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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 다우드 "식민 기억, 중요하지만 현재 권력자들의 자산이 되면 안 돼" [2025 연세노벨위크]

파이낸셜뉴스 홍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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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 다우드 "식민 기억, 중요하지만 현재 권력자들의 자산이 되면 안 돼" [2025 연세노벨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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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의 과거 집착, 현재의 공백이 만든 역설"
"정치 담론과 결합된 '기억의 기억', 현재를 침식시키는 '감옥'"


2025 연세노벨위크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 중인 카멜 다우드.사진=홍채완 기자

2025 연세노벨위크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강연 중인 카멜 다우드.사진=홍채완 기자


[파이낸셜뉴스] 소설 '후리'로 지난해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알제리 출신 작가 카멜 다우드가 한국을 찾았다. 다우드는 한강 작가의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해 연세대학교가 마련한 '2025 연세노벨위크'의 기조강연을 맡기 위해 방한했다.

'후리'는 헌법상 언급조차 금지된 알제리 내전의 참상을 목소리 잃은 여성 피해자를 주인공 삼아 풀어낸 작품이다. 이 책이 2024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자, 알제리 정부는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하며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다우드에 대한 국제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는 알제리를 떠나 현재 프랑스에 머물고 있다.

다우드는 이날 기조강연 자리에서 "죽은 자들의 고통과 희생이 현재 권력자들의 자산이 됐다"고 지적했다. 현재 알제리가 식민 지배의 상처를 반복적으로 호출해 사회 전체를 과거에만 묶어두는 '기억의 정치'를 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이 같은 기억의 작동 방식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 빗대어 설명했다.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 주인공 푸네스가 결국 현재의 삶을 유지하지 못하는 설정을 언급하며, 그는 '과잉 기억'이 사회를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다우드는 알제리 일상에서 식민 기억이 재현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개인적 경험도 전했다. 프랑스인 관광객과 함께 걷던 중, 한 현지인이 관광객에게 "당신은 떠나온 나라가 그립지 않느냐"고 묻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현지인은 모든 프랑스인이 '가해자'며, 알제리를 방문하는 모든 프랑스인은 '법정'에 서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억이 사실을 단순화하고 개인을 일반화하여 범주화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또 그는 "식민지를 직접 겪은 세대보다 오히려 젊은 세대에서 기억의 과잉이 더 뚜렷하다"며 "현재의 문제를 설명하기 어려울수록 과거의 서사가 사회 전체를 대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오늘의 공백을 과거가 메우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실업, 가난, 부패, 폭력, 이 모든 것들이 옛 식민 지배자 탓이 된다"며 "종종 우리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로 삼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기억은 하나의 길"이라면서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 죽은 자들의 목소리들을 살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반드시 현재로 돌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현장. 왼쪽부터 주일선 연세대학교 교수, 카멜 다우드, 나야 마리 아이트, 찬와이.사진=홍채완 기자

라운드 테이블 인터뷰 현장. 왼쪽부터 주일선 연세대학교 교수, 카멜 다우드, 나야 마리 아이트, 찬와이.사진=홍채완 기자


기조강연 후 이어진 라운드 테이블에서 다우드는 기억과 현재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진정된 과거'와 '아직 과거가 되지 못한 과거'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과 증언을 통해 정리된 과거는 현재에 의미 있는 자원이 될 수 있지만, 정치적 담론과 결합돼 '기억의 기억'만을 증폭시키는 과거는 오히려 현재를 침식시키는 '감옥'이 된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다우드는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있어서 사건의 기억, 희미해진 기억, 그리고 그 기억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이 뒤섞이기 쉽다고 지적하며, 문학의 역할은 이러한 '기억 위의 기억'을 벗겨내 진정한 기억에 도달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통이 언어를 통해 외부로 표현되는 순간 언어가 상처를 '진정된 과거'로 전환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whywani@fnnews.com 홍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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