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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삼륜차부터 EV·PBV까지"…기아 도전의 80년 역사

아시아경제 오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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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삼륜차부터 EV·PBV까지"…기아 도전의 80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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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호 창업자 '3000리호' 개발
소하리 공장서 '브리사' 출시
봉고·프라이드 신화로 이어져

현대 합류 후엔 '스리카' 효과
디자인 혁신 'K 시리즈' 결실
2020년대 전동화 리더로
기아가 80년 동안 걸어온 여정은 '도전'의 역사다.

고난 가득했던 전후 시절 자전거와 삼륜차로 한국인의 '발'이 돼준 기아는 1970년대 봉고와 프라이드를 내놓으면서 한국 산업의 발판이 됐으며, 1990년대 고도의 성장기에 스포티지와 K 시리즈로 일상생활의 편리한 이동성을 선사했다. 현대자동차와 만나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완성차 브랜드로 성장, 이제는 새로운 변화인 전동화를 이끄는 대열에 섰다.


17살에 일본에서 자전거 기술을 배운 창업자 김철호는 1944년 한국으로 넘어와 12월 11일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에 '경성정공'을 차렸다. 최초 국산 자전거 '3000리호'를 만든 그는 회사 이름을 '기아산업'으로 바꿨다. '아시아에서 일어난다(起亞)'는 뜻으로 "자전거가 완성되면 자동차, 자동차가 완성되면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꿈을 담았다.

의욕적으로 뛰어든 자전거 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1962년 최초 국산 오토바이 'C-100'와 최초 삼륜차 '기아마스타 K-360'를 출시하면서 기회를 찾게 된다. 좁은 도로환경과 열악한 연료 사정에 알맞은 이동 수단이 됐고, 국내 물류 발전의 원동력으로 자리잡았다. 기아산업은 1973년 '소하리공장'을 짓고 이듬해 첫 승용차 '브리사 S-1000'을 출시했는데 엔진을 국산화하며 자동차 기술 자립에 나섰다.



1980년대 자동차 산업 통폐합 조치로 승용차 사업에서 철수해야 했던 기아산업은 일본 마쓰다의 '봉고'를 라이선스 생산하면서 상용차 시장에서 활로를 모색하게 된다. 봉고는 출시 3년 만인 1984년 5월 누적 판매대수 10만대를 돌파했다.

1990년에는 '기아자동차'로 사명을 바꾸면서 자동차 전문 기업으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소유-경영 분리'의 모범기업으로 평가받던 기아는 무리한 사업 확장과 오너십의 부재 등으로 1998년 법정관리에 처하게 된다. 이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의 결단으로 현대그룹에 합류했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분발하며 항상 기회를 찾아온 기아의 DNA는 여기에서도 빛을 발했다. 카렌스, 카니발, 카스타의 '스리카' 효과로 현대차 인수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불과 2년 만인 2000년에 법정관리를 끝낼 수 있었다.


정몽구 회장은 '품질 최우선주의'라는 사명을 기아에 심었다. 임직원이 보는 앞에서 카니발의 품질을 3시간 넘게 직접 확인한 일화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이어 2004년 정의선 당시 부사장을 기아차 대표로 내정, 기아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토대를 마련했다.

정의선 대표 체제에서 기아는 '디자인 경영'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하고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내게 된다. 2009년부터 출시한 'K 시리즈'는 디자인 경영의 결실로 꼽힌다.


2020년대 들어 전동화라는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 사명을 바꾸는 등 또다시 변화를 시도했다. 그 변화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전동화 'EV 시리즈'를 확대하면서 친환경 모빌리티 위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목적기반차량(PBV)이라는 새로운 모빌리티를 선보였다. 다목적 차량 봉고의 맥을 잇는 PBV 'PV5'는 출시 이후 해외에서 호평받으며 기아의 80년 도전정신을 증명하고 있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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