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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Pick] ‘황혼 이혼’과 ‘졸혼’...‘법적 단절’과 ‘최소한 유지’의 미묘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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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Pick] ‘황혼 이혼’과 ‘졸혼’...‘법적 단절’과 ‘최소한 유지’의 미묘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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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은 이혼, 별거 등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혼은 부부관계를 법적으로 끝내는 것이고, 별거는 이혼에 앞서 관계 회복을 위한 시간을 가지며, 결혼 유지와 이혼을 고려하는 전 단계이다. 졸혼은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혼도 원치 않을 때 선택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법적으로 혼인관계가 유지되기에 부부가 각각 자유로운 삶을 살며 재혼은 당연히 할 수 없다.



#1 통계청의 ‘2024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이혼 건수는 9만 1,151건이다. 2023년에 비해 전체 이혼 건수는 줄었지만 결혼한 지 30년 이상 된 부부의 이른바 ‘황혼 이혼’은 늘어났다. 결혼 기간 3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 건수는 1만 5,128건이나 되었다. 10년 전 2014년의 4,809건에 비해 46.6%나 증가한 수치다. 특히 결혼 30년 이상 부부의 이혼 비중은 전체의 16.6%로 전년에 비해 0.6%포인트, 2014년에 비해 7.7%포인트 올랐다.

#2 서울시는 지난 9월 15일 ‘서울시민의 결혼과 가족 형태의 변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평균 이혼 연령은 남성 51.9세, 여성 49.4세로 2000년(남성 40.8세, 여성 37.4세)에 비해 남녀 모두 10년 이상 높아졌다. 특히 60세 이상 ‘황혼 이혼’ 비중은 2000년 3%대에서 2024년 25.8%로 늘었고, 이는 2015년 13.6%에서 10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3 ‘졸혼卒婚’은 말 그대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법적 혼인은 유지하되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졸혼은 현재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며 함께 결혼 유지 기간도 늘어남에 따라 개인의 자아실현을 중시하는 사회적 변화에서 등장한 ‘새로운 부부관계’이다. 배우 백일섭 씨가 2017년 한 TV프로그램에서 이 같은 뉘앙스의 말을 하며 화제가 되었다. 이후 2019년엔 현재 고인이 된 소설가 이외수, 전영자 부부가 졸혼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2020년 이외수 씨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아내 전영자 씨가 졸혼을 중단하고 병간호를 하며 다시 가정을 합치기도 했다.


자녀 독립 후, 약 30년 이상 갈등의 부부관계 지속?

지난 7월 30일 보건복지부 ‘OECD보통통계 2025’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년으로 OECD평균 81.1년보다 2.4년이 길다. 남성은 80.6세, 여성은 86.4세이다. 결혼을 하는 남성과 여성의 평균 연령을 보면 1990년대 남성 27.79세, 여성 24.78세이고 2000년대는 남성 29.28세, 여성 26.49세이다. 2010년 남성 31.84세, 여성 28.91세이고 2020년도에 이르러 남성 33.23세, 여성 30.78세로 남녀 모두 30세를 넘었다. 2024년 통계는 2024년 남성 33.86세, 여성 31.55세로 점점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수치를 도출해낼 수 있다. 바로 결혼 유지 기간이다. 1990년에 결혼한 남성은 41년, 여성은 47년이다. 2000년에 결혼을 했다면 남성 46년, 여성은 49년이다. 이처럼 결혼을 하는 나이가 점차 늦어지지만 평균수명의 연장에 따라 머지않아 결혼 유지 기간은 약 50년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40~50년…장기간의 부부 유지 기간

장기간의 부부 유지 기간은 현실적으로 부부에게 축복이자 한편으로는 ‘불행의 씨앗’이다. 해서 나타난 것이 바로 ‘황혼 이혼’의 증가이다. 보통 황혼 이혼은 결혼 유지 기간 30년 이상, 남녀가 60세 이상인 경우에 해당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결혼 20년 리셋’을 반농담으로 말한다.


불과 우리 할아버지 세대만 해도 평균수명이 60세를 넘기기 힘들었다. 해서 육순, 환갑 잔치를 크게 했다. 그런데 지금은 60세면 ‘반 청춘’이다. 그러니 결혼 유지 기간도 보통 40년을 넘기게 되었다. 할아버지 세대에 비하면 약 2배가 증가한 것이다. 해서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혼 20주기’에 부부에게 ‘앞으로도 같이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결혼 리셋’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2023년 이혼을 상담한 5,065명(여성 4,054명, 남성 1,011명) 가운데 ‘60대 이상 여성’ 상담 비율은 22%로, 2004년보다 3배 이상 증가했다. 또 ‘60대 이상 남성’도 8.4%에서 43.6%로, 5배 넘게 급증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여성은 40대가 29.7%로 가장 많았으나 남성은 60대 이상이 43.6%로 가장 많았다. 상담자 중 최고령자 여성은 89세, 남성은 90세였다.

이혼 결심 이유는 60~70대 여성은 ‘남편의 폭력 등 부당대우’가 가장 많았고 장기 별거, 성격 차이, 경제갈등, 남편 가출 순이었다. 반면 60대 남성의 이혼 사유는 장기 별거, 성격 차이, 알코올중독, 아내 가출, 아내 폭력, 부당대우 순이었다. 상담 결과 ‘노년층 가정에서의 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나타났다. 즉 결혼 초부터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도 자녀가 어리고 경제적 자립이 힘들어 참고 지냈지만, 자녀도 성장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이 가능하자 이혼을 결심한 여성들이 많아진 것이다.


반면 남성들은 ‘장기간의 별거와 아내의 가출’과 함께 ‘자신이 평생 일을 했는데 나이 들어서도 생활비를 벌어오라 강요해 힘이 든다’고 호소했다. 또 ‘은퇴 후 자신을 쓸모 없는 사람 취급’, ‘아내가 밖으로만 돌아 소외된다’도 이혼 사유로 꼽았다.

이처럼 황혼 이혼의 증가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가장 큰 요인은 기대 수명의 증가와 삶의 질에 대한 남녀의 인식 변화다. 지금은 부부가 자녀를 독립시킨 후에도 30년 이상을 함께해야 한다. 장시간의 부부관계 지속에 대해 남녀 모두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녀가 성년이 되기 전에는 자녀 양육과 경제적 이유로 부부 갈등을 덮고 넘어갔지만 이제 자녀도 독립하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어지면서 ‘갈등을 참고 사느냐?’와 ‘나를 위해 사느냐?’의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가’이다. 성평등가족부(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62.1%로 여성의 경제적 참여율이 증가하면서 독립적인 삶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고 많아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황혼 이혼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아를 찾는 새로운 삶의 선택이 될 수도 있으나 넓게 보면 신혼부터 수십 년간 누적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시작해 우정과 나중에는 ‘인생의 동반자’라는 ‘동지적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과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졸혼에도 ‘졸혼합의서’가 필요하다!

‘졸혼卒婚’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쓴 도서 『졸혼을 권함』에서 처음 등장했다. 책은 실제 졸혼을 실천한 여섯 쌍의 부부를 인터뷰하며 다양한 졸혼의 형태와 졸혼이 왜 필요한지, 무엇이 좋은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를 밝히고 있다.

졸혼은 이혼, 별거 등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혼은 말 그대로 부부관계를 법적으로 끝내는 것이고, 별거는 이혼에 앞서 부부가 떨어져서 살며 관계 회복을 위한 시간을 갖거나, 결혼 유지, 이혼을 고려하는 전 단계이다. 현재 졸혼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졸혼 역시 중년이나 노년 부부가 대부분이다. 가족으로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기에 가족이라는 연을 끊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같이 살고 싶지도 않은 것’이 대부분 원인이다. 원인은 다양하다. 사랑이 식어서, 노년의 삶을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혹은 남편은 귀농해 자연에서 살고 싶지만 아내는 도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아서 등등이다.

졸혼을 선택해도 가족 모임을 하거나, 서로 연락하고, 병이 걸리면 간호도 하는 등 ‘가족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졸혼 이후 부부 중 한쪽이 다른 이성이 생겨 이혼을 원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이혼을 전제로 별거를 시작했지만 서로 떨어져 사는데 만족감을 느껴 이혼 대신 졸혼의 형태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졸혼에도 형식과 법적인 고려 사항이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졸혼합의서’를 작성하라고 조언한다. 졸혼합의서에서 중요한 부분은 재산 분할이다. 졸혼은 법적 부부관계이기에 재산분할 청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미리 재산에 대해 분할의 비례나 금액을 기재해야 차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소지를 없앨 수 있다.

또 남편과 아내의 사적 자유로움의 한계를 기재해야 한다. 이는 주로 이성과의 문제이다. 즉 남편이나 아내가 졸혼 관계에서 새로운 이성에 대해 ‘어떤 수준’까지 그 관계를 용인하는가의 문제가 있다. 즉 밥 먹고, 영화 보고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가벼운 단계부터, 여행을 가거나 남녀관계까지 허용한다 등등 조항을 세밀하게 기재해야 한다.

다음으로 졸혼 시 아내나 남편의 독립적 생활을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재산분할, 매달 생활비를 언제 지급한다 등의 사항도 기재해야 한다. 그리고 부부가 서명을 하고 공증까지 받으면 이 자체로 나중에 문제가 될 시에 이 ‘졸혼합의서’가 법적 효력을 갖고 이혼을 할 경우에도 재산분할, 유책 사유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물론 황혼 이혼이나 졸혼 없이 ‘백년해로’하는 부부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부부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때 과연 황혼 이혼과 졸혼 중에 선택한다면 어떤 것이 지금의 상태에서 최선인가를 고민하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 될 것이다. ‘가족을 위해’라는 절대적 명제 앞에 ‘자아를 잃어버린 초라한 나’로 사는 것을 비록 가족이라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권이현(라이프컬쳐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6호(25.11.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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