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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보란 듯' 끌어안은 푸틴·모디… 석유 등 에너지 협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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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보란 듯' 끌어안은 푸틴·모디… 석유 등 에너지 협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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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 총리, 공항서 푸틴 이례적 직접 영접
印, 3조 원에 러시아 핵잠수함 10년 임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4일 뉴델리 팔람 공군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영접하며 포옹하고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4일 뉴델리 팔람 공군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영접하며 포옹하고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러시아와 인도가 ‘미국 보란 듯’ 밀착 행보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인도 국빈 방문에서 양국이 석유·원자력 등 에너지 부문 협력 확대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 우크라이나 종전을 압박해 온 미국은 복잡한 국면을 맞게 됐다는 평가다.

에너지-국방 협력 강화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과 인도 인디아투데이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4일 저녁 1박 2일 일정으로 뉴델리를 국빈 방문했다. 그의 인도 방문은 2021년 12월 이후 4년 만으로,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이다.

모디 총리는 이날 이례적으로 뉴델리 팔람 공군기지에서 푸틴 대통령을 직접 영접하며 뜨겁게 포옹했다. 푸틴 대통령도 방문 전 인디아투데이 인터뷰에서 “내 친구 모디 총리를 만나게 돼 매우 기쁘다”고 친밀감을 드러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4일 뉴델리 팔람 공군기지에서 차량을 타고 관저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인도 언론정보국 공개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4일 뉴델리 팔람 공군기지에서 차량을 타고 관저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인도 언론정보국 공개


두 정상은 5일 오후 총리 관저에서 진행된 정상회담에서 에너지 협력이 양국 국가 안보의 핵심 요소라는 데 뜻을 모았다. 푸틴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석유·가스·석탄과 인도 에너지의 발전에 필요한 모든 것의 신뢰할 수 있는 공급원”이라며 “연료를 차질없이 수송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양국은 또 인도산 상품의 대(對)러시아 수출 증대를 포함한 무역 확대에 전념하기로 재확인했다. 특히 원활한 무역 흐름을 보장하기 위해 러시아 루블화와 인도 루피화 결제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 간 결제에서 루블화-루피화 결제 비중이 이미 96%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모디 총리는 “인도와 러시아의 우정은 북극성과 같다”며 “에너지 안보는 우리 파트너십의 든든한 기둥이고, 앞으로도 이러한 윈윈(win-win)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지난달 17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이 러시아 SU-57E 전투기를 살피고 있다. 두바이=AP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에어쇼에서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이 러시아 SU-57E 전투기를 살피고 있다. 두바이=AP 연합뉴스


두 나라는 국방 협력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도가 러시아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9,400억 원) 규모 원자력 추진 잠수함(SSN)을 10년간 임대하고 오는 2028년 인도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미국-양국 관계 시험대”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양국 모두 미국과 갈등을 빚는 가운데 이뤄졌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와 전략적 우호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2기 들어 관계가 급격히 냉각됐다.

미국은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렸다는 이유로 지난 8월부터 인도산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비중은 우크라이나 전쟁 전 2.5%에서 최근 35%로 급증했다.


5일 인도 뭄바이에서 한 남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인도 방문 내용이 담긴 신문을 읽고 있다. 뭄바이=로이터 연합뉴스

5일 인도 뭄바이에서 한 남성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인도 방문 내용이 담긴 신문을 읽고 있다. 뭄바이=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역시 서방 제재로 고립될 위기에 놓였지만, 인도의 대규모 원유 구매로 숨통이 트였다. 인디아투데이는 푸틴 대통령이 “미국은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을 계속 구매하면서 왜 인도의 러시아 원유 구매를 문제 삼느냐”고 불만을 드러냈다고도 전했다.

결국 이날 정상회담 결과는 미국의 제재에 동요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모디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인도 관계는) 외부 압박과 간섭에 회복력이 강하다”고 언급했는데, 이 역시 서방의 견제 속에서도 전략적 협력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발언으로 풀이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인도 정상회담은 양국과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를 시험대에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8월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 합동기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종식 협상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앵커리지=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8월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 합동기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종식 협상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앵커리지=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80주년 전승절 열병식에서 푸틴 대통령과 모디 총리가 손을 맞잡은 모습을 보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앞서 이날 회담 모두 발언에서 푸틴 대통령은 모디 총리에게 우크라이나 문제 현황, 미국과의 대화 내용을 브리핑했다면서 인도의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 노력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모디 총리는 “인도는 중립이 아니라 평화의 편”이라면서 “세계가 평화로 되돌아가야 하며, 우리는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