를 찾고자 하는 바람도 전했고요. 아쉬운 점은 칼기 사건은 1기 때도 조사관이 국정원 출입하면서 관련 자료를 필사해서 가져왔는데, 원기록을 보지 못했던 측면이 커요. 그 자료들은 외부로 나온 적이 없어요. 2기에서도 국정원에 계속 자료를 요구했는데, 마지막까지 자료반출이 불가하다는 입장이었어요. 그렇게 협의하며 시간을 끌다가 조사다운 조사를 할 수 없었어요. 3기에서도 유족분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사건을 신청하지 않을까 합니다.”





― 조사8과 조사관이 마지막에 18명이었던데, 과장으로서 조사관들을 쪼나요?(웃음)



“아뇨. 우리 과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조사관보다 제가 20%는 더 일해야 한다는 마음이긴 했습니다. 조사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쪼지는 않았을 거예요. (웃음) 제가 아마 누군가에게 ‘이것 좀 하라’고 했을 때 ‘자기는 안 하면서’ 라고 뒤에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조사관들은 공무원증과 조사관증, 비취(비밀문서취급)인가증을 갖게 되는데, 저의 정체성에 가장 맞는 건 조사관증이예요. 저는 조사과장이자 조사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희 과에 해당 조사 분야에 생소한 조사관들이 많았어요. 초기에는 이들에게 ‘조사 프로세스’에 관해 짚어줘야 하는 게 많았고요. 진실규명 결정될 때까지 규명과제를 정확히 잡아줘야 하는 것도 제 역할이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조사관들과의 토론과정이 많았어요.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건 조사보고서였어요. 조사관들이 작성한 보고서의 첫 독자는 저잖아요. 어떤 조사관은 많은 내용을 담았지만, 줄거리를 잡아 목표치에 도달하는 기승전결 구조를 갖추지 못했어요. 첫 독자인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데 국장과 상임위원 등을 위원회에서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어요. 제가 설득돼야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잖아요. 조사관 양해를 구해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고치겠다고 했어요. 저는 우리 과 보고서가 읽기 편하고 완성도 있다고 자부해요. 위원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크게 논란 있었던 사건이 없지 않았지만, 무리 없이 대부분의 보고서가 통과됐어요.”



3기 진실화해위에서 조사대상의 시간적 범위가 2001년까지 확대되면 1996년 연세대 사건 피해자들도 진실규명을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 연세대 사건이란 1996년 8월13일부터 20일에 걸쳐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주최한 범민족대회를 경찰이 강경 해산하려 하자 이에 맞서 시위를 벌이던 한총련 소속 대학생 2만여 명이 연세대학교 학내 건물들을 점거하여 농성 시위를 벌인 일이다. 사진은 당시 검거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 한겨레 자료

3기 진실화해위에서 조사대상의 시간적 범위가 2001년까지 확대되면 1996년 연세대 사건 피해자들도 진실규명을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 연세대 사건이란 1996년 8월13일부터 20일에 걸쳐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연세대학교 교정에서 주최한 범민족대회를 경찰이 강경 해산하려 하자 이에 맞서 시위를 벌이던 한총련 소속 대학생 2만여 명이 연세대학교 학내 건물들을 점거하여 농성 시위를 벌인 일이다. 사진은 당시 검거된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 한겨레 자료


― 현재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통과한 진실화해위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은 조사대상의 시간적 범위를 8년 늘렸어요. 2기에선 권위주의 통치 시기인 1993년 2월까지였는데, 3기엔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이전인 2001년 11월 사건까지 접수할 가능성이 큰데요.



“늘 상상 이상의 사건이 들어왔는데,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요? 1993년 이후의 시국사건이 많이 들어올 거라고 봐요. 1980년대에 건대 사건이 있다면, 1990년대엔 연세대 사건(1996년 한총련 사건)이 있었죠. 2기에서는 (인권침해사건 다루는) 조사2국의 5·6·7·8과 업무분장을 할 때 주요사건을 두세개씩 나누고, 시기별로 끊어서 업무분장을 했어요. 가령 1950년대 사건은 5과, 1960년대는 6과가 맡는 식으로. 이렇게 해서 8과에 1980년대 이후 사건이 들어왔는데, 따라서 8과에 압도적으로 개별사건이 많았어요. 1990년대 이후 사건도 잘 알려진 사건이든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든 상당수가 들어올 거라고 봅니다. 저희 8과에서 이춘재 사건 용의자로 몰린 분의 사건을 조사했지만, 또 다른 연쇄살인 사건에서 용의자로 몰렸던 분이 신청한 사건은 아쉽게도 범위가 지나 각하할 수밖에 없었어요. 1993년 이후 사건이었거든요. 그런 분들이 또 사건 신청할 거라고 봅니다.”



2018년 3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일원으로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 유해발굴을 할 때의 모습. 맨 뒷줄 왼쪽서 두 번째가 홍수정 과장. 앞줄 가운데가 조사단장을 맡았던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그 오른쪽은 책임조사원을 맡았던 안경호 조사6과장. 조사보고서 갈무리

2018년 3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일원으로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 유해발굴을 할 때의 모습. 맨 뒷줄 왼쪽서 두 번째가 홍수정 과장. 앞줄 가운데가 조사단장을 맡았던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그 오른쪽은 책임조사원을 맡았던 안경호 조사6과장. 조사보고서 갈무리




홍수정 과장이 2018년 3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일원으로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 유해발굴에 참여할 당시 현장에서 뼈를 정리하는 모습. 조사보고서 갈무리

홍수정 과장이 2018년 3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일원으로 충남 아산시 배방읍 설화산 폐금광 유해발굴에 참여할 당시 현장에서 뼈를 정리하는 모습. 조사보고서 갈무리


― 무탈하게 2기를 마쳤나요?



“네. 무탈했습니다. 저는 ‘뼈 닦은 보람이 있다’는 말을 종종 해요. 1기가 끝난 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4·9재단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 일원으로 유해발굴 현장의 뼈를 세척하고 정리하는 일을 했는데, 그 선생님들의 영혼이 저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죠. 앞에서 2기의 한계를 지적했는데, 3기가 출범하면 이걸 잘 극복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3기가 마지막 위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2004년 말부터 20여년을 과거사 조사판에 계신 셈이네요.



“처음에는 2000년 출범한 대통령 직속 의문사위 전직 조사관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과거사법 제정 모임(올바른 과거 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입법활동을 하게 되었는데요. 사실 그때는 ‘간 좀 보겠다’고 간 거였어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왜 이 일을 하는지 살펴보고 판단하려고요. 그런데 ‘안경호 선배’가 읽으라고 한 의문사위 보고서를 세 번씩이나 읽으면서 조사관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또 2005년 3월1일 당시 서울 영등포 청과시장 내 옛 농협공판장 자리에 있던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과거사법 제정을 위해 노숙농성 하면서 만난 유가족 어르신으로 인해 마음이 움직였어요. 따로 마련해드린 숙소를 굳이 마다하고 저희랑 함께 밤을 새운 그분은, 돌아가신 아빠와 동갑이셨어요. 아, 내가 어디서 납득할 수 없는 죽임을 당하면 우리 아빠도 여기서 이러셨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이 일에 진심이 됐죠. 그래서 20년 세월이 길게만 느껴지지 않아요. 저는 여전히 이 일이 재밌고, 앞으로도 하고 싶습니다.”





― 소명의식인가요?



“소명이라기보다는 과거사 조사 활동가로서의 목표의식 같아요. 꼭 해결하고 싶은 사건이 있고, 꼭 바꾸고 싶은 법과 제도가 있다는 거죠.”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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