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재이 한국세무사회장 |
이런 광고에 접속하면 회원 가입과 개인정보 열람 동의를 해야 하고 이때부터 세무 플랫폼은 내 개인·과세정보를 마음껏 들여다보면서 맞춤형 서비스에 참여시킨다. 한 세무 플랫폼은 회원이 2100만명이라니, 국민 둘에 하나는 회원인 셈이다.
세무 플랫폼은 최근 정규직 일자리가 플랫폼 노동자로 대체돼 300만명을 넘기면서 급성장했다. 소득이 적어 소득세가 없는데도 3.3% 원천징수로 '어쩌다 사장'이 된 플랫폼 노동자의 세금을 되찾아주며 신박한 혁신 경제를 창출해냈다.
하지만 더 낸 세금 환급 사업은 끝이 있는 한계에다 국세청이 수수료 없이 환급해주자 '세금 장사꾼' 세무 플랫폼은 가짜 공제와 가짜 경비를 넣어 수입원인 환급 세액을 만드는 대담한 탈세 행각에 나섰다.
2000만 봉급생활자의 연말정산은 먹잇감이다. 최근 국감에서 국세청이 환급을 신청한 1443명을 조사해 99%인 1423명이 부당 공제를 받은 것을 적발해 약 41억원을 추징했다는 놀라운 사실이 공개됐다.
소득이 있거나 죽은 사람도 부양가족으로 공제 신청을 하는 등 대부분 세무 플랫폼의 '억지 환급 신고'였다. 불과 2000건가량을 조사했을 뿐인데 환급을 신청한 수십만 건을 모두 전수조사하면 어떻게 될까.
놀라운 것은 국세청의 태도다. 납세자에게만 추징을 했지 수입을 얻기 위해 부당 공제를 주도한 세무 플랫폼에는 어떤 제재도 하지 않았다. 세무사가 탈세 조언만 해도 직접 신고한 것으로 처벌하는데, 인공지능(AI) 알고리즘 프로그램만 제공했고 '신고 행위'는 납세자가 했다는 주장을 그대로 믿은 것이다.
세무조사 없는 850만 소규모 사업자의 종합소득세 신고는 탈세의 온상이다. 지난 5월 2만9000명 소규모 사업자의 종소세 신고를 전산 장애로 통째로 누락시키는 대형 사고를 친 '쌤157 사태'는 세무 플랫폼으로 인한 국민 피해와 탈세의 민낯을 다 보여줬다. 제때 신고를 못해 받아야 하는 20~100% 세액 감면은커녕 가산세만 부담했고, 대부분 가짜 경비를 넣어 신고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에도 국세청은 추징만 했을 뿐 세무 플랫폼의 책임을 묻거나 납세자 피해를 돌보지 않았다.
관대한 정부에 자신감을 찾은 세무 플랫폼은 손님이 줄까봐 '안심 환급 보상제'까지 내놓았다. 하자 보증처럼 소비자 보호 장치 같지만 사실은 탈세를 하다 걸리면 보상해주니 걱정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정부의 의지와 검증 구조하에선 실제 탈세도 못 잡지만 걸려도 책임이 없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봉이 김선달' 사업을 그만둘 이유가 없다.
작년 경정 청구가 소득세만 65만건에 달하고, 환급액이 5조2378억원으로 5년 전보다 두 배가 됐으며 불복 환급액 1조3158억원의 4배에 달한다.
세무 플랫폼이 주도하는 나라 곳간 빼먹기에 재정이 줄줄 새고 행정력까지 마비됐다. 성실 납세로 채워 가는 나라 곳간을 빼먹고 국민을 피해자로 만드는 탈세 행각에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나라 곳간 열쇠를 넘겨주는 것과 같다.
더 심각한 것은 국민 마음에 '성실 납세가 손해'라는 후진국형 납세의식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도 성장기가 아닌 지금 충분한 재정이란 없다. 경제가 어려운데 국민 의식까지 하락한다면 국가 성장동력인 나라 곳간이 허망하게 무너져내리는 건 생각보다 시간문제다.
[구재이 한국세무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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