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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제도 개선안'에 보건의료 전문가·환자 모두 우려...누굴 위한 정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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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제도 개선안'에 보건의료 전문가·환자 모두 우려...누굴 위한 정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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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기 기자]
보건복지부는 11월 28일 오후 2025년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위원장 이형훈 제2차관)를 열고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보고했다.

보건복지부는 11월 28일 오후 2025년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위원장 이형훈 제2차관)를 열고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보고했다. 


[라포르시안]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9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보고했다. 국내 제약산업 혁신을 촉진하고, 환자의 치료 접근성은 높이면서도 약제비 부담은 완화하기 위한 방안을 담았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와 의약품 급여정책 등을 연구하는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복지부가 마련한 개선방안이 실질적인 약가 관리와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방안으로서 효과성에 의문을 든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나섰다.

'의약품 급여정책과 의료기술의 가치를 연구하는 연구자 일동'은 지난 4일 '약가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의견서에는 권혜영 목원대학교 의생명보건학부 교수, 김윤희 인하대학교 의예과 교수,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교 교수, 배승진 이화여자대학교 약학과 교수, 배은영 경상국립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양봉민 서울대학교 보건학과 교수, 유수연 강원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이상일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이태진 서울대학교 보건학과 보건정책관리학 교수, 이혜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 조은 숙명여대 약학대학교 교수, 허순임 서울시립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홍지형 가천대학교 의료산업경영학과 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공개 의견서에서 "우리 연구자들은 그간 정부 정책안에 대한 의견표명 기회가 없었기에 11월 29일 발표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주요 문제의식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의견서에서 비전 및 목표 설정의 근본적 재검토 필요 선등재 후평가 방식의 구조적 한계와 위험성 고려 비용효과성 평가 임계값(ICER) 상향 조정의 과학적 근거 부족 약가 유연계약제(약가환급제) 확대의 타당성 검토 선행돼야 적응증별 약가제 도입은 성급 제네릭 산정률 인하 실효성에 대한 의문 등의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정부는 건정심에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보고하면서 '환자의 접근성 제고'와 '제약산업 혁신적 성과 창출 가속화'를 비전으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추진 배경에서 고령화에 따른 약품비 폭증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위기를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비전과 목표에서는 재정 지속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며 "이는 논리적 정합성이 결여된 것으로, 약가제도 개선의 본질적 목적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개선방안은 제네릭 약가 인하를 제시하면서도 혁신 제약사의 제품과 오리지널 제품에 대해서는 현행 수준 또는 그 이상의 가산(가산 적용 기간 확대 포함)을 부여하고 있어 실질적인 약가 관리와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방안으로서의 효과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했다.


희귀질환 치료제 등재기간 단축(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하고, 임상적 성과의 사후평가를 언급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선등재 후평가 방식은 이미 다수의 전문가와 급여평가 실무자들에 의해 평가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며 "등재 이전에는 등재 조건을 둘러싼 협상이 가능하지만, 일단 등재된 이후에는 협상을 통한 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급여 결정 과정에서 얻어진 경험적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약가 유연계약제(약가환급제) 확대의 타당성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약가환급제는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해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 간 별도 계약을 체결해 표시된 약가와 실제 거래 가격 간 차액을 제약사가 공단에 환급하는 제도다. 중증질환자의 접근성 보장을 위해 운영되고 있으며, 약가 결정의 투명성 저하 등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환자접근성 보장이란 측면에서 허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개선방안은 약가환급제 적용 대상을 거의 모든 신약, 오리지널, 바이오시밀러로 확대하고 있다"며 "수년간 판매되어 온 오리지널 제품은 이미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되고 있어 퇴장 우려가 거의 없으므로 이들 제품에 약가환급제를 적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환자 접근성 개선 효과는 미미하다. 비중증 질환에 사용되며 다수의 대체제가 존재하는 일반 신약과 바이오시밀러를 환급제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 정책적 근거 역시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약가환급제의 적용 확대는 약가 결정의 투명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위험분담제 협상을 무력화하며, 행정비용을 급증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했다.

전문가들은 제네릭 산정률 인하를 통해 기대하는 정책 효과 실효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정부는 이번에 보고한 개선방안에서 우리나라 제네릭 가격이 과도하게 높다는 진단을 기반으로 제네릭 및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 산정률을 현행 53.55%에서 40%대로 인하하겠다는 방안을 포함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제네릭 가격이 높게 평가되는 실질적 이유는 동일 성분 내에서 높은 가격대의 제네릭이 낮은 가격대의 제네릭보다 더 많이 처방되기 때문"이라며 "근본적 해법은 낮은 가격대의 제네릭이 선호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안은 높은 가격대의 선발 제네릭 및 오리지널 제품 가격은 유지하면서 후발 제네릭의 진입 가격만 낮추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건강보험 재정 측면에서 실질적 기여는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은 "정부가 제시한 개선방안이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 국내 제약산업의 균형 있는 발전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인지 근본적인 재검토가 요구된다"며 "정부는 충분한 과학적 근거와 투명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진정으로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환자단체에서도 정부의 약사제도 개선방안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대표 김성주)는 지난 4일 약가제도 개편 관련 논평을 내고 "보건복지부가 최근에 발표한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보면서 이 정책이 과연 환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제약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며 "정부는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개편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필요한 개혁은 보이지 않고, 제약사의 요구가 반영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혁신형 제약기업 등의 R&D 투자 수준에 따라 약가 가산율 차등 적용하겠다는 방안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했다.

중증질환연합회는 "개편안에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혁신형 제약기업의 제네릭을 특혜 가격으로 유지하겠다는 정책"이라며 "정부는 이들 기업의 제네릭 가격을 기존보다 훨씬 높은 55~68% 수준으로 인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제네릭은 효과와 성분이 동일한 복제약이며 품질 차이가 없는데, 동일한 품질의 약을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격을 두 배 가까이 차이 나게 유지한다는 발상은 환자 부담을 키우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약가환급제 족용 확대는 환자 접근성과 무관하다고 했다. 약가환급제가 실제로는 국내 가격을 높여 해외 수출 단가를 유지하려는 제약사의 이해와 밀접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중증질환연합회는 "환급형 계약은 본래 생명이 위급한 중증·희귀질환 환자에게 불가피하게 허용된 예외적 제도였다"며 "그러나 이번 개선안은 이를 특허 만료약, 바이오시밀러, 만성질환 치료제까지 넓히겠다고 한다. 가격을 숨기겠다는 이 제도의 확장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건강보험의 투명성을 크게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연합회는 "이번 약가제도 개편안은 전체적으로 '제약산업 중심의 프레임'이 강하게 드러난다. 신약 접근성을 높이겠다면서 산업의 수익 구조 개선부터 챙기는 방식은 환자에게 돌아갈 몫을 제약사에 우선 배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정부는 이번 개편안을 다시 원점에서 검토하고 환자 중심 약가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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