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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내 아이 얼굴 '모자이크'하는 사연[40육휴]

머니투데이 최우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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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내 아이 얼굴 '모자이크'하는 사연[40육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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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아빠의 육아휴직기] < 41주차 > 자녀 사진과 초상권, 셰어런팅

[편집자주] 건강은 꺾이고 커리어는 절정에 이른다는 40대, 갓난아이를 위해 1년간 일손을 놓기로 한 아저씨의 이야기. 육아휴직에 들어가길 주저하는 또래 아빠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예쁜 딸의 얼굴이지만 공개된 곳에 사진을 올릴 때면 꼭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 단순히 초상권 문제만은 아니다. /사진=최우영 기자

예쁜 딸의 얼굴이지만 공개된 곳에 사진을 올릴 때면 꼭 모자이크 처리를 한다. 단순히 초상권 문제만은 아니다. /사진=최우영 기자

아이를 낳기 전엔 소셜미디어나 단체 카톡방에 자기 아이 사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며 공감하기 힘들었다. 간혹 하루에 수십장씩 과하게 자녀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으면 당황스럽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의 카톡 프로필은 무조건 아이 사진으로 도배되는 것도 목격했다.

이제는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내 아이를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렇다. 어느새 내 카톡 프로필과 배경화면도 아이의 일상 사진들로 도배되고 있다. 다만 단톡방에는 과거의 나처럼 아이 사진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 업로드를 최대한 자제한다.

카톡 프로필과 달리 소셜미디어에는 아이 사진을 웬만하면 올리지 않는다. 특히 40회를 넘어간 육아휴직기에도 아이 사진은 '모자이크'를 철저하게 해 올리고 있다. 귀여운 아이 얼굴을 굳이 가리거나 숨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영유아에게도 엄연히 존재하는 초상권

옛날엔 가족들만의 사진첩에 담겨 옷장 안에 보관되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이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라오기 쉽게 됐다. /사진=최우영 기자

옛날엔 가족들만의 사진첩에 담겨 옷장 안에 보관되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이제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라오기 쉽게 됐다. /사진=최우영 기자

자기결정권이 없는 자녀의 사진을 소셜미디어 등에 올리는 행위를 흔히 셰어런팅(share + parenting)이라고 한다. 무려 10여년 전부터 논란이 돼 단어가 만들어졌다. 2016년에는 오스트리아의 한 10대 소녀가 자기 부모를 고소한 사례도 있다.


초상권은 허락 없는 촬영 및 사진 공표를 거부할 권리로, 당연하게도 자녀 본인에게 있다. 아무리 부모가 법적인 보호자라지만 초상권까지 대리해서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다.

특히 소셜미디어나 블로그 등에 올라가는 사진은 영리적 목적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비영리적인 목적이라 하더라도 단순한 일상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면 문제가 된다. 자녀가 옷을 벗고 있다거나 굴욕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게 이에 해당한다. 10여년 전 셰어런팅에 최초의 법적 대응을 한 오스트리아의 소녀도 자신이 수치스러워하는 일상을 공유한 아빠를 상대로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카톡 프로필 사진은 경우가 좀 다르다는 게 주변 법조인들의 해석이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제한된 범위의 카톡 친구들에게만 공개돼서다. 이 중에도 아이 사진을 보여주기 싫은 사람들은 '멀티 프로필' 처리를 해놓는다. 대신 여기서도 아이가 나중에 커서 불쾌함을 느낄 수 있는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사실 아이가 수치심을 느낄만한 사진을 프로필에 쓴다는 자체가 이미 부모 자격 실격이다.



온라인에 즐비한 변태·범죄자들도 주의해야

사랑스러운 내 아이의 사진이 누군가에게는 범죄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사진=최우영 기자

사랑스러운 내 아이의 사진이 누군가에게는 범죄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사진=최우영 기자


아이와의 초상권 갈등보다 더 무서운 건 자칫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에 아이 얼굴이 노출된 채 올라온 사진을 통해 범죄로 이어진 사례들이 국내외에서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가장 끔찍한 건 성범죄다. 일부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지금도 아동 사진을 올리며 성적 대상화 하는 인간 말종들이 상당수다. 딥페이크 기술이 발달하면서 공개된 아이 사진을 이용해 성착취물을 제작해 뿌릴 수도 있다. 성착취물을 만들지 않더라도 공개된 사진으로 아이를 모욕하거나 품평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아이 사진을 도용해 도박사이트 홍보 광고에 쓰는 경우도 있다. 해맑게 웃는 내 자녀 사진을 퍼가서 '바카라 첫 베팅 하면 5만 포인트 지원' '사다리 출금 완벽 보장' 같은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 광고 문구에 쓴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유괴와 같은 범죄 표적이 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간혹 아이의 이름과 나이, 얼굴 사진을 조합해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한 부모는 자녀가 사립초등학교에 다닌다는 걸 자랑하려고 교복 사진을 페이스북에 '전체 공개'로 올렸는데 상당히 경솔한 행위다. 범죄자들은 이런 일상적인 정보에서 아이의 동선과 신원을 파악한다. 유괴범이 정보를 파악한 뒤 오프라인에서 아이에게 다가가 "너 OO어린이집 다니는 최OO 맞니? 엄마 친구인데 대신 데리러 왔어. 같이 엄마한테 가자"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 사진을 온라인에 공유할 때는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단톡방에 느낌이 '쎄'한 멤버가 포함돼 있다면 사진을 공유하지 않는 게 맞다.


아이가 자랑스러운 나,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려면

가족사진을 남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려면 외모를 꾸미는 것 못지 않게 딸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사진=최우영 기자

가족사진을 남들에게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려면 외모를 꾸미는 것 못지 않게 딸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 /사진=최우영 기자


가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상 사진을 제한된 공간에 업로드했는데 자녀로부터 항의받는 부모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가족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해놨는데 "내려달라"는 요청을 딸이 한다는 것. 이 이야기를 해준 지인은 "사춘기가 세게 왔다"는 정도로만 이해했다.

사실 사춘기 문제만이 아닐 수 있다. 아무리 가족사진이라지만 너무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연인처럼 나온 아빠 모습이 부끄러웠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가 자랑스러워서 사진을 공개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 전에 나 역시 자녀에게 자랑스럽거나 사랑스러운 아빠가 돼야 하지 않을까.

사춘기 자녀를 둔 또래들을 보며 배우는 게 많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 기업의 실패 사례를 살펴보며 빠르게 쫓아갔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 육아에선 나이 많은 아빠들에게 유효하다. 다른 집 육아의 갈등 사례를 잘 살펴보며 같은 실수를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나와 찍은 사진 공개를 꺼릴 정도로 관계가 파탄 나지 않도록 항상 노력해야겠다. '늙은 아빠'로 보이지 않도록 열심히 운동하고 외모 관리에도 힘써야겠다.



최우영 기자 yo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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