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집단소송제 도입’ 늑장 부리다 맞은 쿠팡 사태 [왜냐면]

한겨레
원문보기

‘집단소송제 도입’ 늑장 부리다 맞은 쿠팡 사태 [왜냐면]

속보
뉴욕증시 일제 하락 마감…다우지수 0.45%↓
지난 1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의 모습.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지난 1일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쿠팡 본사의 모습.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이은우 |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쿠팡 사태를 보면서, 국민이 기업의 안전불감증과 무책임함에 통탄하고 있다. 국회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집단소송 제도를 도입하지 못한 국회의 늑장 대응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는 지난 21대(2020~2024년)를 빈손으로 보냈는데, 이번 22대(2024~2028년)에서도 ‘한국형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은 없는 것 같다.



“집단소송은 미국에나 있는 거 아니야?” “집단소송은 기업을 망하게 하자는 거 아니야?” “아직 시기상조 아니야?” 22대 국회의 많은 여야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모두 ‘아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집단적인 손해배상 청구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 튀르키예, 스위스와 함께 마지막 남은 3개 국가 중 하나다. 스위스는 피해자가 손해배상 채권을 양도해서, 그 법인이 소송하는 방식으로 집단소송 효과를 누릴 수 있기라도 하니, 공동 꼴찌인 셈이다.



디지털화되고, 플랫폼이 보편적인 환경에서 다수 소액 피해 사례는 빈번하다. 집단(단체)소송 제도가 없다면, 이 경우 소비자는 피해를 구제받을 수 없다.



유럽연합은 ‘디젤 게이트’(독일 자동차 회사의 연비 조작 사태)와 대규모 개인정보 침해 사건을 겪은 뒤 여러번(2013, 2017, 2018년)에 걸친 결의 끝에 2020년 ‘대표소송 지침’(Representative Actions Directive, RAD, EU 2020/1828)을 제정했다. 그 결과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은 집단 손해배상 구제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게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이 이렇게 준비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괴담 같은 ‘집단소송 포비아’에 사로잡혀, 정부와 국회는 시간을 허비했다. 그 결과, 우리는 ‘집단적 권리구제’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쿠팡 사태’를 맞게 되었다.



이번 22대 국회(2024~2028년)는 반드시 한국형 집단소송(단체소송)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최근 유럽 각국의 단체소송 제도는 다양한 제도를 보충해서 집단소송과 단체소송의 차이를 크게 줄이고 있다. 미국식 집단소송 법안에 대해서 기업들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는 상황에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한국형 단체소송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일 수 있다.



22대 국회에도 여러 집단소송(단체소송) 법안이 제출되어 있지만, 지난 10여년 특히 최근 5년의 유럽연합의 제도 발전 등을 담아내지 못해 보완이 필요하다. 기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2020년의 법안과 별반 달라진 게 없다.



그중 ‘단체소송 제도’를 도입하자는 법안도 하나 있는데, 일본식 단체소송법을 거의 그대로 본땄다. 일본 단체소송 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2016년에 도입된 단체소송법의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은 일본 안에서도 거세다. 지난해까지 손해배상에 활용된 사례가 단 8건에 불과했다. 그래서 낡은 2016년형 일본 단체소송이 아니라, 단체소송의 실효성을 높인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등의 단체소송제도의 장점을 뽑아서 한국에 맞는 ‘하이브리드형’ 단체소송 제도가 좋겠다.



유럽연합 제도에서 피해자를 대신해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소비자 단체(비영리 단체)가 중요하다. 활발하게 전문적인 소비자운동을 하는 단체라면 주체가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독일은 단체소송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단체가 약 70여개가 된다. 너무 몇개로만 좁혀 놓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유럽 각국은 제도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연구해서 마련하고 있다. 옵트아웃(탈퇴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자동으로 판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제도)을 택하거나(포르투갈, 스페인, 폴란드 등), 옵트인과 옵트아웃 중 법원이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게 하거나(벨기에 등), 내국인은 옵트아웃, 외국인은 옵트인 병행제도를 택하기도 한다(네덜란드). 프랑스와 벨기에는 판결 결과를 보고 옵트인 선택을 할 수 있게 하여 참여를 높이기도 한다.



만약, 이번 22대 국회(2024~2028년)에서도 집단(단체)소송법을 입법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로 경제협력개발기구 단독 꼴찌 국가가 될 수도 있다. 국회는 집단구제제도 도입을 위한 특별 기구를 설치해서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 기업들도 더 이상 집단소송 괴담에 기대어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끝나지 않은 심판] 내란오적, 최악의 빌런 뽑기 ▶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