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실손보험 가입자 중 절반이 보험금을 한 푼도 못 받는 동안 상위 5%는 5조원을 넘게 받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실손보험을 활용해 의료쇼핑을 하는 이용자의 도덕적 해이가 사적보험 지속가능성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실손보험이 건강보험과 함께 국민 의료 생활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개혁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5일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주요 4개 손보사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1년간 실손보험에서 지급된 보험금은 8조8349억원이다. 이 중 연간 200만원 이상 보험금을 타는 가입자 94만명이 1년간 받은 보험금은 총 5조1219억원에 달했다. 전체 가입자 1948만명 중 4.87%에 해당하는 고객이 전체 보험금의 58%를 받아가는 셈이다.
연간 보험금을 500만원 넘게 받는 최상위 고객은 28만여 명으로 전체의 1.5%에 불과했지만 지급액은 3조1074억원에 이르렀다. 반면 피보험자 중 절반인 47.94%는 보험금을 1원도 수령하지 못했다.
지급 보험금 양극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일부 이용자의 과도한 의료쇼핑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화재·DB손보·현대해상·KB손보·메리츠화재 등 5대 손보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산부인과에서 '하이푸'(자궁근종 초음파 치료) 시술에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8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1% 불었다. 보험사들은 여성 미용 목적의 시술을 한 뒤 하이푸 시술로 허위 청구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으로 추정한다. 같은 기간 영양제 등 비급여 주사제에 나간 실손보험금도 27% 증가한 3467억원이었다.
이에 따라 실손보험금 지급액도 매년 불어나고 있다. 올해 들어 9월까지 5대 손보사에서 지급된 실손보험금은 8조2134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1% 이상 증가했다. 특히 도수치료 등 비급여 항목에 지급된 보험금이 4조7953억원으로 58%에 달한다.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 5대 손보사에서 지급되는 실손보험금은 연간 1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소수 이용자의 과잉 활용에 따른 실손보험금 증가는 다수 고객에게 보험료 인상이라는 피해로 돌아온다. 실손보험료 인상률은 2022년에 전년 대비 14.2% 오른 것을 비롯해 매년 큰 폭으로 뛰고 있다. 올해는 7.5% 올랐으며 내년에도 주요 보험사들이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보험료를 올려도 보험사가 손실을 메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2012년 이후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한 회사는 13개에 달하며, 현재 18개사만이 실손보험을 신규로 팔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실손보험 대수술을 예고한 상태다. 먼저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실손보험 선택형(부담보) 특약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고객이 보장 내용을 하나 줄일 때마다 보험료를 내려주는 방식이다. 과잉 의료를 유발하는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제, 비급여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보장을 제외함으로써 보험료를 약 30% 인하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밖에 정부는 보험료를 30~50% 낮추는 대신 비중증 비급여 보장을 축소하는 5세대 실손보험 출시도 준비하고 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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