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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이 AI 활용 선도…인도·브라질, 선진국 앞서

플래텀 최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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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이 AI 활용 선도…인도·브라질, 선진국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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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시스코 14개국 조사…35세 기준 세대 격차 뚜렷, 한국은 스크린 피로감 심각


인도, 브라질, 멕시코, 남아공 등 신흥국이 AI 활용에서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을 앞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시스코가 5일 발표한 14개국 디지털 웰빙 조사 결과, 신흥국 젊은 세대가 AI 사용률, 신뢰도, 교육 참여도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번 조사는 올해 2~3월 호주, 브라질,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인도, 이탈리아, 일본, 한국, 멕시코, 네덜란드, 남아공, 영국, 미국 등 14개국 1만4,611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신흥국의 AI 역전, 왜?

과거 기술은 선진국에서 개발되고 신흥국으로 확산되는 패턴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AI는 정반대다. 신흥국 젊은 세대가 AI 도입과 활용에서 가장 적극적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레거시 시스템이 없어 새로운 기술 도입 장벽이 낮다. 둘째, 규제 부담이 적어 빠르게 실험하고 적용할 수 있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AI 활용에 대한 신뢰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고, 프라이버시와 윤리에 대한 우려가 컸다. 선진국일수록 기존 시스템을 바꾸는 데 드는 비용과 위험이 크고, 규제도 엄격하다.

이는 AI 시대에 '선진국'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프라와 자본이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실험하고 적용하는지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다.

35세, AI 시대의 새로운 디지털 디바이드

세대 간 격차도 뚜렷했다. 35세를 기준으로 AI 활용도가 극명하게 갈렸다.

35세 미만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적극적으로 AI를 사용하고 있으며, 75% 이상이 AI를 유용하다고 평가했다. 26~35세 응답자의 절반가량은 이미 AI 관련 교육을 이수했다.

반면 45세 이상 중장년층은 AI의 유용성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절반 이상이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특히 55세 이상에서는 "AI를 신뢰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높았는데, 이는 명확한 거부감이라기보다 기술에 대한 낮은 친숙도와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세대 격차는 조직 내부에서 심각한 소통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4050대는 AI를 잘 모르는 반면, 실무를 담당하는 2030대는 AI를 적극 활용하고 싶어 하는 상황이다. 스타트업도 예외가 아니다. 창업자가 30대 중반을 넘으면 팀 내 젊은 개발자들과 기술에 대한 이해도 차이가 벌어진다.

한국의 역설: 인프라는 최고, 피로감은 최악

시스코는 한국의 경우 디지털 인프라는 세계 최고지만 스크린 피로감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빠른 기술 도입과 높은 업무 강도가 맞물리면서 '번아웃'을 양산하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한국은 5G 커버리지, 인터넷 속도, 디지털 결제 인프라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프라가 오히려 '항상 연결된 상태'를 강요하면서 디지털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반면 신흥국은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AI를 포함한 새로운 기술을 삶의 질을 높이는 도구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다. 기술을 '더 일하기 위한 도구'로 보는지,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 보는지에 따라 웰빙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스크린 타임 5시간 넘으면 정신건강 44% 악화

연구는 기존 학계에서 논의돼온 '골디락스 효과(Goldilocks effect)'를 14개국 대규모 조사로 재확인했다. 스크린 타임이 너무 짧거나 길어도 웰빙에 부정적이며, 하루 1~3시간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스크린 타임이 하루 5시간 이상인 사람들은 1~3시간인 사람들에 비해 정신건강 악화 가능성이 44% 높았다. 삶의 만족도와 삶의 목적 상실 가능성도 크게 증가했다.

흥미롭게도 스크린 타임이 하루 1시간 미만인 사람들도 웰빙 수준이 낮아, 적정 수준의 디지털 활용이 오히려 웰빙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문제는 긴 스크린 타임이 다른 요인과 결합될 때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정신건강 악화 가능성이 2배 이상 높았으며, 특히 외로움과 하루 5시간 이상의 스크린 타임이 겹치면 위험이 더욱 증가했다. 실업 상태에서 스크린 타임이 긴 경우도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연구는 스크린 타임만이 아니라 수면, 운동, 경제적 안정 등이 웰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발견했다. 하루 4시간 미만의 수면은 웰빙을 크게 저하시켰고, 반면 주 8회 이상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웰빙 저하 가능성이 20% 이상 낮았다.

AI 시대, 속도보다 방향

이번 연구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AI를 '더 빨리 일하기 위한 도구'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신흥국이 AI 활용에서 앞서는 이유는 단순히 규제가 느슨해서가 아니다. 기술을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기술은 빠르게 도입하지만, 일하는 방식은 바뀌지 않는다. 슬랙, 노션, AI 도구는 늘었지만 회의 문화나 의사결정 구조는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도구만 추가되면서 오히려 '디지털 과부하'만 가중된다.

35세를 기준으로 확연히 갈리는 세대 간 AI 격차도 과제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시니어와 기술을 다루는 주니어 간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조직은 빠르게 낙오한다. 젊은 팀원들의 기술 역량과 시니어의 경험을 결합하는 학습 문화가 필요하다.

이번 연구는 디지털 웰빙이 단순히 스크린 타임 관리가 아니라, 수면, 운동, 경제적 안정 등 삶의 전반적인 균형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AI 시대,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글 : 최원희(choi@platu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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