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이코노믹리뷰 언론사 이미지

80주년 기아, 김철호·정몽구 이름 다시 소환한 이유

이코노믹리뷰
원문보기

80주년 기아, 김철호·정몽구 이름 다시 소환한 이유

서울맑음 / -0.5 °
[양정민 기자] 1945년부터 2025년까지 한국 광복부터 한국 자동차 산업을 지탱해온 기아가 80주년을 맞이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기아는 정제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라며 "김철호 창업자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의 정신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기아는 5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에 위치한 기아 비전스퀘어에서 기아 80주년 행사를 개최했다. 정 회장과 송호성 기아 사장,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을 비롯해 다수 기아와 현대차그룹 임직원이 이날 자리를 빛냈다.


기아 임직원들은 영광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1960·1997·1998년은 기아 직원들에겐 지우고도 숨기고 싶은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직원들은 되려 이 시기를 이겨냈기에 지금의 기아가 있다며 그 당시의 아픔과 슬픔까지 '기아 80년' 사사(社史)에 모두 기록해냈다. 그 자체가 모두 역사였다.

생존이 만든 브랜드… 기아의 자기 고백

정의선 회장은 "정주영 창업회장께서 화성공장 새천년 기념비석에 '기아 혼 만만세'라고 새기실 정도로 기아만의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혼과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며 "기아의 혼은 오늘날 기아가 보유한 혁신 DNA로 거듭났고 미래 모빌리티라는 비전을 향한 여정은 이 기아만의 혼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기아는 이날 김철호 기아 창업자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소환했다.

1973년 국내 첫 종합 자동차 공장인 소하리 공장을 세우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김 창업자는 자전거(3000리호), 이륜차(C-100), 삼륜차(기아마스타 K-360), 사륜차 등 '기아산업'이 자동차로 이름을 알리게 한 절대적인 공신이다. 엔진 국산화도 이뤄내며 한국 자동차 산업을 개척해왔다.

기아 80년 사사를 작성한 이장규 기아 고문은 "김철호 창업자는 자전거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그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다고 믿었고 그 신념을 몸소 실천했던 사람"이라며 "진행했던 사업 중 성공한 것도 고전한 것도 있었지만 기술 개발에 중간이나 멈춤이 없었고 모든 걸 걸고 기술 개발에 매달렸던 엔지니어 정신이야말로 김철호 창업자 창업정신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기아의 재탄생이라고 불리는 현대자동차 인수(1999년)와 현대차그룹 통합(2001년 4월 1일)을 이뤄낸 정몽구 명예회장의 공도 인정받았다. 카니발, 스포티지, 프라이드 등 기아의 주요 차량들을 모두 직접 시승하며 단순한 품질뿐만 아니라 미세한 느낌, 개선점을 모두 평가했었던 정몽구 명예회장은 2차례 부도를 겪었던 기아를 글로벌 기업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담당했다. 다만 정 명예회장은 고령의 연세로 이날 행사에는 불참했다.

기아 정의철 전무는 "기아 전 직원의 헌신적 노력이 있었지만 정몽구 명예회장님 주도의 통합, 정의선 회장 주도의 디자인 경영 덕분에 회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며 "회사가 다시는 부도나서는 안 된다는 전사적인 의지가 오늘의 성공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80년 역사를 기록하는 과정은 어땠을까. 이 고문은 "정의선 회장으로부터 기아 임직원이 친근히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 책을 써달라는 주문과 동시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써달라는 주문을 받았다"며 "자랑스러운 성공의 역사만이 아니고 시련과 실패의 뼈아픈 역사도 에누리 없이 기록해달라 하셨는데 이 부분이 쉽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비화도 있다. 1985년 프라이드 생산을 위한 소하리 공장 증축 과정에서 그린벨트에 직면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고문은 당시 청와대 수석을 공사 현장에 모셔와 해당 사업의 중요성을 설득해 대통령의 결단을 얻어냈었다며 만약 해당 사업이 설득되지 못했었다면 프라이드라는 차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아자동차 인수 기업 선정을 둘러싼 위기도 사사에 담았다고 강조했다. 이 고문은 인수 기업 선정 과정은 통제와 보안 속에서 진행되기 마련인데 현대가 최종 낙찰되게 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이 매우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기아 80년 사사에 따르면 당시 현대그룹 이계안 경영전략팀장은 겉으로 드러난 인수 의지와는 달리 그룹 내부에서는 인수 찬성과 반대로 의견이 엇갈렸다고 회고했다. 또 기아자동차의 자연도태가 오히려 한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낙찰 후보로는 삼성과 포드가 유력했었고, 정부도 부실이 우려되는 현대자동차보다는 포드 쪽으로 낙찰이 기울었다는 내용도 있다. 나아가 한국 기업 중 가장 인수 의지가 강했던 삼성은 방대한 분량의 입찰 서류를 준비해 입찰전에 나섰다는 당시의 비하인드도 상세히 적혀 있다. 여기에 3차 입찰 결과 발표 직전인 1998년 10월 삼성 내부의 기류가 크게 변했으며 삼성이 빠진 뒤 현대차로 기아차 입찰 분위기가 크게 바뀌는 등의 생생한 이야기도 있다.


국민대학교 권용주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는 "통상 기업의 흥망성쇠를 약 35년 정도로 칭하는데 기아 80년 역사는 기계공학 측면에서 매우 특별하다"며 "인수합병을 겪은 뒤 기아처럼 환골탈태해 글로벌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없다"고 말했다.

달려온 80년…정의선 회장, 미래 100년 기업 바라봤다


3000리호, C-100, K-360부터 PV5와 이날 발표된 컨셉카 '메타투리스모'까지, 1944년 경성공업 시절부터 2025년 기아는 이륜·삼륜차 10종, 승용차 79종, 상용차 26종, 특수차 10종 등 80년간 125종의 차량을 만들어왔다. 봉고, 모하비, 레토나, 프라이드 등 기아가 만들어온 차량로도 끊임없는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는 이유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기아는 헤리티지 계승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원동력으로 삼고자 한다"며 "올해 PV5가 세계 올해의 밴을 비롯해 다양한 수상을 하며 미래 방향에 자신감을 갖게 됐는데 다양한 전기차와 PBV 통해 산업 생태계 조성하고 국가 경제 조성하는 100년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실천하듯 기아 연수원 건물인 비전스퀘어 한편에는 다양한 기아 차 실물 전시가 이어졌다. 1974년 기아의 첫 승용차인 브리사와 많은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프라이드, 현재는 단종된 스팅어와 쏘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80주년을 축하하는 컨셉카 '메타투리스모'의 모습도 공개됐다. 인간 중심적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기아의 가치가 반영된 컨셉카로 기술적 진화와 감성적 경험을 연결했다. AR HUD 기술을 활용한 점도 큰 특징이다.

카림 하비브 기아 글로벌 디자인 담당 부사장은 "메타투리스모 내부는 우주선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라며 "운전석은 몰입형 레이싱을, 탑승자 공간은 차분한 좌석을 연상한다"고 말했다.


송 사장은 "출발선에 선 기아는 이제 공급망 변화, 중국 브랜드 도전, AI 시대 등 새로운 변화에 직면했다"며 "이동가치 실현이라는 본질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삶의 가치를 지속가능한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은 "김철호 창업자님은 모빌리티라는 단어도 생경할 당시인데 종합 자동차 공장을 만드시며 근간을 닦으셨고 정주영 회장님은 기아라는 고유한 시너지를 존중해야 한다며 생각 변화로 이어지는 개선, 역동적 디자인, 지속가능한 환경까지 기아만의 혼이 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80년의 헤리티지를 가슴에 품고 100년의 여정을 설레게 나아가자. 후대가 자랑스러워할 미래를 함께 나아가자"고 다짐했다.


<저작권자 Copyright ⓒ ER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