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박정민이냐 김준수냐…연말 대목 공연계 극성수기 ‘빅매치’

헤럴드경제 고승희
원문보기

박정민이냐 김준수냐…연말 대목 공연계 극성수기 ‘빅매치’

속보
KTX 운행 중에 화재...승객 전원 하차·대피
공연업계 12월 ‘연중 최다’ 티켓 판매
1년 티켓 판매액의 14.5% 12월 몰려
연말 신작 줄줄이 개막…대기록 전망
‘라이프 오브 파이’ 개막 당일 매진사례
대형 뮤지컬 ‘물랑루즈!’·‘비틀쥬스’ 출격
배우 박정민 박강현이 출연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 [에스앤코]

배우 박정민 박강현이 출연하는 ‘라이프 오브 파이’ [에스앤코]



대작 옆에 대작, 스타 옆에 스타가 있다. VIP석 기준 최고가 32만원. 나날이 뛰고 있는 티켓 가격에 발맞춘 화려한 스케일과 톱스타들의 공세에 올해는 특히나 역대 최고 티켓 판매액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4일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운영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 달간 개막한 전체 공연 건수는 총 2513편, 총 티켓 판매액은 2118억6899만원이었다. 지난해 전체 티켓 판매액이 1조4537억원임을 고려하면 비중이 14.5%이나 된다. 1년 중 가장 많은 티켓을 팔아치우는 달인 셈이다. 12월 다음으로 가장 많은 티켓 판매고를 올리는 달은 1497억8310만원을 기록한 8월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기세가 남다르다. 이미 지난달까지 1조4946억원을 기록, 전년도 총 티켓 판매액을 뛰어넘은 상황이다. 여기에 공연 대목 달인 12월은 신작들도 줄줄이 개막하면서 전례 없는 대기록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도 기대감이 높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팬데믹으로 쪼그라들었던 공연 시장이 완전히 궤도에 올라선 데다, 지난 몇 년간 티켓 가격의 상승으로 단위가 부쩍 커졌다”며 “평소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톱배우와 티켓 파워를 보여줬던 스타 배우들, 재정비해서 돌아오는 재연 신작이 올 한 해 최고 티켓 판매액 달성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점친다.

실제로 공연계는 이미 흥분 상태다. 올해도 돌아온 ‘태양의 서커스’가 최고가 32만원짜리 티켓을 들고 왔음에도 관객들의 지갑을 사정없이 열어젖혔다. 또 한국 뮤지컬 사상 처음으로 토니상 6관왕을 달성한 ‘어쩌면 해피엔딩’ 10주년 공연이 전석, 전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뮤지컬계로 향하게 했다.

이에 더해 스테디셀러 뮤지컬 ‘렌트’(내년 2월 22일까지, 코엑스아티움)와 ‘데스노트’(내년 5월 10일까지, 디큐브씨어터), ‘에비타’(내년 1월 1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비하인드 더 문’(내년 2월 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등은 4분기 티켓 판매를 책임지고 있고, 이달엔 총 8편의 중, 대극장 뮤지컬이 개막한다.


‘대세 전남친’ 박정민의 ‘라이프 오브 파이’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최근 청룡영화상에서 그룹 마마무 화사의 솔로곡 ‘굿 굿바이’ 무대를 함께 꾸미며 화제의 중심에 섰던 배우 박정민이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또 한 번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금 공연계는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박정민의 등장에 완전히 고무돼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내년 3월 2일까지) 개막 당일이었던 지난 2일 서울 강남 GS아트센터는 공연 1시간 전부터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였다. 단숨에 매진 사례를 기록한 공연다웠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2002년 맨부커상을 받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이안 감독의 영화(2012년)에 이어 2019년 영국 셰필드에서 초연되며 무대로 태어났다. 2021년 웨스트엔드에 올라간 공연은 올리비에상과 토니상을 휩쓸었다. 이 공연은 미국, 호주 등 세계 투어를 하고 있으나 다른 나라의 언어로 그 나라의 배우가 공연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티켓 예매 사이트에선 ‘뮤지컬’로 분류돼 있으나, 노래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웨스트엔드 초연에선 ‘연극’으로 분류했지만, 국내 공연을 준비한 창작진과 제작사는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는 새로운 장르를 들고나왔다. 이 작품이 어떤 장르로도 규정할 수 없고, 무대의 완성엔 관객의 상상력이 개입돼야 한다는 점을 들어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는 장르로 결정됐다.

무대는 마법의 황홀경이다. 일렁이는 파도가 환각 같은 영상, 조각배와 바다거북, 수표 모형을 손에 쥔 배우들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무대 한가득 수놓은 반짝이는 별빛 아래 명랑하고 긍정적인 박정민의 원맨쇼가 이어진다. 세 명의 퍼펫티어와 함께 관절 하나하나를 움직이며 그르릉 소리를 내는 벵골 호랑이, 힘없이 뒷다리를 들썩이는 얼룩말 블랙앤화이트, 오랑우탄까지 집어삼킨 하이에나가 살점과 뼈가 부서지는 소리까지 살려내자 관객들은 태평양에 표류한 파이의 227일간의 생존기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든다. ‘상상력’이 관객의 필수요건이라 했지만, 무대는 퍼펫이 등장한 순간부터 퍼펫티어가 보이지 않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완성한다.

신동원 에스앤코 대표는 “이 작품이 가진 철학적 메시지가 한국어로, 한국 배우를 통해 전달되는 게 공감이 클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라이프 오브 파이’는) 믿음이 인간을 어떻게 살아가게 하는지 알아보는 이야기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을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민과 함께 파이 역은 뮤지컬 스타 박강현이 더블 캐스팅됐다.


홍광호 김지우가 호흡을 맞춘 뮤지컬 ‘물랑루즈’  [CJ ENM 제공]

홍광호 김지우가 호흡을 맞춘 뮤지컬 ‘물랑루즈’ [CJ ENM 제공]



화려함의 극치 ‘물랑루즈!’, B급 코미디 ‘비틀쥬스’

춤, 노래, 볼거리의 삼박자가 완벽히 어우러진 대형 뮤지컬도 돌아온다. ‘화려함의 극치’를 담아낼 뮤지컬 ‘물랑루즈!’와 ‘비틀쥬스’다. 공교롭게도 CJ ENM이 제작, 일찌감치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공동 제작에 참여하며 한국 공연권을 따냈던 작품들이다. 완전히 다른 내용이지만, 절묘하게도 어른들의 송년 모임에 찰떡인 무대다.

2022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물랑루즈!’(내년 2월 22일까지, 블루스퀘어)는 뮤지컬계 빅스타 홍광호(크리스티안)를 필두로 가수 이석훈, 김지우, 정선아, 차윤해가 함께 한다.

1890년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클럽 물랑루즈 최고 스타인 사틴과 작곡가 크리스티안의 좌충우돌 사랑을 그린 무대. 2001년 니콜 키드만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대는 영화를 뛰어넘는 압도적 화려함이 눈을 홀린다. 구태의연한 삼각관계를 풀어내는 방식이 고전적이면서도, 화려하고 세련된 무대, 장장 70여개의 팝송을 매시업(mash-up)한 뮤지컬 넘버로 ‘귀 호강’이 예약돼 있다.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스’(Single Ladies), 마돈나의 ‘머티리얼 걸’(Material Girl) 등 친숙한 멜로디의 팝송이 등장해 뮤지컬 음악이 낯선 관객들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저신타 존 해외 협력 연출은 “한 단어로 작품을 설명한다면 ‘열정’”이라며 “사랑, 욕망, 질투, 두려움 등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관객들이 작품 속 캐릭터의 여정을 따라가며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팀 버튼의 동명 영화 ‘비틀쥬스’도 무대에서 만난다. 이번엔 뮤지컬계 슈퍼스타인 가수 겸 배우 김준수와 함께다.

201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하고, 팬데믹 시기인 2021년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로 라이선스(작품 판권을 수입해 제작) 형태로 초연한 ‘비틀쥬스’는 최첨한 영상과 그래픽으로 점철된 공연계에 ‘아날로그의 힘’을 보여준 무대 미술로 공략한다. 현대와 빅토리아 시대를 오가는 ‘살아 움직이는’ 집과 거대한 모래벌레 퍼펫, 미식축구 유령 등이 팀 버튼의 미장센을 품고 무대로 구현됐다. ‘비틀쥬스’ 오리지널 무대의 맷 디카를로 연출가는 “영화의 아이코닉한 세계관을 재창조하기 위해 기존의 틀을 깨는 무대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비틀쥬스’의 백미는 아찔한 19금 대사, 시대성을 반영한 풍자와 해학, 미국식 코미디의 완벽한 한국화에 있다. 이번엔 초연에서 번역과 대본 작업을 맡은 김수빈과 함께 코미디언 이창호가 ‘코미디 각색’ 작업에 참여했다. 관람가도 기존 8세에서 14세로 높였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끼어 살아가는 ‘가련한 영혼’ 비틀쥬스의 괴랄함이 시각적 충격과 함께한다.

뮤지컬 ‘비틀쥬스’에서 비틀쥬스 역을 맡은 배우 김준수 정원영 정성화 [연합]

뮤지컬 ‘비틀쥬스’에서 비틀쥬스 역을 맡은 배우 김준수 정원영 정성화 [연합]



창작 신작‘한복 입은 남자’와 ‘크리스마스 캐럴’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진 창작 뮤지컬도 대극장과 중극장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뮤지컬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의 창작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다. 중세 유럽에 빠져 모차르트, 베토벤을 만났고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타하리도 소환했던 EMK가 이번엔 마침내 한국의 역사를 가져왔다.

‘한복 입은 남자’(3월 8일까지, 충무아트센터)는 조선 최대 미스터리로 꼽히는 장영실의 마지막 행적을 모티브로 삼아 그의 비망록 속 진실을 추적한다. 조선과 이탈리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방대한 서사를 인물극 장인들이 만들었다. ‘마타하리’, ‘모차르트!’, ‘몬테 크리스토’를 쓴 권은아가 극작, 작사, 연출을 맡았고, ‘프랑켄슈타인’ 이성준이 작곡을 책임졌다.

EMK뮤지컬컴퍼니 관계자는 “풍성한 오케스트라로 구현된 서정적인 한국적 선율과 깊은 울림을 주는 음악은 장영실의 여정을 한층 드라마틱하게 완성한다”고 말했다. 장영실과 그의 비망록을 추적하는 학자 강배 역엔 박은태·전동석·고은성이, 세종과 방송국 PD 진석 역엔 카이·신성록·이규형이 낙점됐다.

송년 분위기를 담고 스크루지도 돌아왔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 신작 ‘크리스마스 캐럴’(5일 개막, 세종문화회관)이다. 스타 배우는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 작품이나 개막을 앞두고 현재 전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찰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은 한 해를 보내며 온 가족, 전 세대가 함께 볼 있는 무대로 만들었다. 히트 가족 뮤지컬 ‘장수탕 선녀님’을 만든 정준 작가, 조한나 작곡가 콤비가 참여했다. 산업혁명기의 계급 갈등과 빈부격차는 신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2025년 대한민국에도 공유할 수 있는 메시지를 남긴다. 시간 여행을 떠나며 구두쇠가 된 스크루지의 오늘에선 이 땅의 김부장들의 외로움도 느껴진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담은 다양한 장르의 창작 캐럴은 이 무대의 하이라이트. 요즘 인기가 많은 팝 캐럴이 아닌, 음악적 풍성함을 살린 고전적인 캐럴, 유럽 한복판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상상할 수 있는 캐럴을 작곡했다는 것이 조한나의 귀띔이다.

정준 작가는 “이 작품이 2025년 대한민국 서울의 관객에게도 적합한, 유효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소통 창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했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고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