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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410㎞ ‘젖은 마그마’ 솟구쳐 생성” 한반도 화산 기원설 나왔다

동아일보 조가현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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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410㎞ ‘젖은 마그마’ 솟구쳐 생성” 한반도 화산 기원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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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틀 심부 발생 ‘열점화산’과 달리… 백두산-한라산 화산은 규칙 없어

‘410㎞ 맨틀 전이대가 기원’ 가설… 국내 연구진, 수치 모델링으로 구현

지름 10∼20㎞짜리 ‘마그마 방울’… 서로 다른 경로로 연간 4㎝ 상승

한반도에 순서 없이 불규칙 분포
한라산 정상에 위치한 백록담. 이창열 연세대 교수 연구팀은 백두산과 한라산 등 동북아 판 내부 화산이 지하 410km에서 올라오는 ‘맨틀 비’로 형성됐을 가능성을 수치 모델링으로 제시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한라산 정상에 위치한 백록담. 이창열 연세대 교수 연구팀은 백두산과 한라산 등 동북아 판 내부 화산이 지하 410km에서 올라오는 ‘맨틀 비’로 형성됐을 가능성을 수치 모델링으로 제시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백두산, 한라산, 울릉도 등 한반도와 동북아 곳곳에 흩어진 화산들의 특성은 지질학계에서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하와이처럼 맨틀 심부에서 솟아오르는 열점 화산과 달리 뚜렷한 규칙 없이 분포하기 때문이다. 국내 연구진이 동북아 판 내부 화산의 기원이 지하 410km ‘맨틀 전이대’에 있다는 가설을 수치 모델링을 활용해 처음 정량적으로 뒷받침했다.

이창열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하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비’처럼 거꾸로 올라오는 ‘맨틀 비’ 현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연구진이 최근 개념 수준에서 제안한 맨틀 비 현상의 가능성을 수치 모델로 확인한 성과다. 연구 결과는 지구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지질학(Geology)’에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게재됐다.

● 한반도 화산 불규칙 분포 이유

기존 판 내부 화산은 대부분 ‘맨틀 플룸(mantle plume)’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맨틀 플룸 이론은 지구 깊은 곳에서 뜨거운 맨틀 기둥이 솟아올라 지각을 뚫고 나온다는 개념으로 하와이나 옐로스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한반도와 중국 동부, 몽골 일대에 분포하는 수십 개의 제4기 화산들은 이런 경향을 따르지 않는다. 지진파 단층 촬영이 정밀해지면서 한반도 아래에서는 맨틀 플룸을 가리키는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잇따랐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태평양에 있는 해산(海山)들의 약 80%는 열점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지하 410∼660km 사이에 있는 ‘맨틀 전이대(MTZ)’에 주목했다. 이 영역에는 물을 대량으로 흡수할 수 있는 ‘함수 광물’들이 존재한다. 해양판이 섭입(판이 다른 판 밑으로 파고듦)하면서 맨틀 전이대로 들어가면 판에 포함된 물이 이 광물에 흡수된다. 마치 물을 머금은 젖은 스펀지와 같은 상태다.

문제는 이 ‘젖은 맨틀’이 다른 곳에서 섭입하는 해양판에 의해 밀려 올라갈 때 발생한다. 함수 광물이 410km 경계를 넘어 얕은 곳으로 밀려 올라가면 압력이 낮아지면서 물을 포함할 수 없는 감람석으로 상전이가 일어난다. 이때 광물에 갇혀 있던 물이 대량으로 방출되고 이 물이 주변 맨틀의 녹는점을 급격히 낮춰 마그마가 생성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410km 경계에서 생성된 마그마는 하나의 큰 덩어리로 상승하지 않는다. 물을 많이 머금어 밀도가 낮아진 마그마는 ‘고립파’라고 불리는 지름 10∼20km의 방울 형태로 쪼개져 비처럼 위로 올라간다. 마그마 방울들이 서로를 디딤돌 삼아 올라가는 징검다리 현상도 관찰됐다. 이 마그마 방울들은 연간 4cm 정도의 속도로 상승해 암석권 하부에 도달하는 데 약 1000만 년이 걸린다. 각 방울이 서로 다른 경로로 무작위하게 상승하기 때문에 지표에서도 화산이 시간적·공간적 순서 없이 불규칙하게 분포하게 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 활용된 모델이 백두산과 철원-연천 용암대지 같은 동아시아 화산뿐 아니라 태평양, 유럽, 호주 동부 등 전 세계 여러 지역에 무작위로 퍼져 있는 화산들을 함께 설명할 수 있는 공통 원리를 제시한다”고 밝혔다.

● “백두산에도 마그마 지속 공급”

이번 연구는 전 지구적 틀을 제시한 것으로 지역별 세부 차이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실제로 동중국 지역 화산과 한반도·만주 지역 화산은 지구화학 성분이 다르고 백두산과 한라산도 성분 차이가 있다.


이 교수는 “후속 연구에서 동중국 지역은 맨틀 비, 한반도와 만주 지역은 습윤 플룸(wet plume), 울릉도·독도는 변형된 형태의 습윤 플룸으로 지역별 차이를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습윤 플룸은 물을 머금은 맨틀 물질이 소규모로 위로 솟아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이 교수는 “당장 내일 화산이 폭발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백두산처럼 미래에도 분출 가능성이 있는 화산의 경우 마그마 공급이 맨틀 내부에서 지속되고 있다”며 “지질학적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활동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화산 형성을 넘어 지구 내부 물의 장기 순환을 이해하는 데도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수천만 년 전, 심지어 수억 년 전 맨틀에 저장됐던 물이 판 내부 화산을 통해 지표면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마크 헤서 미국 오스틴 텍사스주립대 교수는 “판 내부 화산 형성의 참신한 원리를 제시했으며 후속 연구의 토대가 될 수 있다”며 “특히 마그마 방울들이 서로를 디딤돌처럼 이용해 상승한다는 징검다리 개념이 훌륭하다”고 덧붙였다.

조가현 동아사이언스 기자 ga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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