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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드라마, 어디까지 합법인가 [이용해 변호사의 엔터Law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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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드라마, 어디까지 합법인가 [이용해 변호사의 엔터Law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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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할리우드를 멈춰 세운 역사적 파업. 그 중심에 AI(인공지능)가 있었다. 1만1500명의 작가와 16만 명의 배우가 넷플릭스, 디즈니 등 거대 제작사를 상대로 파업에 나선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 배우들은 자신들의 영상을 AI에 학습시켜 복제품을 만들 때 사전 동의와 보상을 요구했고, 작가들은 AI가 쓴 초안을 저임금으로 수정하는 일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 논쟁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국내 제작 현장도 본격적으로 AI 드라마 시대에 들어섰다. CJ ENM이 지난 6월 “AI 기술이 바꾸는 K콘텐트 산업의 미래”를 선언하며 AI 애니메이션·드라마 제작을 확대하고 있고, 이오콘텐츠그룹은 2026년 초 국내 첫 시즌제 AI 드라마를 공개할 예정이다.

CJ ENM은 단순히 콘텐트 제작에 AI 기술을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기획부터 유통 단계까지 AI를 적용해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AI 애니메이션 시리즈 ‘캣 비기(Cat biggie)’의 한 장면. 사진 CJ ENM

CJ ENM은 단순히 콘텐트 제작에 AI 기술을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기획부터 유통 단계까지 AI를 적용해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AI 애니메이션 시리즈 ‘캣 비기(Cat biggie)’의 한 장면. 사진 CJ ENM



기술은 이미 앞서가고 있지만, 법적 논의는 아직 미완성인 상황. 그렇다면 AI 드라마 제작은 법적으로 어디까지 허용되는 걸까.



타인의 드라마로 AI를 학습시켜도 될까



첫 번째 법적 문제는 AI 학습 데이터다. AI가 드라마를 만들려면 기존 드라마들을 학습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저작물을 복제하게 되어 저작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해외는 이미 TDM(Text and Data Mining) 면책 규정을 도입해 연구 또는 상업적 목적의 저작물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 EU는 적법하게 접근가능한 저작물일 것을 전제로, 일본은 적법한 데이터 수집일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1년부터 계속 TDM 면책 규정 신설이 추진되고 있지만, 여러 저작권 단체들이 “창작자 권리가 과도하게 제한된다”며 반대해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제작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저작권법상 공정이용 조항을 활용하는 것이다. 다만 기계적 데이터 수집·분석의 적법성에 대한 명확한 판례가 없어 법적 불확실성은 여전히 크다.

국민 배우 나문희가 AI 기반으로 만든 영화 '나야, 문희'를 통해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사진 CGV

국민 배우 나문희가 AI 기반으로 만든 영화 '나야, 문희'를 통해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사진 CGV



20년간 PD로 일하며 수많은 드라마를 만들었던 내 경험을 떠올려보면, 제작 현장은 “일단 써도 되는 건가?”라는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글로벌 플랫폼 공급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AI가 만든 드라마, 저작권은 누구 것인가



두 번째 쟁점은 AI가 생성한 결과물의 저작권 귀속이다. AI가 쓴 시나리오, AI가 만든 영상에 저작권이 있을까.

AI가 자동으로 생성한 결과물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니다. 다만 인간이 그 결과물에 창작적 표현을 추가한 경우, 그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는 저작권을 인정할 수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입장도 이와 같다. 미국 저작권청도 “AI 시스템이 만든 결과물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며, 중요한 기준은 인간이 작품의 표현을 창의적으로 통제했는지 여부라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얼마나 개입해야 저작권이 인정되는가’다. 단순히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AI가 만든 초안을 대폭 수정하거나, AI 생성 장면을 창의적으로 편집해 서사를 구성하는 등 실질적인 창작 행위가 있어야 저작권이 인정된다. 예컨대 AI가 만든 수십 개의 장면 중 어떤 장면을 선택해 서사 흐름을 만들었는지, 특정 컷을 어떻게 재배열해 의미를 부여했는지 등의 작업은 창작적 판단에 해당한다.




증명책임은 ‘창작자’에게 있다



여기서 제작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원칙이 하나 있다. 바로 창작적 기여에 대한 증명책임은 저작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진다는 점이다. 즉, “AI가 도와줬지만 최종 표현은 내가 창작했다”는 점을 제작자가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미술과 한국고전을 엮은 세계 최초 AI 영화 ‘AI 수로부인’. 사진 나라지식정보

현대미술과 한국고전을 엮은 세계 최초 AI 영화 ‘AI 수로부인’. 사진 나라지식정보



실무에서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나중에 “이 작품은 대부분 AI가 만든 것 아니냐?”라는 분쟁이 생기면, 제작사가 어떤 창작적 판단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를 사전에 기록하지 않았다면 사실상 입증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2024년 1월 국내에서 공개된 영화 ‘AI 수로부인’(심은록 감독)은 AI 프로그램을 활용하면서도 인간이 시나리오와 편집 단계에서 창작적으로 개입한 부분을 입증해 편집저작물로 저작권 등록을 받을 수 있었다.

■ 제작사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4가지

AI 드라마 제작을 준비 중인 제작사라면 다음 네 가지는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1. 학습 데이터의 적법성 확인. AI 업체에 "어떤 데이터로 학습했는가, 저작권 문제는 없는가"를 반드시 문의하고 계약서에 명시해야 합니다.

2. 인간의 창작적 기여를 문서화할 것. 프롬프트 작성 내역, 수정 과정, 장면 선택 기준, 편집 의도 등 모든 개입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버전별 저장을 권합니다.

3. 계약서에 AI 사용 조항을 신설할 것. 작가·배우·스태프의 계약서에 AI 활용 범위, 생성물 권리 귀속, 분쟁 시 책임을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배우의 경우 초상권·퍼블리시티권과도 직결됩니다.

4. AI 사용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 어느 부분에 AI를 사용했는지 크레딧에 명시하면 시청자의 알 권리를 존중함과 동시에, 향후 분쟁에서 사기적 표시 주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일부 글로벌 플랫폼들도 이러한 방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술은 달리고 있지만, 법은 따라가는 중



할리우드 파업은 결국 작가·배우 측의 승리로 끝났다. AI 사용에 대한 명확한 규칙이 마련됐고, 디지털 복제 시 반드시 동의를 받도록 했다. 국내도 머지않아 비슷한 전환점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AI는 제작비를 줄이고 창의성을 확장하는 강력한 도구지만, 법적 리스크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 특히 한국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콘텐트 강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제는 AI 활용 기준과 데이터 학습 범위에 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 필자소개

이용해 변호사

이용해 변호사

이용해 변호사는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여년간 SBS PD와 제작사 대표로서 ‘좋은 친구들’, ‘이홍렬 쇼’, ‘불새’, ‘행진’ 등 다수의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후 법무법인 화우의 파트너 변호사 및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팀장으로서 넷플릭스·아마존스튜디오·JTBC스튜디오 등의 프로덕션 법률 및 자문 업무를 수행해왔다. 현재 콘텐트 기업들에 법률 자문과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YH&CO의 대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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