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12.3 비상계엄 사태가 만 1년을 맞았다. 그간 내란수괴 혐의자 윤석열 전 대통령은 파면·구속됐고, 급하게 출범한 새 정부의 국정운영도 궤에 올랐지만 비상계엄 사태의 여진은 여전히 국내 정치의 최대 화두다. 쟁점법안을 밀어붙이는 여당은 거의 모든 정치 행위의 1번 명분으로 '내란청산'을 내세우고 있고, 야당은 여당의 강경행보를 스스로 정당화하듯 여전히 계엄의 바다에서 허우적댄다.
특히 "12.3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12.3 비상계엄 1년 일성은 충격적이다. 뻔뻔함을 논하기 전에 민주주의 체제 하 제1 야당의 대표가 입에 담기에도 적절치 않은 말이다. 국민의힘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해온 헌법재판소는 12.3 비상계엄을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한 행위라고 이미 적시한 바 있다.
가치평가를 떠난 정무적 평가로도 사로(死路)에 가깝겠지만, 장 대표의 '사과 패싱'을 두고 정치권에선 정무적인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의 '개별 사과'가 쏟아지면서 야당의 분화 가능성이 감지되고, 자당 송언석 원내대표와의 엇박자 메시지로 '장동혁 고립설'도 고개를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성 지지층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장 대표의 '생존 전략'이라는 평가까지가 한 묶음이다.
"모든 것에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
미군정 하에서 벌어진 '최초의 계엄'부터 "삼류 막장 정치 드라마"로 막을 내린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계엄의 역사를 톺아보며 그 정치사회적 의미를 분석한 책 <계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비상계엄을 한 비정상적 대통령에 의한 헤프닝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말은, 계엄 사태 1년을 맞은 책임 정당 대표의 망언 속에서 다소 흥미로운 '역사'의 흐름을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 재임 시절 스스로 정치적 사로로 걸어 들어간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까지의 과정에서도, 우리는 이해하기 힘든 비정상적 정치 행보를 '해석'하기 위해 가치를 떠난 정무적 평가로 정치를 대한 적이 있다. 용납해선 안 됐을 정치 행보와 발언들이 대통령을 통해서 일상화되는 사이, 양 극단으로 분화된 우리 정치권엔 "누구라도 희생양을 만들고 말아온" 계엄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화할 토대가 형성됐다.
12.3 비상계엄이 다행스럽게도 진압된 후, 아직 끝나지 않은 진상규명의 과정에서도 계엄의 징조는 차고 넘치게 제시된 바 있다. 특히 일국의 대통령이 극우성향 유튜브에 빠져 스스로 고립의 길로 빠져든 정황이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줬는데, 안타까운 점은 윤석열이 임기 초부터 그 정황을 노골적으로 보여줘 왔다는 데 있다.
가령 임기 2년차인 2023년 윤석열은 "같은 행사에 매년 가는 것이 적절한지" 고민이라는 이유로 제주 4.3 추념식에 불참했고, 비슷한 시기 열린 대구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엔 참석하는 등 노골적인 지지층 결집 행보를 보였다. 당시 여당인 국민의힘에선 "4.3은 명백히 김 씨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던 태영호 후보가 최고위원에 선출됐고, 과거사 해결을 위한 국가기관 진실화해위원회에는 과거 '4.3은 공산세력 폭동'이라 주장한 김광동 위원장이 자리를 지켰다.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국가폭력 사건이자 역사상 두 번째 계엄령으로 수만의 사상자를 낸 제주 4.3에 대한 당·정·대의 이 같은 '원팀' 행보를 12.3 비상계엄의 징조로 해석하는 건 다소 결과론적일지라도 무리한 일이 아닐 것이다. 8.15 담화, 뉴라이트 인사 참사, 이승만·박정희에 대한 재평가 작업 등 윤석열은 재임기간 내내 '정무적 선택'을 통해 계엄과 국가폭력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역사적으로 탈각하는 데 주력했고, 이는 역설적으로 '실패한 계엄'으로 이어지면서 그의 정치적 자살을 완성시켰다.
윤석열의 이 같은 '탈역사' 행보에 직간접적으로 함께 해온 국민의힘이 이제는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역사적 평가를 '탈 가치화'하려 하고 있는 점을 보면 기시감이 든다. 내란이라는 단어가 레토릭이 되고 '계엄 옹호'가 야당 대표가 내릴 수 있는 '정치적 선택'이 될 때 비상계엄 사태의 "역사적 연원"은 옅어질 수 있다. 계엄 이후에도 국민의 40%가 직전 여당을 선택할 만큼 극단적으로 분열된 정치 지형에서는 더욱 그렇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모습을 TV 생중계로 한 시민이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
책은 6.25 전쟁을 포함해 4.3, 4.19, 5.16, 5.18, 10.26 등 11개 정치 사건을 거치며 수십 번 발포된 비상계엄의 역사를 새삼스럽게 전시한다. 여기에는 익히 알려진 사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건도 있다. 익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계엄의 역사라 하더라도 생생한 사료를 통해 다시 목격하는 당시의 상황은 새삼 충격적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계엄이 어떻게 국민의 삶을 난도질하고 옥죄어 왔는지"를 대중의 눈높이에서 전달한다.
정부·여당이 주도하는 내란청산·내란종식이 어떤 종류의 끝을 맞을지는 미지수다. 야당 시절부터 이어진 민주당의 초강경 성향이 오히려 이번 대선 당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선전처럼 의외의 역풍을 불고 올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검찰·사법의 정치화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지만, 이를 명분으로 권력분립의 경계를 흐리는 수준의 '개혁'에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와중에 야당은 대화의 기술도 명분도 잃고 얼마 안 남은 지지층을 부여잡는 자위행위에 몰두한다.
다만 이 모든 피로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명확한 가치평가를 포기할 수는 없다. 모든 것에는 역사적 연원이 있고, 그 역사에 삼켜지지도 그 역사를 외면하지도 않을 때 우리는 현대의 사건을 바로 볼 수 있다. 그 같은 관점의 확보가 여야를 떠나 정치권의 모두의 과제일 테고, 12.3 비상계엄 1년에 계엄의 역사를 돌아보는 이 책이 나온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작금의 정치를 두고 이렇게 평가한다.
"1987 체제가 확립된 이후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민주화를 이룩한 게 사실이지만,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들며 권위주의 독재로 회귀하려는 흐름 역시 강고하다. 그 일탈적 표현이 12.3 계엄이다."
▲이일속의 책 <계엄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가갸날 |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 Copyrights ©PRESSian.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