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반차장] 맥북·아이폰 칩의 ‘인텔 회귀설’
[디지털데일리 김문기기자] 애플이 차세대 아이폰·맥용 칩 생산을 기존의 TSMC 단독 체제에서 벗어나 인텔 파운드리로 일부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이같은 소식은 사실 여부에 대한 설왕설래가 오갔으나 주요 외신들이 반복적으로 이 상황을 지목하면서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미국 현지 IT 전문 매체들마저도 “애플과 인텔이 구체적 검증 단계에 들어갔다”고 한발 앞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단순한 아웃소싱 변화로 보이지만, 반도체 업계가 이 소식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번 논의가 TSMC의 절대 독주 구조, 인텔의 10년 만의 부활, 삼성전자의 전략 지형 변화라는 세 갈래의 메가트렌드를 동시에 자극하는 보기 드문 사건이기 때문이다.
애플은 A17 프로, M3 시리즈에 이어 앞으로 등장할 칩을 모두 TSMC의 3나노 공정(N3) 에서 생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업계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TSMC의 초기 3나노 수율이 시장의 기대만큼 빠르게 개선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그 결과 애플의 제품 출시 계획에도 압박이 생겼다는 분석들이 이어졌다.
애플이 제조 파트너를 다변화하려는 시도는 단순히 가격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기 어렵다. 아이폰·맥 라인업이 미래 AI 생태계의 핵심 게이트웨이로 자리 잡으면서, 애플 실리콘의 발전 속도가 기업 경쟁력의 중심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애플 내부에서도 '초미세 공정의 제약을 한 업체에만 맡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위험하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히 올해 하반기 들어 애플 내부 임원 이탈이 연달아 발생하며 조직 안정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진 것도 변수다. 반도체 설계·칩 전략·AI 플랫폼을 이끌던 핵심 인물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공정 다변화와 엔지니어링 인력 재배치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요구도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텔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는 가장 큰 이유는 18A 공정의 성능과 속도가 예상보다 빨리 끌어올라왔다는 데 있다. 오랫동안 파운드리 경쟁에서 뒤처졌던 인텔이지만, 지난해 말부터 인텔 내부와 미국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맞물리며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인텔의 18A 공정은 미국 내 제조라는 지정학적 안정성과 함께 애플이 요구하는 전력 효율·성능 목표를 충족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분석기관 IC 인사이츠는 “애플이 인텔 공정 테스트를 통과시키는 순간, 인텔 파운드리는 사실상 10년 만의 부활을 공식 선언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인텔의 공장 증설에 2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미국 내 첨단 제조의 재건을 국가 전략으로 삼고 있다. 애플이 인텔과 손을 잡는 순간, 이는 기술적 선택을 넘어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의지의 상징적 사건으로 자리 잡게 된다.
◆흔들리는 TSMC 독주 구도
TSMC는 그동안 애플, 엔비디아, AMD, 퀄컴 등 전 세계 대형 고객사를 독점적으로 확보하며 시장 점유율 60% 안팎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애플이 생산량의 일부라도 인텔에 넘긴다면, 그 여파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TSMC가 애플 물량의 10%만 잃어도 연간 매출의 3~4%가 흔들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심리다. 애플이 단 한 번이라도 ‘TSMC 외의 대안을 현실적으로 고려했다’는 사실 자체가, 향후 계약 협상이나 공정 로드맵에서 TSMC의 절대적 영향력을 느슨하게 만드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TSMC 내부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듯, 최근 몇 달간 2나노 공정 개발 속도를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으며, 애플에 대한 단독 계약 유지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공급망 다변화라는 흐름이 글로벌 전반에서 강화되는 만큼, TSMC가 예전처럼 모든 고객사를 완전히 붙잡아두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번 논의는 삼성전자에도 불편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삼성은 GAA 3나노 공정에서 업계 최초 양산에 성공했지만, 고객사가 제한적이고, 애플과의 협력 가능성은 수년째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애플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TSMC 외 파트너를 시험하기 시작한다는 사실 자체가 삼성에게는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특히 패키징 분야에서 삼성은 이미 강점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삼성의 패키징 기술 경쟁력이 다시 평가받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애플이 미래의 AI 칩에서 메모리와 패키징을 얼마나 중시하느냐에 따라 삼성의 존재감은 생각보다 빠르게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논의와 관련한 시사점으로 애플이 지금까지 TSMC를 완전히 신뢰해왔다는 점과 더 나아가 그 애플조차 파운드리 다변화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정도로 시장이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미국 카네기멜론대의 반도체 경제학자 브라이언 스톤 교수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지금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은 과거처럼 ‘TSMC냐 아니냐’의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다. 공급망 충격, 지정학, AI 수요 급증이 겹치면서 애플 같은 초대형 고객조차 위험을 분산할 필요가 생겼다. 이는 TSMC·인텔·삼성 모두에게 새로운 경쟁 단계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매튜 콜린스 가트너 수석 애널리스트 역시 “만약 애플이 인텔을 선택한다면, 이는 기술적 판단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판단이 결합된 결정이 될 것이다. 미국 정부가 인텔을 밀고 있는 상황에서 애플이 일정 부분 협조하는 것은 충분히 전략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편, 결과적으로 이번 논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애플의 공급망 전략이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는 미래의 반도체 판도를 뒤흔들 중요한 시작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TSMC가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시대는 서서히 변곡점을 맞고 있으며, 인텔은 되살아날 기회를 맞았고 삼성전자는 자신이 가진 기술적 강점을 기반으로 새로운 전략적 균형점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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