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AI 이제 2라운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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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3·TPU 비장의 무기 통했다...구글, AI 2차 대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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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엔비디아도 오픈AI도 긴장
구글의 '제미나이3' 이미지 생성 기능으로 만든 그래픽. |
"검색 독점권을 잃을까 봐 두려워 인공지능(AI) 발전을 일부러 축소했던 거다."(미국 법무부, 구글 검색 시장 반독점 관련 소송 과정에서)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3'가 출시된 후 대부분의 벤치마크에서 오픈AI의 GPT-5.1 성능을 앞지르며 AI 전쟁 2라운드가 열렸다. 검색 공룡 '구글 할아버지'의 귀환이다. 사용자는 이미지 생성 AI 모델인 '나노 바나나'와 유튜브 요약 등 서비스 편의성에 환호하는 반면, 생성형 AI 선두 업체 오픈AI는 3년 전 오픈AI의 출시 직후 구글이 그랬던 것처럼 '코드 레드'(비상경계)를 발동했다.
크롬 강제 매각을 당할 뻔했던 구글은 올해 9월 1심 결과 반독점 사법 리스크에서 일단 벗어났다. 검색 시장을 장악했지만 AI로 인해 시장 변화가 시작된 점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이후 지난달 18일 제미나이3를 출시하면서 구글이 오히려 AI 시장을 흔들었다. 구글이 검색시장에서 헤게모니를 뺏길까봐 일부러 AI 발전 수준을 축소했다는 미국 법무부의 주장에 눈길이 간다.
제미나이3의 추론 및 멀티모달(글자·소리·이미지 등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통합 처리하는 것) 이해능력은 GPT-5.1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용자수는 3분기 기준 약 6억5000만명(월간 활성 이용자 기준)으로 챗GPT의 8억(주간 활성 이용자)명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전분기 대비 2억명 늘어난 것이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다른 빅테크 주가가 10월 말 이후 맥을 못추고 있는 것과 달리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주가는 날고 있다. 4월 저점 이후 120%가량 급등해 시가총액 4조달러(5일 기준 3조8800억달러)를 바라본다.
구글의 제미나이 로고 /로이터=뉴스1 |
오픈AI는 내부적으로 초긴장 상태다.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가 AI 쇼핑 등 부가서비스 개발을 늦추더라도 챗GPT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을 주문했다. 오픈AI가 가졌던 '선점' 효과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갖춘 구글 등 미국 내 빅테크뿐 아니라 같은 스타트업인 앤트로픽, 퍼플렉시티, 그리고 딥시크 등 가성비를 내세운 중국 AI업체들, 프랑스의 미스트랄 AI까지 경쟁 모델이 전방위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AI 시장이 특정 기업의 독주를 넘어 불특정 다수가 무한경쟁하는 'AI 2.0'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글은 다양한 사업부를 갖췄고, 막강한 현금흐름을 무기로 AI 개발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를 오픈AI보다 훨씬 과감하게 단행할 수 있다. 검색시장 지배력을 토대로 제미나이를 크롬과 통합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유튜브·크롬 등 기존 플랫폼에서 확보한 데이터에 공격적 마케팅을 결합해 제품 개발 주기도 단축하고 있다. AI 개발 성과가 광고, 클라우드를 비롯해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높여주는 시너지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이다.
AI 전쟁 2라운드에서 구글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AI 칩에서 엔비디아의 대안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주목받은 제미나이3 등의 학습을 위해 구글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텐서처리장치(TPU) 칩을 사용하면서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의존도를 크게 낮췄다. GPU 구매는 물론 유지, 감가상각 비용 등의 부담을 덜어내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
구글이 자체 AI 칩으로 오픈AI를 앞지르자 메타도 구글로부터 TPU를 대량 구매하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계약이 성사되면 구글이 칩 공급 주체로 올라서 AI 반도체 시장의 경쟁 구도가 크게 바뀌게 된다. 구글 외에 아마존웹서비스(AWS)도 지난 2일 자체 칩 '트레이니엄 3'를 공개하며 AI 칩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오픈AI 역시 브로드컴과 함께 자체 AI 칩 공동 개발에 나선 상태다. TPU가 대안으로 주목받으면서 지난달 25일 엔비디아는 자사 AI 칩 기술이 더 앞서 있다고 소셜미디어 X에서 반응하기까지 했다.
AI 모델에선 오픈AI의 선점 효과가, AI칩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에 균열이 일며 생태계 전반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AI 기업들이 AI 칩 공급처를 다각화하고 있고 이는 엔비디아에 또 다른 위협"이라고 짚었다.
벤처캐피탈리스트 벤 길버트는 팟캐스트 '어콰이어드'(Acquired)에서 막대한 개발 비용에도 불구하고 정작 AI 모델 자체로 순이익을 내는 기업이 없다는 점을 짚으며 AI 2라운드에서 구글의 부상을 경고했다. 그는 "수도꼭지(자금 조달)가 막힐 경우 구글은 기존 검색 사업이나 AI 시장에서 자립하는 경쟁자를 볼 수 없을 것"이라며 "AI가 어떤 도구가 될지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점이 특히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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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역대급" 찬사 쏟아졌다…구글 '제미나이 3', AI 선두 빼앗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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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한국형 AI가 경쟁력을 가지려면…1위 산업 데이터 활용할 수 있어야
'제미나이3가 오픈AI를 이겨서 오픈AI가 삐친 그림을 그려줘'라는 텍스트를 입력했을 때 생성된 이미지. 위부터 제미나이, 챗GPT. /사진=김소연기자. AI로 생성. |
"특정한 분야를 꼽을 수 없다. 모든 부분이 너무 좋다."
구글 딥마인드가 공개한 차세대 AI(인공지능) 모델 '제미나이 3'(Gemini 3)로 인한 충격파가 글로벌 AI 시장에 이어 한국도 덮쳤다. 출시된 지 2주가 흘렀지만, 모든 부분에서 기존 AI 모델 성능을 압도하는 제미나이 3에 대한 찬사를 온라인 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제미나이 3가 오픈AI를 꺾고 AI 세대 교체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한국의 AI 산업에 시사하는 바도 있다.
제미나이 3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부분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처리속도, 추론 능력, 연산 효율, 멀티 모달 등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거의 모든 평가 지표에서 현존하는 AI의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구글에 따르면 제미나이 3.0의 수학추론능력은 직전 모델인 제미나이 2.5 대비 20배가량 개선됐다. 또 글로벌 AI 평가기관인 LM아레나 리더보드에 따르면 가장 어려운 난이도의 성능 평가인 '인류의 마지막 시험(Humanity's Last Exam)에서까지 제미나이 3 프로가 37.5%의 정답률을 기록, 오픈AI의 GPT 5 프로(31.6%)를 훨씬 앞섰다.
제미나이 3는 AI 모델의 약점으로 지적돼온 복합 논리 계산 능력이 크게 강화됐고 과학 추론 분야에선 연구 보조 역할까지 가능한 수준에 근접했다. 멀티모달 기능은 완성형에 가깝다는 평가도 나온다. 많은 AI 모델들이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등 여러 데이터를 한번에 처리하고 있지만, 제미나이 3는 영상을 시청하며 그 내용을 바탕으로 주어진 기술 문서의 오류를 진단하는 등 한층 진화한 멀티모달 역량을 갖췄다.
한 AI 전문가는 "앞서 제미나이가 벤치마크를 약간 변형하거나 유리하게 조합하는 방식의 구차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엔 그럴 필요 없이 모든 공인된 방식의 벤치마크에서 높은 성능을 자랑했다"면서 "무엇보다 그동안 제미나이가 챗GPT를 뛰어넘은 적이 넘은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확실히 넘어서 버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했다.
제미나이3에 몇개의 프롬프트를 입력해 왼쪽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이태원의 특성을 살린 이미지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알아서 정보를 검색해 녹사평 다리, 이슬람사원, 박물관 등을 삽입했다.오른쪽은 동일한 프롬프트를 입력했을 때 챗GPT가 생성한 결과물. 모두 무료 모델을 사용했다. /사진=김소연 기자, AI로 생성된 이미지. |
제미나이의 성능 개선은 AI 전문가가 아닌 대중에게도 체감된다. 한줄 문장으로 실사와 비슷한 이미지를 10초 만에 생성하는 '나노 바나나 프로'와 동영상 제작 '비오(VEO)3', AI 기반 요약 서비스인 노트북 LM 등은 이미 실생활에 녹아들었다. 공학도들은 몇 마디 말로 원하는 느낌의 앱을 짜주는 바이브 코딩에 감탄을 연발한다.
강형구 한양대학교 교수는 "예전에 파워포인트 자료 만드는 데 1시간 넘게 걸렸는데, 지금은 (제미나이가) 굉장히 뛰어난 품질로 단 5분 만에 만들어준다"면서 "직장 내에 PPT 등 가짜 노동이 많은데 이를 없애는데 제미나이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미나이 3 출시를 기점으로 글로벌 AI 산업 주도권이 오픈AI에서 구글로 넘어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제미나이의 뛰어난 성능은 플랫폼과 인프라를 아우르는 구글의 풀스택 역량에 있다. 유튜브와 구글 검색, 지도 등 방대한 자체 데이터로 학습한 제미나이가, 저작권 분쟁을 피해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 다른 AI보다 앞서갈 것으로 예상돼서다. 제미나이 3이 단순한 성능 진화를 이룬 것이 아니라, AI 주도 기업의 세대 교체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글로벌 AI 선두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의 국가대표 AI들도 차별화 포인트에 집중한다. 이중 NC AI(엔씨소프트)와 SK텔레콤(크래프톤) 연합은 컨소시엄에 게임사가 포함된 만큼 멀티모달 기능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AI 올스택 역량을 자랑하는 네이버(NAVER) 역시 트웰브랩스와 손잡고 멀티모달 강화를 노린다. LG AI 연구원은 지난 7월 비전-언어 통합 모델인 멀티모달 AI '엑사원(EXAONE) 4.0 VL'를 공개했다.
또다른 AI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AI 선두권 기술 경쟁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대중이 체감할 효능 차이가 크진 않을 것이고 한국형 AI에도 기회가 있다"면서 "한국형 AI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제조·유통·수출·국방·K컬처 등 한국이 1위인 산업 데이터를 우리 AI가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김소연 기자 nic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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