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지만 아름다운 수작 ‘프랑켄슈타인’
관계 속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해부하다 ‘제이 켈리’
핵 발사에 반응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추리·범죄물 팬이라면?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관계 속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해부하다 ‘제이 켈리’
핵 발사에 반응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추리·범죄물 팬이라면?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극장에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더 금상첨화겠지만 꼭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혼자 봐도 무방하다. 방 구석에 앉아 쪼그라드는 심장을 움켜쥘, 함께 범인을 색출하느라 손에 땀을 쥘, 잔혹한 성인 동화에 눈물 한 방울 떨굴, 두 남자의 브로맨스에 따스함을 느낄 준비만 되어 있으면 된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OTT로 즐길 수 있는 연말 신작 영화 네 편을 소개한다.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
영화인의 진심을 느꼈던 BTCA 시상식
얼마 전 20여 년 만에 로스앤젤레스 출장을 다녀왔다. 미국 유명 매거진이 주최하는 영화 관련 시상식에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시상식 제목이 눈길을 끈다. ‘Behind The Camera Awards’(이하 ‘BTCA’). 말 그대로 카메라 뒤에 있는 이들에게 상을 주는 행사다. 이 시상식이 참 감동적인 이유는 부문별로 각 영화의 스태프가 상을 받고, 그 영화의 감독이나 주연 배우가 시상자로 참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랬다. 헤어 및 메이크업 부문에 ‘프랑켄슈타인’의 아티스트 마이크 힐을 호명했는데, 상을 전하는 당사자가 다름 아닌 그 영화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였다. 그런가 하면 유명 영화배우 제이 켈리(조지 클루니)와 그의 헌신적인 매니저 론(애덤 샌들러)이 유럽에서 겪는 폭풍 같은 여정을 그린 노아 바움벡 감독의 신작 ‘제이 켈리’ 사운드트랙을 작곡한 아티스트 니콜라스 브리텔이 수상자로 호명되자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영화 ‘문라이트’와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으로 함께 호흡을 맞추었던 감독 배리 젠킨스가 등장한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던 기예르모 델 토로(사진 부산국제영화제) |
기예르모 델 토로는 마이크 힐과 이전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에서도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그러니까 두 영화에 나오는 크리쳐의 분장을 그가 맡은 것이다. 배리 젠킨스 역시 니콜라스 브리텔이 만든 음악을 두 편의 영화에 사용했다. 이런 작업을 할 정도면 그들의 관계는 가족같이 끈끈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외에도 BTCA에서는 프로덕션 디자이너, 시나리오 작가, 촬영 감독, 영화 감독 등 카메라 뒤의 인물들이 다양한 영화로 상을 수상했다. 그들을 시상하기 위해 나온 영화계 지인들은 등장 때까지 누구인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루프맨’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에게 상을 주기 위해 배우 채닝 테이텀이 나왔을 때도, ‘더 스매싱 머신’의 감독 베니 사프디에게 상을 주기 위해 배우이자 스포츠 선수인 드웨인 존슨이 등장했을 때도 관객들은 꽤나 놀라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더욱이 이들은 의례적인 멘트를 남기기보다는 오랜 세월을 함께 하고 있는 직장 동료를 응원하는 형식의 이야기를 전했다.
‘Behind The Camera Awards’(이하 ‘BTCA’). 말 그대로 카메라 뒤에 있는 이들에게 상을 주는 행사다. 이 시상식이 참 감동적인 이유는 부문별로 각 영화의 스태프가 상을 받고, 그 영화의 감독이나 주연 배우가 시상자로 참석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
그 자리에는 한국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연출했던 엄태화 감독도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한국에서도 스태프들에게 상을 주려 할 때, 감독이나 배우들이 시상자로 나와줄까요?”라고 물었다. 그는 “대부분 다 나오시지 않을까요? 함께 한 식구 같은 존재들이니까요!”라고 답했다. BTCA는 지금까지 많은 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등을 취재하며 주로 배우들(또는 감독 정도)에 포커스를 맞춰왔던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난 형식의 시상식이었다. 그래서 이 이벤트는 내가 참석하고 취재해 본 어떤 영화제보다 진심이 담겨있었고, 그 진심은 관객에게 그대로의 감동을 전해주었다.
BTCA 현장에서 상을 받은 영화들을 꼼꼼히 검색해보았다. 그중에서도 ‘프랑켄슈타인’과 ‘제이 켈리’가 눈에 띄었다. 둘 모두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 OTT 오리지널로 제작된 작품이다(무려 기예르모 델 토로와 노아 바움벡 감독의 영화인데 말이다!). 올 연말에 홀로, 친구와, 연인과,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OTT 플랫폼 오리지널 신작 4편을 추천해본다.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수작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 ‘제이 켈리’ |
연말을 함께 하기에 좋은 첫 번째 추천 영화는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변주를 통해 접해왔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음울한 서사의 달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만든다고 하니 제작 초기부터 기대감이 증폭됐다. 최근 뚜껑을 연 ‘프랑켄슈타인’은 감독의 최근 수작 중 하나인 ‘셰이프 오브 하트: 사랑의 모양’이 보여주었던 인간과 크리쳐(피조물)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상호적 관계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왜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의학의 발전에 몰두하다 광기에 사로잡히고, 자신만의 피조물을 창조해냈을까? 빅터의 이야기만 들으면 괴물은 폭력적이고 폭압적인 걸로만 이해되는데, 반대로 그(괴물)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기예르모 델 토로의 신작 ‘프랑켄슈타인’은 전자와 후자를 모두 영화 속에 담아낸다. 빅터의 이야기, 크리쳐의 시선에서 보는 이야기 등으로 챕터가 분리되어 있기에, 관객들은 마치 작가 메리 셸리의 원작을, 기예르모 델 토로가 그려낸 삽화와 함께 보는 듯한 감흥을 느끼게 된다.
프랑켄슈타인 스틸컷 ⓒNetflix 2025 |
‘프랑켄슈타인’은 어쩌면 2025년 베스트 영화 중 한 편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만큼 잔혹하며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걸 본 후 어두운 이 영화적 세계관에 호기심을 느낀다면 감독의 초기작 ‘악마의 등뼈’와 ‘판의 미로’ 등도 함께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관계 속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해부하다 ‘제이 켈리’
OTT 오리지널 신작 중에서 추천하는 연말 기대작 두 번째 작품은 노아 바움벡 감독의 ‘제이 켈리’다. 영화에 대한 소개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 노아 바움벡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이 사람은 독특한 이야기를 굉장히 잘 하는 감독이다. 웨스 앤더슨의 초기 걸작 중 하나인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의 각본도 그가 썼다. 초기작 ‘오징어와 고래’에서는 이혼이라는 행위가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신랄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려냈다.
‘제이 켈리’ 스틸컷 |
‘프란시스 하’에선 꿈을 가진 청춘을 주인공 삼아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풀었다. 그리고 또 다른 수작 ‘결혼 이야기’를 통해 노아 바움벡 감독은 초기작 ‘오징어와 고래’에서 건드렸던 ‘결혼과 이혼 속에서의 한 가족 이야기’를 현실적이면서도 또 한 번 따뜻하게 들려주었다. 이런 감독이 이번에는 조지 클루니와 애덤 샌들러라는 결코 어울리지 않을 듯한 불협화음을 그만의 따뜻한 터치를 통해 조화로운 관계로 완성해낸다.
‘제이 켈리’ 포스터 |
조지 클루니는 스타 영화배우 제이 켈리로 분했고, 애덤 샌들러는 제이 켈리의 헌신적 매니저 론으로 출연한다. 노아 바움벡 감독이 언제나 관계 속의 이야기를 절묘하게 파헤치는 데 일가견이 있음을 안다면, ‘제이 켈리’ 역시 배우와 매니저의 관계 속에서 도출되는 기쁘고 아픈 이야기를 보여줄 거라는 걸 인지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올 연말을 가장 따뜻하게 보내도록 만드는 한 편의 영화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았다. 조지 클루니가 드라마와 코미디에 얼마나 잘 녹아 드는지, 코미디 배우인 애덤 샌들러가 또 드라마 속에서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핵 발사에 반응하는 인간 본연의 모습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
세 번째 추천작은 지난 10월 공개되어 이미 많은 영화 마니아들에게 찬사를 받은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다. 앞서 말한 BTCA 시상식이 열린 로스앤젤레스의 웨스트 할리우드 거리의 거대한 빌보드에도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OTT 오리지널 신작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광고가 걸려 있었다. 영화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마저 이제 플랫폼의 자본이 없으면 영화를 제작하기 힘든 시기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블루스틸, ‘죽음의 키스’로 1990년대 촉망받는 신예로 떠올랐던 여성 감독이다. 이후 그는 여성 감독으로서는 드물게 전쟁이라는 참혹한 주제에 포커스를 맞추며 ‘허트 로커’, ‘제로 다크 서티’ 등에서 걸출한 연출력을 드러냈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이와 유사한 연장 선상에서 ‘우리에게 핵 미사일이 날아온다’는 정해진 결말을 맞이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얼굴을 그려낸다.
웨스트할리우드 빌보드에 걸린 하우스오브다이너마이트 광고(사진 이주영) |
그 전까지의 핵 무기 소재 영화들이 첩보 또는 액션 스릴러 장르에서 다뤄졌던 것에 반해, 이번 작품은 누군가 발사 버튼을 눌렀고, 한 도시와 국가가 소멸에 이르는 것이 기정사실화가 된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가에 대한 서사가 진행된다. 물론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시카고를 향해 날아든 핵 미사일이 진짜 터졌는지, 혹은 불발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다. 단지 그런 상황에서 군 수뇌부 주요 인물, 미국 대통령과 퍼스트 레이디, 도시의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 인간의 내면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한다.
만일 이 영화를 전쟁 블록버스터로 이해하고 접근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실제 전투 또는 총격전과 같은 장면은 일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가 놀라운 건, 그런 자극적 장면 하나 없이 2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 동안 손에 땀을 쥐는 스릴을 만끽하게 한다는 점이다.
추리·범죄물 팬이라면?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나이브스 아웃’ 예고편(사진 넷플릭스 공식 유튜브 갈무리) |
마지막 추천작은 전통적 관습의 추리, 범죄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이다. 2019년 처음 선을 보인 ‘나이브스 아웃’은 조셉 고든 래빗 주연의 ‘브릭’(2008)으로 선댄스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영화로,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로 블록버스터계에 입문한 라이언 존슨 감독의 시리즈다.
‘나이브스 아웃’은 제작 당시에도 다니엘 크레이그, 크리스 에반스, 제이미 리 커티스, 토니 콜렛 등의 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었었다. 또한 이 같은 멀티 캐스팅 작품들이, 대부분 마블코믹스의 ‘어벤져스’로 대변되는 슈퍼 히어로 물 등으로 제작된 데 반해, ‘나이브스 아웃’은 정통 추리 장르로 만들어진 것으로도 관객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영화 ‘나이브스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
작품은 미스터리 작가 할란의 85번째 생일 파티 직후 갑자기 숨진 채 발견된 할란의 죽음을 두고 범인을 찾기 위해 탐정 브누아 블랑이 합류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1편의 인기에 힘입어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이 2022년에 제작되었다. 이제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는 마치 셜록 홈즈 이야기처럼 브누아 블랑(다니엘 크레이그)이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자리잡고 있다. 2편도 OTT 오리지널로 제작되었고, 이번 3편 역시 마찬가지다.
12월 12일 공개 예정인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의 캐스팅도 다니엘 크레이그가 브누아 블랑을 맡았고, 조시 오코너, 글렌 클로스, 제레미 레너 등의 개성 강한 배우들이 함께 출연한다. 만일 당신이 아가사 크리스티, 코난 도일 등과 같은 추리 소설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 시리즈는 꽤나 흥미롭게 다가갈 것이다.
‘제이 켈리’ 스틸컷 |
필자가 로스앤젤레스에서 BTCA를 참관한 후 영화라는 미디어에 대한 애정이 조금 더 커진 게 사실이다. 한 작품을 완성하는 동안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모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또 다른 드라마를 써내려 나간다. 그렇게 완성한 이야기가 결국 우리에게 한 편의 작품으로 선보이게 되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을 감상하며 꽃미남 배우 제이콥 엘로디가 어떻게 크리쳐로 변했는지를 분장의 관점에서 지켜보라. 그러면 기예르모 델 토로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마이크 힐을 왜 그렇게 애정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제이 켈리’의 사운드트랙 스코어를 들어보라.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 감독이 사랑하는 니콜라스 브리텔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네 편의 영화와 함께 하는 연말, 크리스마스, 홀리데이가 꽤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함께 해보길 희망한다.
[글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이주영, 넷플릭스, 각 영화 스틸컷]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8호(25.12.0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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