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사진 No. 141
계엄 1년. 어떻게 기록되었나
계엄 1년. 어떻게 기록되었나
● 박정희의 계엄령을 기록한 사진
계엄령 하면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늘 1961년 5.16 쿠데타 이틀 뒤, 서울시청 앞에 모습을 드러낸 박정희와 군인들의 얼굴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떠올립니다. 당시 미국 AP통신의 한국인 기자였던 고(故) 김천길 기자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그의 아들은 훗날 또 다른 신문사의 사진기자가 되어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현대사를 기록했고, 최근 은퇴했습니다.
그 무렵 동아일보 사진기자 이의택 기자가 촬영한 서울역 앞 사진(아래)도 잊히지 않습니다. 긴 코트에 카메라를 숨긴 채 계엄군의 눈을 피해 겨우 찍은 사진에 대한 기록입니다.
계엄령 하면 여러분의 머릿속에는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늘 1961년 5.16 쿠데타 이틀 뒤, 서울시청 앞에 모습을 드러낸 박정희와 군인들의 얼굴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떠올립니다. 당시 미국 AP통신의 한국인 기자였던 고(故) 김천길 기자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그의 아들은 훗날 또 다른 신문사의 사진기자가 되어 19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현대사를 기록했고, 최근 은퇴했습니다.
그 무렵 동아일보 사진기자 이의택 기자가 촬영한 서울역 앞 사진(아래)도 잊히지 않습니다. 긴 코트에 카메라를 숨긴 채 계엄군의 눈을 피해 겨우 찍은 사진에 대한 기록입니다.
1961년5월16일 새벽 쿠데타를 일으킨 일단의 군인들이 서울역에서 행인들을 통제하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 파출소 앞에 쪼그려앉은 경찰의 모습이 이채롭다. <이의택 촬영, 신동아 1984년 8월호>/ 동아일보 DB |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서 34년 8개월간 사진기자로 근무한 그는 구순을 바라보는 지금도 종로에서 건강하게 지내시며, 후배들의 행사에 종종 금일봉을 들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한국보도사진가협회가 작년에 펴낸 “카메라에 담은 한국 현대사의 기록 1 - 찰나의 승부사”에 이의택 기자의 1961년 5.16 계엄 당시 기억을 정리한 내용이 있어 소개합니다.
5.16일 일어난 그날 숙직었거든요. 새벽에 연락이 왔는데 지금 한강에서 해병대와 군 헌병대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야간 당직 차를 타고 시청 앞으로 해서 한강으로 가려는데 벌써 군인들이 꽉 막아놓았더라구요. 차를 돌려 서대문으로 돌아서 서울역으로 갔지요. 그랬더니 그곳도 역시 막아놨어요.
5월이지만 아침엔 기온이 차기 때문에 코트를 입었죠. 그 코트 속에 카메라를 감추고 렌즈만 내놓고 촬영을 했지요. 그래서 사진이 로우(low) 앵글이 되었어요. 사진을 자세히 보면 경찰들도 다 밖에 나와서 쭉 앉아 있어요. 이 분위기가 5.16 군사혁명이 일어난 새벽의 서울역 상황인 거죠.
서울역에서 촬영하고 필름을 감추고 다시 광화문으로 왔더니 권총을 빼든 군인들이 지나가는 차를 다 세우고 내리게 하는 거예요. 그 당시 시청 앞에 덕수궁에는 공수부대가, 대한 체육회 건물에는 계엄군들이 진주해 있었지요.
● 계엄 선포 후 1년, 어떤 기록이 남았나
이번 주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계엄을 선포했다가 해제한 지 1년이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1961년의 기록이 흑백 필름 안에서 만들어졌다면, 2024년의 계엄은 수많은 카메라와 스마트폰, 생중계 화면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긴급 생중계된 계엄 발표. YTN 캡쳐. |
뜬금없는 계엄 선포는 생각지도 못한 수혜자와 패배자를 동시에 만들었습니다. 코인 투자 논란으로 정치권을 떠났던 김남국 전 의원이 새 정부가 탄생하면서 디지털소통비서관으로 다시 컴백했습니다. ‘훈식이 형과 현지 누나에게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후보를 추천하겠다’는 문자가 며칠 전 카메라에 찍히면서 다시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추긴 했지만 계엄의 수혜자 중 한 명은 분명했습니다.
반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지금 특검의 소환과 조사에 지난 세월의 공직 생활을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중장년의 비서관과 보좌진들이 대통령실에서 쫓겨나 다른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 당시 계엄 발표 생방송을 연결했던 KTV 기술진들 역시 보직을 잃고 감사를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기자들은 1년 내내 숨 가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통상 5년 주기로 찾아오는 대형 뉴스인데, 이번에는 3년 만에 발생했습니다. 탄핵 찬반 집회, 관저 앞 농성, 특검 활동까지 이어지며 카메라 앞에서 뉴스가 멈추지 않던 해였습니다.
● 이미지를 모르는 사람들 vs 이미지를 잘 아는 사람들
지난 1년 동안 가장 강하게 남은 이미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키세스맨’ 이미지와 우원식 국회의장의 담넘기 이미지입니다.
‘키세스 시민’ 그림의 원작자인 이정헌(가운데) 작가가 2025년 3월 2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2·3 불법계엄 옹호 도서의 그림 도용과 관련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뉴스1 |
진보당 의원실이 공개한 ‘키세스맨’ 사진은 은박 담요를 뒤집어 쓴 채, 눈내리는 겨울 찬 거리에서 농성하는 시민의 모습이었습니다. 탄핵 찬성의 상징처럼 소비되던 이미지를, 국민의힘 미디어특위 위원장이 탄핵 반대의 목소리로 소개하며 올린 일이 있었습니다. 진보당 의원실의 항의에 사진을 삭제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이미지 해독 능력이 정치적 성패를 좌우하는 시대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었습니다.
반대로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담장을 넘는 장면은 측근이 촬영해 SNS에 올리면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이 이미지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행동하는 정치의 상징’으로 재해석되며 긍정적 방향으로 계속 확장됐습니다. 3일 수요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시민과 함께 ‘비상계엄 해제 1주년 기억 행사’를 열었습니다. 1년 전의 긴박한 순간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상징을 축제로 전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반면 같은 날 국민의힘 소장파 의원들은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습니다.이는 여론전이 단순히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떤 이미지를 보유하느냐의 문제임을 다시 확인시킨 사례입니다. 어떤 이미지를 만들고 소유하느냐가 여론을 가르고 때론 권력의 흐름까지도 바꿉니다.
●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 계엄, 그리고 남겨진 풍경
지난해의 계엄 발표는 한국 사회가 이미 이미지 중심의 정치 환경으로 완전히 넘어온 뒤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열린 5부 요인 오찬에 참석한 우원식 국회의장으로부터 ‘빛의 민주주의 꺼지지 않은 기억패’를 선물받고 있다. 2025.12.3. 대통령실 제공 |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상징적 장면들은 계속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2025년 1월 5일 밤 서울 한남동 윤석열 대통령 관저 앞에서 탄핵 찬반 야간 시위가 벌어지는 가운데 한 보수 유튜버가 현장을 생중계하며 슈퍼챗을 모금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맞추고 견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기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일겁니다. 현장에서 본 세상에선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해석은 엇갈릴 수 있지만, 이미지 정치의 운동장은 더 이상 평평하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정치가 이미지로 대체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사실 좀 있습니다.
오늘은 1961년의 흑백 사진에서 2024~2025년의 디지털 기록까지, 한국 현대사의 두 ‘계엄의 이미지’를 함께 짚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계엄의 장면은 무엇이었는지, 그 사진이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좋은 댓글로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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