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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하고도 물거품 된 사연 [정현권의 감성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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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하고도 물거품 된 사연 [정현권의 감성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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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전을 치르면서 꿈에 그리던 우승을 하고도 물거품이 됐다.

지난달 일본 교토의 조요CC(파72)에서 끝난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2부 투어인 교토여자오픈에서 발생한 일이다. JLPGA 투어에서 통산 5승을 올린 황아름(38)은 이날 후지이 미우(일본)와 치른 연장 2차전에서 파를 잡고 우승했다.

우승 기쁨도 잠시 황아름은 곧 우승자는 후지이라는 우승 번복 발표를 접했다. 경기를 끝내고 협회가 황아름 캐디 백을 확인했더니 클럽이 15개였다는 것이다.

14개 클럽을 소지해야 한다는 룰 위반으로 2벌타가 가해져 우승이 날아갔다. 황아름은 억울했다. 15번째 클럽은 사실 그녀가 아닌 18번홀까지 또 다른 동반자였다가 탈락한 오쿠야마 준나(일본)의 것이었다.

JLPGA 2부 투어에서는 하우스 캐디 1명이 한 조(3명)를 담당한다. 이 캐디가 18번홀을 끝내고 탈락한 오쿠야마 준나의 피칭 웨지를 실수로 황아름 백에 넣은 것이었다. 황아름은 연장전에 들어가서도 이 사실을 몰랐고 사용하지도 않아 억울했다.

구제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회 측은 규정대로 했다고만 반복하면서 수용 의사가 없었다. 그녀는 일본스포츠중재기구(JSAA)에도 이의를 제기한다는 생각인데 잘 진행될지 의문이다.


어이없는 일이 프로대회에서 종종 발생한다. 때로 선수로서 삶에 큰 지장을 초래하거나 룰을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간혹 자발적으로 룰 위반을 신고해 우승권에서 멀어지지만 훌륭한 골프 정신으로 추앙되는 경우도 있다.


1968년 마스터스에서 로베르트 비센조는 72홀을 돈 후 동타로 우승권에 있었다. 마지막 날 17번홀에서 실제 버디를 기록했음에도 마커였던 동반자가 실수로 파라고 적었다. 프로대회에선 동반자가 상대 스코어를 적고 경기 후에 맞춰보고 서명해 제출한다.

비센조는 확인하지 않고 서명했다. 규정상 서명한 점수가 공식 기록으로 인정돼 그는 1타 차이로 우승을 놓쳤다. 사실을 알고 그는 “What a stupid I am!(내가 정말 멍청했다)”이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는 캐디가 좋은 기록으로 자기 점수를 잘못 적으면 조용히 눈을 감고 나쁘게 적으면 득달같이 항의해 수정한다.

데니스 왓슨은 1985년 US오픈에서 우승자에 1타 뒤진 공동 2위로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1라운드 도중 퍼트를 하고 홀 가장자리에 걸린 공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그런데 규정에 따른 10초를 초과해서 기다렸다는 이유로 2벌타를 받았다. 만약 벌타가 없었다면 우승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이 규정은 2019년 변경됐다. 그냥 10초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홀로 걸어가서 공을 확인하는 데에 필요한 합리적인 시간과 별도로 10초를 더해주는 식으로 개선됐다.

그 시간이 지나 들어가면 1타를 더한다. 아마추어끼리 이런 식으로 진행해 동반자들이 여지없이 1타를 매기면 아마 폭발할 것이다.


1978년 페임클래식홀 대회 마지막 날 톰 카이트는 우승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린 위에서 퍼트를 하려고 자세를 취하면서 그가 갑자가 벌타를 선언했다. 공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는 것인데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이 1벌타로 그는 우승권에서 멀어졌다. 2019년 룰 개정으로 고의가 아니라면 무벌타로 원래 자리에 공을 놓고 진행하는 식으로 개정됐다. 참고로 그린 밖에서 칩샷을 하려고 자세를 취하다가 실수로 공을 건드리면 1벌타를 받고 원래 자리에 놓고 다시 한다.

구성(球聖)으로 불리는 보비 존스도 1925년 US오픈 첫날 어드레스 직후 이런 일을 당했다. 클럽 헤드가 풀을 스치면서 공이 아주 약하게 움직였다.

그는 해당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1벌타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우승을 놓쳤다. 언론에 그의 매너가 화제로 장식되자 “은행을 털지 않았다고 해서 칭찬 받는 것이랑 뭐가 다른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자 프로대회에서도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렉시 톰슨은 2017년 ANA인스피레이션에서 3라운드까지 리드하며 우승이 유력했다. 그런데 TV를 시청하던 사람이 “볼을 마크하고 다시 놓을 때 조금 잘못됐다”고 제보했다.

대회 측이 비디오 판독 결과 2벌타에다 잘못된 스코어 카드 서명에 따른 2타를 더해 총 4벌타를 부과했다. 이로써 리드에서 멀어졌고 최종적으로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당시 너무 논란이 커서 룰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TV나 영상 제보만으로 벌타를 부과하는 데에 제동이 걸렸는데 렉시 톰슨 룰로 불린다.


국내에서도 이런 사례들이 간혹 나타난다. 김예진은 캐디로 나선 아버지 때문에 벌타를 받은 케이스이다. 2016년 하이원리조트여자오픈에서 챔피언조로 고진영, 김해림과 함께 출발했다.

김예진은 7번홀 그린에서 파 퍼팅을 하려던 중 캐디를 맡은 아버지가 김예진의 퍼팅 스탠스 완료 후에도 그대로 우산을 받쳐주었다.

김예진은 1m 퍼트를 무사히 넣고 파를 잡았지만 뒤에 더블보기로 정정됐다. 규정에 따르면 선수에게 외부 혜택을 주면 2벌타를 받는다. 퍼트를 완료하기 전에 우산을 치워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다.

박결은 2022년 맥콜∙모나파크오픈 15번홀 벙커에서 샷을 준비하려고 발로 모래를 정리하다 라이 개선(Improving Lie) 위반으로 2벌타를 먹었다. 그 결과 기준에서 5타를 넘긴 퀸튜플 보기로 우승 경쟁에서 탈락했다.

황아름은 웨지 1개가 그것도 남의 것이 자신도 모르게 백에 들어가 억울한 경우를 당했다. 언젠가 필자는 동반자 백에 드라이버 2개, 퍼터 2개를 포함해 클럽 20개 정도를 본 적 있다. 18홀을 돌고 나서 스코어를 보니 장비가 아닌 사람이 문제인 것 같았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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