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FDI)가 늘고 국외에 설립한 자회사의 이익유보금이 불어나면서 원화 약세가 굳어지고 있다. 기업들의 국내 투자와 달러 송금을 늘리기 위해선 창의적인 세제·금융 혜택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해외 자회사 이익을 국내로 송금할 때 익금 불산입 범위를 확대하고, '자본 리쇼어링'도 유턴기업 국내 복귀로 인정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과감한 인센티브 제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금 불산입이란 특정 법인이 다른 법인으로부터 받은 배당금 중 일정 비율을 익금에서 제외해 세금을 줄여주는 제도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동안 국내 기업 등의 FDI는 484억5000만달러 늘었다. FDI 잔액은 지난해 말 6584억7000만달러에서 올 3분기 7069억2000만달러까지 불어났다.
FDI가 계속 확대되는 것은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는 주춤하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 3분기까지 외국인 국내 투자 신고는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다. 기존 신고분이 실제 투자로 이어진 것도 3분기 누적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가량 줄었다.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 증가에는 인건비, 규제, 공급망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문제는 갈수록 해외 투자가 늘면서 국내 산업 공동화는 물론 원화값 추락까지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국내 기업의 FDI가 확대되면서 국내 기업의 국내 달러예금 잔액이 늘어나는 동시에 해외 자회사 유보금도 늘어났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자회사를 통해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는 데도 기업들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셈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해외 자회사 유보금을 나타내는 국제수지표 '재투자수익수입'은 올해 1~3분기에 66억6000만달러 증가했다. 작년 같은 기간 해외 유보금 증가(41억7000만달러)를 뛰어넘는다. 2023년에는 유보금이 감소했는데, 이유는 세법 개정으로 해외 자회사 익금불산입률을 95%로 높여줬기 때문이다. 해외 자회사 배당금 익금 불산입을 더 확대하면 환율 안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로 올해 세제개편안에 대한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해외 자회사 배당금 익금 불산입 확대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국민의힘은 더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감면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된다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도 미온적이었다. 기재부는 익금 불산입 제도의 애초 취지가 이중과세 조정 장치라는 측면에서 이를 환율과 연계시키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 조세소위원회에서 해외 자회사 배당금 익금 불산입 확대 관련 논의가 이뤄졌지만 여야 간 이견이 커서 보류됐다"고 전했다.
FDI와 해외 유보금 외에도 국민연금과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채권 투자도 국내 달러 수요를 자극하며 원화값 추락에 일조하고 있다. 한은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정부 증권투자 잔액'은 지난 3분기 말 5125억달러로 사상 처음 5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말에는 4295억달러였는데 1년도 안 돼 700억달러 이상 불어났다.
서학개미 투자가 대부분인 '비금융기업 등의 해외증권 투자 잔액'은 3분기 말 2003억달러로 사상 처음 2000억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작년 말 잔액은 1400억달러였는데 1년도 안 돼 600억달러 이상 늘었다.
문제는 내년 이후다. 한미 관세협상 공동 팩트시트와 양해각서에 따라 내년부터 3500억달러 대미 투자가 본격화되기 때문이다. 삼성, SK, 현대차 등 대기업은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앞으로 15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3500억달러 중 2000억달러는 국내에서 조달한 달러로 미국에 투자해야 한다. 정부는 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년에 외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을 당초 14억달러에서 50억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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