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디지털데일리 언론사 이미지

소비자용 메모리 버리고 AI로…크루셜 접은 마이크론, D램 시장 흔들까 [소부장반차장]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원문보기

소비자용 메모리 버리고 AI로…크루셜 접은 마이크론, D램 시장 흔들까 [소부장반차장]

속보
美 9월 PCE 물가지수 전년대비 2.8%↑…시장 예상 부합
소비자용 메모리 밀리고 AI·HBM이 판도 재편



[디지털데일리 배태용기자]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로 메모리가 빨려 들어가는 사이 PC·소비자용 메모리는 점점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이 소비자향 메모리 브랜드 '크루셜(Crucial)' 사업을 접기로 하면서다. 당장 물량 공백이 크지는 않다는 평가가 많지만 메모리 업체들이 고부가 AI·HBM(고대역폭메모리)에 집중하고 범용·소비자용 비중을 줄이는 흐름이 더 뚜렷해졌다는 점에서 파장은 작지 않다. 이미 오르기 시작한 D램·SSD 가격에 추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마이크론, 크루셜 정리하고 HBM·데이터센터로 선회

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마이크론은 최근 소비자용 메모리 브랜드 크루셜 사업을 단계적으로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크루셜은 PC용 D램 모듈, SSD, 메모리 카드 등 소매 시장을 겨냥한 대표 브랜드였다. 자가조립(DIY) PC 수요가 줄고 가격 경쟁이 심해지는 가운데 회사가 수익성이 낮은 소비자 부문보다 데이터센터·서버·AI용 메모리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는 의미다.

마이크론 경영진은 "AI 데이터센터 수요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라며 "한정된 설비와 자본을 수익성이 높은 제품군에 우선 배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론의 이번 결정 역시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HBM과 서버용 DDR5는 마이크론의 새 먹거리다. 회사는 HBM3E 양산을 본격화한 데 이어 차세대 HBM4 로드맵을 앞당기고 있고 클라우드·하이퍼스케일러를 겨냥한 고용량 DDR5 모듈 비중도 늘리고 있다. 소비자용 크루셜 매출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지만 회사가 '어디에 자원을 쓰고 어디는 과감히 줄일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이 같은 움직임은 가격·수급 구조와 겹치면서 소비자 쪽 부담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론의 크루셜 자체 물량은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메모리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서버·AI 우선, 소비자 후순위' 기조를 강화하는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 업체들도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AI 서버·HBM·고사양 DDR5를 최우선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다.


◆ 삼성·SK·중국도 고부가 중심 전환…"범용·보급형은 뒤로 밀린다"

삼성전자는 평택 P4·P5 라인을 중심으로 1b·1c 공정 기반 서버용 DDR5와 HBM4 대응 라인을 동시에 준비 중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청주 M15X와 향후 용인 클러스터를 HBM과 고부가 DDR5 중심으로 채우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HBM3E 독주 체제를 유지하는 동시에 HBM4·HBM4E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범용 PC용·모바일용 메모리는 수익성과 전략적 중요도에 따라 선별적으로 공급하는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 수율 확보, 로직과의 결합, 패키징 인프라 구축 등 고난도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만큼 보급형·소비자용 제품에 배정할 수 있는 생산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은 중국 업체들까지 포괄하는 글로벌 공통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중국 메모리 업체 CXMT는 DDR4 생산량을 추가 감축할 계획이다. 당초 2026년까지 월 2만장 수준으로 생산을 줄일 예정이었지만 DDR5와 신규 공정 도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감산 폭을 1만장 수준까지 더 키우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주요 3사가 이미 DDR4 비중을 꾸준히 줄여온 가운데 그동안 일부 공백을 채우던 CXMT마저 감산 폭을 키우는 셈이다. DDR4를 여전히 쓰는 서버·산업용 수요가 남아 있음에도 공급 축소 흐름이 멈추지 않는 구조다. 주요 업체들이 2026년께 DDR4 단종 계획을 크게 바꾸지 않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DDR4 비중은 전체 D램의 5%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실상 특수용·레거시 수요만 남는 시장으로 수렴한다는 의미다.

결국 소비자와 세트업체 입장에서는 가격과 수급에서 이전과 다른 환경을 마주할 가능성이 크다. 한때는 공급 과잉과 가격 폭락, 감산과 반등이 반복되는 전형적인 사이클이었지만 지금은 고부가 제품 중심 체질 전환과 구형 제품 감산이 겹치면서 가격 하락 폭이 예전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면 메모리 업체들이 곧바로 생산 조정에 나설 여지가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마이크론의 크루셜 철수나 CXMT의 DDR4 감산은 개별 이벤트로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메모리 회사들의 시선이 완전히 AI·HBM 쪽으로 돌아섰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사례"라며 "범용 PC·소비자용 D램은 앞으로 남는 캐파로 만드는 제품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만큼 가격 변동성도 과거 사이클보다 더 크게 체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

- Copyright ⓒ 디지털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