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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쿠르상’ 다우드 “여성 대하는 방식으로 그 나라 알 수 있어”

헤럴드경제 김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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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쿠르상’ 다우드 “여성 대하는 방식으로 그 나라 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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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내전 다룬 ‘후리’ 본국선 禁書
천국서 의인에 주어진다는 ‘처녀’ 지칭
현실의 진짜 후리들, 책 주제로 다뤄
카멜 다우드 작가가 3일 서울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후리’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카멜 다우드 작가가 3일 서울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후리’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제도화된 망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글을 통해, 증언을 통해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을 잊지 말고 기억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가장 끔찍한 죽음은 기억에서 잊혀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해 세계 3대 문학상인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 카멜 다우드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3일 서울 중구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수상작 ‘후리(Houris)’의 한국어판 출간 소감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후리는 1990년대 정부와 이슬람주의 세력의 충돌로 약 10년간 이어진 알제리 내전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오브는 대학살의 생존자로, 후두가 손상돼 목소리를 잃고 튜브로 숨을 쉰다. 그는 ‘후리’라고 이름 지은 뱃속의 딸에게 내면의 말을 건네면서 여성의 삶이 고통인 이 나라에서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게 맞는지 고민한다.

사실 알제리 정부는 이 내전에 대해 언급 자체를 헌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래서 기자이자 소설가인 다우드는 2년 전 프랑스로 건너가 이 작품을 출간했고, 알제리 정부는 금서로 지정하며 압박을 가했다. 작가에게도 알제리 내전은 너무나 큰 고통이라 언어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웠다. 고민 끝에 작가는 내전의 상징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는 “정답이 없을 때 소설을 쓰게 된다. 소설은 질문을 제시한다”고 말했다.

신변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용기를 낸 것은 문학을 통해 정부가 강제로 지우려 하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서였다. 작가는 “참혹한 내전 동안 특히 여성들의 피해가 컸다. 복수의 사슬은 어느 순간 멈춰야겠지만, 면책과 망각은 서로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알제리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망각이 아니다. 가해자들을 사면하더라도 먼저 용서를 구하고, 역사를 교육함으로써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기억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내전 동안 일어난 폭력에 더해지는 ‘2차 폭력’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다우드 작가는 한국에 대해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다는 점에선 알제리와 공통점이 있다고 봤다. 다만 한국은 식민 지배 국가와의 관계를 전혀 다른 식으로 형성했고, 사과나 진실에 있어 전혀 다른 태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작가가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라 차이가 있지만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는 국가라는 생각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연세노벨위크 국제 심포지엄에 연사로 초청된 그는 한강 작가와 비교되는 것에 대해 “매우 큰 영광”이라며 “둘 다 기억을 다루고 개인의 자유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알제리인으로서 정치적 자유가 제한되는 나라에서 표현을 통해서 자유를 찾으려고 했고, 문학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저항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카멜 다우드 ‘후리’ 표지

카멜 다우드 ‘후리’ 표지



책의 제목인 ‘후리’는 이슬람 전통에서 천국에서 의인(남성)에게 주어진다고 믿어온 처녀들을 뜻한다. 아랍권에서 오랫동안 반복된 이 판타지는 ‘세상의 기쁨은 죽음 이후에나 허락된다’는 사고방식을 강화해 왔다. 작가는 이러한 인식이 여성과 성에 대한 관념을 오도한다고 보고, 이를 전복해 현실의 여성들인 ‘진짜 후리들’을 주제로 다뤘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지칭한 그는 “어떤 국가가 여성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를 보고 그 국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며 “여성들이 자유로운 삶을 누리는 국가라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고, 여성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면 그 국가는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소설은 폭력과 상흔 속에서도 과거에 갇히지 않고 현재와 미래로 나아간다. 다우드는 “이 소설은 절망의 이야기가 아니다”면서 “전쟁을 어떻게 극복하고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갈 수 있는가, 피해자들이 어떻게 고통을 겪고 나서 나 자신, 사람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읽었을 때 고통과 죽음 이후에도 삶은 존재하고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