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W] AI 전환기, 애플을 떠나는 사람들… 내부 균열 가속
겉으로 드러난 제품 라인업만 보면 애플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기업이고, 아이폰은 꾸준히 판매되고 있으며, 서비스 매출은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 탈출을 감행한 그 사람들이 어떤 분야에서 활동했는지를 확인하면 이 문제는 단순한 이직 시장의 흐름이 아니라 애플 자체 전략의 변화이거나, 혹은 전략 부재의 신호라는 해석에 가까워진다.
주요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애플의 AI 전략을 두고 '뒤늦은 전환'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애플은 역사적으로 기술 자체보다 ‘완성된 사용자 경험’을 우선시했고, 이 철학은 아이폰 이후 수십 년간 애플의 성공 공식을 이뤄낸 기반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플랫폼 전쟁으로 번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혁신은 느리고 섬세하게 만들어질 시간이 없으며 빠른 반복과 거대한 모델을 통한 실험이 우선순위로 떠올랐다. 이런 흐름 속에서 애플이 보여주는 태도는 조심스럽고 비밀에 싸여 있으며 플랫폼을 열기보다 통제하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년 동안 메타, 구글, 오픈AI는 애플 출신 엔지니어를 공격적으로 스카우트했다. 시장조사업체 리디펜스의 분석에 따르면 메타는 최근 24개월 동안 애플 출신 엔지니어를 350명 이상 영입했다. 이는 특정 경쟁사 한 곳이 애플에서 빼낸 인력으로는 이례적인 규모다. 오픈AI와 앤트로픽도 iOS 코어 프레임워크, 온디바이스 AI, 사파리 엔진팀 출신 인재를 적극적으로 찾아 영입하고 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채용 시장에서 '애플 출신 엔지니어 우대'는 이미 하나의 공식처럼 굳어졌고, 실제로 AI 스타트업들 사이에서는 '구글 출신 다음으로 비싼 인력은 애플 출신'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영학자 리처드 구즈넬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애플 내부에는 오랫동안 유지해온 폐쇄성과 완성형 제품 중심 문화가 존재하는데, 급변하는 AI 전환기에는 이 문화가 엔지니어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애플이 겪는 현상을 “전략적 굳어짐의 결과이자, 내부 동력 약화의 신호”라고 표현했다.
◆ 핵심 인력의 이탈 의미
최근 1~2개월 동안 애플 내부에서 핵심 인물들의 이탈이 연달아 이어지면서, 조직의 동요가 단순한 인사 이동이 아닌 구조적 변화의 징후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전략, 인터페이스 디자인, 법무·정책 등 회사의 중추적 축을 담당해 온 임원들이 잇따라 사임하거나 경쟁사로 이동하면서, 애플 내부 의사결정 구조와 미래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강해지고 있다.
가장 큰 파장은 존 지아난드레아(John Giannandrea)의 퇴진에서 비롯됐다. 그는 머신러닝·AI 전략을 총괄한 수석부사장으로, 검색 기술부터 온디바이스 AI, 대규모 모델 개발까지 애플의 AI 로드맵을 주도해 온 인물이다. 지안안드레아는 지난 12월 초 사임을 알리고 내년 봄 공식 퇴진을 예고하면서도 일정 기간 자문역만 유지하기로 했는데, 전문가들은 그가 애플 AI 생태계의 ‘사령탑’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공백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직후, 애플의 핵심 디자인 리더였던 앨런 다이(Alan Dye) 부사장도 회사를 떠났다. 그는 2015년 이후 iOS·맥OS·워치OS 등 애플 전 제품군의 UI·UX를 총괄해 온 인물로, 애플 디자인 철학의 근간을 유지해 온 리더였다. 다이는 메타로 자리를 옮겨 하드웨어·소프트웨어·AI를 통합하는 새로운 디자인 조직을 이끌게 되었고, 이는 애플 내부에서조차 상징적인 손실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충격을 줬다.
법무와 정책 라인에서도 흔들림이 이어졌다. 법무총괄 케이트 애덤스(Kate Adams)는 2026년 퇴임을 공식화했고, 환경·정책·사회 이니셔티브를 총괄하던 리사 잭슨(Lisa Jackson) 역시 내년 1월 회사를 떠난다. 두 사람은 글로벌 규제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 애플의 정책 방향을 조율해 온 핵심 라인이었다는 점에서 회사의 대외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더해, 애플 내부에서는 칩 개발을 책임져 온 조니 스루지(Johny Srouji) 역시 이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애플 실리콘 전략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 만약 실제로 퇴사할 경우 하드웨어 기술 로드맵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요약하자면, 애플은 불과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AI·디자인·법무·정책·칩 개발 등 핵심 축을 담당한 리더들을 잇달아 잃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를 단순한 이직의 흐름이 아니라, 회사의 의사결정 구조와 AI·차세대 전략의 혼선이 겉으로 드러나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이들의 이탈은 구체적인 사업 철회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애플카는 사실상 프로젝트가 중단됐고, 모뎀 칩 개발은 지속적인 난항 끝에 결국 올해 또는 내년 목표를 재차 미뤘다. 실리콘 산업에 정통한 한 반도체 전문가는 “애플의 모뎀 개발 난항은 단순한 기술 문제라기보다 핵심 인재들이 지쳐 떠나는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애플카 프로젝트는 최근 3년간만 세 명 이상의 부서장급 책임자가 사임하거나 역할을 이동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이러한 내부 변화를 아이폰 판매 둔화보다 더 근본적인 위험 신호로 본다. 기술 회사의 위기는 보통 매출이 꺾이고 나서 확인되지만, 그보다 앞서 나타나는 징후가 인력 이탈이기 때문이다.
◆ 정체된 전략
AI 플랫폼 전쟁이 본격화된 지난 2년 동안 애플의 행보는 분명히 느렸다.
iOS에 온디바이스 LLM을 넣겠다는 청사진은 발표됐지만, 실제 구현 수준과 확장 속도는 경쟁사 대비 뒤처진다. 메타는 이미 오픈소스 라마(Llama) 3.1 계열을 휴대폰과 PC, 클라우드 전반에 배치하고 있고, 구글은 젬마부터 제미나이까지 모델 라인업을 촘촘하게 확장했다. 심지어 삼성전자조차 갤럭시에 온디바이스 AI를 전면 적용하는 빠른 편성 전략을 취했다.
반면 애플은 여전히 비공개 테스트와 제한적 기능 적용에 머물고 있다. 일부 AI 기능은 일부 지역과 일부 언어, 일부 기기에서만 동작한다. 이 속도 차는 단순히 제품 기능의 차이가 아니라, 인재가 이탈하는 구조적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AI 엔지니어는 빠르게 실험하고 배포하며 성장하고 싶어 하지만, 애플의 내재적 구조에서는 이 속도가 나오기 어렵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실리콘밸리 테크 전략가 카일 브래넌은 최근 보고서에서 “AI 전환기에서 플랫폼 기업의 핵심 역량은 기술보다 속도”라며 “애플은 가장 강력한 생태계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설계 구조상 빠른 반복이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당면한 또 하나의 변수는 외부 시장이다. 최근 글로벌 하드웨어 판매량에서 아이폰의 성장률은 정체됐고, 서비스 부문은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매분기 증가폭은 줄고 있다. 애플 워치와 에어팟 등 주변기기 카테고리의 성장도 예전만 못하다. 주가가 고점을 찍고 횡보하는 모습 역시 테크 기업의 전환기를 예고하는 전형적 패턴이다.
여기에 기술 시장의 인력 흐름도 심상치 않다. AI 붐 이후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링 인재 시장은 이동성이 대폭 커졌고, 애플처럼 폐쇄형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가진 기업보다 오픈소스·플랫폼 중심의 기업이 더 많은 이점을 갖는다. 메타는 오픈소스 전략으로 개발자 커뮤니티를 흡수했고, 오픈AI는 세계 최고의 연봉과 연구 환경을 제공하며 우수 엔지니어를 끌어들였다.
반면 애플의 엔지니어링 문화는 철저하게 내부 중심이고, 외부와의 교류는 제한적이다. 이전에는 이를 ‘강점’이라고 부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AI 분야는 오픈 생태계와 커뮤니티 기여를 통해 발전 속도가 결정되며, 폐쇄성은 곧 개발 속도 저하로 직결된다. 그러다 보니 엔지니어들이 스스로 애플 바깥이 더 빠르다고 판단하는 순간 이탈이 가속화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AI 전략가 에단 바르텔은 최근 보고서에서 “애플 내부에서 도는 문제는 세부적이 아니라 구조적이다. AI 생태계와의 연결 부족, 온디바이스 AI 전략의 더딘 진척, 그리고 느린 의사결정 속도가 인재 이탈의 핵심 원인이다. 애플은 기술적으로 부족한 기업이 아니다. 문제는 기술을 조직적으로 활용하는 속도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애플이 AI 플랫폼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앱스토어 이후 처음으로 “플랫폼 리더십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플랫폼 리더십은 애플이 지난 20년간 누려온 절대적 우위이며, 개발자 생태계와 브랜드 충성도를 동시에 유지해온 원천이다. 이 기반이 약해지면 지금보다 더 큰 구조적 문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 50주년을 앞둔 애플, 기로에 서다
애플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하드웨어·서비스 생태계를 가진 기업이다. 그러나 그 중심에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기술 기업의 위기는 언제나 제품보다 사람이 먼저 말해준다.
결과적으로 애플은 AI 시대의 리더가 될 것인가, 아니면 혁신의 속도에서 뒤처진 채 50주년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애플은 그동안 수많은 위기론이 있었고, 대부분의 경우 놀라운 방식으로 그것을 극복해 왔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그 성격이 다르다. 제품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며, 기술이 아니라 조직의 속도 문제이며, 외부 경쟁이 아니라 내부 방향성의 문제기 때문이다.
지금 벌어지는 ‘애플 엑소더스’는 단순히 이직 시장의 흔들림이라기 보다는 미래를 가늠한 방향타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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