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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는 국민 사치 탓하더니, 고환율은 서학개미 때문?”

동아일보 홍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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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외환위기는 국민 사치 탓하더니, 고환율은 서학개미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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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거친 서학개미의 ‘오징어 게임’

‘고환율’ 원인으로 지목되자 억울한 서학개미들

최근 원-달러 환율 1470원 넘어서… 해외투자 증가에 고환율 책임 전가

전문가들 “韓 경제체력 저하 반영”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스마트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468.0)보다 5.5원 오른 1473.5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2025.12.04. 뉴시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스마트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1468.0)보다 5.5원 오른 1473.5원에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2025.12.04. 뉴시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으며 고공행진하는 원인 중 하나로 개인들의 해외 주식 투자가 지목되자 서학개미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부와 외환당국이 고환율의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5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1∼11월 서학개미들은 305억8941만 달러(약 45조 원) 규모의 미국 주식을 순매수했다. 지난해 전체 순매수 규모(105억4500만 달러)의 3배 수준을 순매수한 셈이다. 10월 순매수 규모는 68억5499만 달러(약 10조 원)로, 2011년 통계를 작성한 뒤 최대 규모다. 11월(59억3411만 달러)에 순매수 규모가 소폭 줄긴 했지만 여전히 규모가 크다.

외환 당국 수장들은 이런 해외 투자 증가세를 고환율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미 증시에 투자하려 원화를 대거 달러화로 바꾸는 바람에 달러화 수요가 급증해 원-달러 환율이 오른다는 얘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에 의해 (금융시장이) 주도되는 측면이 우려된다”며 “투자자의 해외 투자가 유행처럼 커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이 해외 증시로 흐르는 돈을 국내로 유도하려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환율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주식 양도세를 강화할 수 있냐는 질문에 “현재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정책은 여건이 되면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서학개미들은 억울하다고 입을 모은다. 투자자로서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인데 당국이 정책 실패를 개인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매달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QQQ)에 적립식 투자를 하는 자영업자 이모 씨(38)는 “외국으로 달러가 나가기만 하는 해외 유학과 달리 해외 주식은 처분할 때 달러가 국내로 돌아오지 않느냐”며 “오히려 외화를 벌어오고, 수익에 대한 정당한 세금도 낸다”고 하소연했다.

몇 년째 엔비디아 주식을 사 모으고 있는 회사원 박모 씨(43)는 “해외 투자는 인공지능(AI) 시대가 오면서 앞으로 일자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헤지”라며 “국민연금도, 기업도 다 미국 투자를 늘리는데 왜 개인의 투자만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해외 주식, 재테크 등을 다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원인을 국민의 과소비에서 찾았던 것처럼 고환율을 서학개미 탓으로 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도 개인의 해외 투자를 고환율의 원인으로 보는 건 과도하다고 봤다. 서학개미가 고환율 원인의 하나일 수는 있지만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의 장기화에 따른 자본의 유출,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비중 확대 등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미 관세협상 이후 늘어날 대미 투자를 위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쥐고 있는 기업들도 많아졌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은 두 국가 사이의 기초체력을 반영한다”며 “한미 관세협상 결과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산업 기반이 미국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한국의 기초체력 평가에 영향을 준 셈”이라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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