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여순사건 당시 이경모 옛 호남신문 사진기자가 촬영한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여성. 전남 여수시 제공 |
보수 편향 논란이 일었던 ‘여순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기획단)이 새롭게 꾸려졌지만 정작 보고서를 작성하는 실무 직원은 3명에 불과해 부실 작성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7일 기획단, 전남도, 여순사건 피해자 유족 등의 말을 종합하면,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여수·순천 10·19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2기 기획단을 새롭게 구성해 지난달 25일 출범시켰다.
2기는 여순사건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을 단장으로 순천대·조선대 교수진, 유족 등 위촉직 단원 10명과 법무부·국방부·행정안전부·법제처·전남도 등 당연직 단원 5명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했다. 기획단은 여순사건법에 따라 늦어도 2027년 10월4일까지는 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보고서에는 사건의 성격, 국가 책임 범위, 희생 규모, 피해 유형 등이 담길 예정이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2기 기획단 구성에 대해 전문성과 지역 정서를 고려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지만 정작 보고서를 작성하는 실무 직원은 3명에 불과해 부실 보고서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획단 산하 진상규명과 보고서팀은 전문 임기제 공무원 가급 1명과 나급 2명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직권조사 여부 검토서 작성, 조사대상자·참고인 진술 청취, 인적·물적 피해 조사, 국내외 자료수집과 진상조사보고서 작성 지원 등을 해야 한다.
여순사건과 형제사건인 제주 4·3사건은 2001년 1월 기획단원 15명, 전문위원 5명, 조사원 15명 규모로 출범해 2003년 2월 보고서 초안을 작성했고 같은 해 10월 정부 공식 보고서를 확정했다. 4·3사건법 개정으로 2022년 정부가 주도한 추가 진상조사는 전문 임기제 4명과 조사연구원 17명 규모로 시작했다.
법에서 정한 여순사건의 시간적 범위는 1948년 10월19일∼1955년 4월1일, 4·3사건은 1948년 4월3일∼1954년 9월21일로 비슷하지만 여순사건 조사 인력은 제주 4·3에 비해 5분의1이고 전문위원은 전무한 것이다.
여순사건 유족들은 또 단장을 포함한 단원 모두 비상임이기 때문에 책임감과 권한이 미흡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순10.19범국민연대’는 지난달 27일 성명을 내어 “기획단은 비상임, 지원 인력은 단 3명이다. 보고서 작성까지 최대 2년 남았다. 시간이 없다. 사람도 없다. 예산도 없다”며 “대통령이 약속한 진정한 진상조사를 위한 정부와 국회 차원의 인력 충원과 예산 증액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기 단원으로 참여한 유족 2세 이형용씨는 “2023년 12월 1기 기획단이 출범할 때부터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실제로 지난 2년간 이들이 한 일은 외주 용역에 대한 관리뿐”이라며 “현장 조사와 원본 자료 발굴·검증, 왜곡 과정 추적 등이 필요하지만 지금의 인력 구조로는 기존 문헌을 정리한 수준의 보고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김득중 단장은 “여순사건은 국군 대부분이 진압작전에 동원됐기 때문에 조사 규모가 방대하고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 위원회는 이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빈약하다”며 “정부와 국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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