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디지털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한국 자본시장, '질적 성장' 중심 전환 어떻게?

디지털투데이
원문보기

한국 자본시장, '질적 성장' 중심 전환 어떻게?

서울맑음 / -0.6 °
[오상엽 기자]
4일 서울 광화문 예금보험공사에서 '혁신과 성장에 기반한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를 주제로 금융기관 합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정운찬 한국금융연구센터 이사장(오른쪽 다섯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사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오상엽 기자]

4일 서울 광화문 예금보험공사에서 '혁신과 성장에 기반한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를 주제로 금융기관 합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정운찬 한국금융연구센터 이사장(오른쪽 다섯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사진 촬영하고 있다. [사진: 오상엽 기자]


"좀비기업이 퇴출되지 않고 연명하는 시장에 투자자 신뢰가 쌓일 리 없다. 한국 자본시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 선진 플랫폼으로 도약하려면 과감한 퇴출 구조와 민간 주도 모험자본 생태계가 필수적이다"

4일 예금보험공사에서 열린 금융기관 합동 심포지엄 '혁신과 성장에 기반한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에서는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는 쓴소리가 쏟아졌다. 이날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가 양적 성장은 이뤘으나 질적 성장은 정체돼 있다고 진단하며 거래소의 플랫폼 경쟁력 강화와 벤처투자(VC) 시장의 민간 자금 유입 확대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 "한계기업 퇴출해야 지수 산다"…거래소 '플랫폼' 혁신 주문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거래소(KRX)가 단순한 매매 중개 기관을 넘어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 자본시장의 핵심 요건으로 '투자자 신뢰(Investor Confidence)'를 꼽으며 국내 시장이 과도한 비관론과 '단타' 위주의 투기적 행태에 갇혀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MSCI 선진국 지수 편입보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가 리스크와 기대수익을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확신을 갖고 진입할 수 있는 환경"이라며 "현재 코스닥 시장은 '폭탄 돌리기'식 투자 문화와 지배구조 불안으로 인해 장기 투자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시장 건전성을 해치는 주범으로 이른바 '좀비기업'을 지목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미만인 한계기업들이 시장에 잔류하며 코스닥 지수의 매력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해외 주요국처럼 유동주식 비율이 일정 수준(25%) 미만인 기업을 과감히 퇴출시키는 등 상장 유지 조건을 강화해 지수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약·바이오 업종에 대한 가치평가 개선 필요성도 제기됐다. 그는 "올해 K-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수출 규모가 역대 최대인 20조원에 달하지만, 회계 수치만으로는 이들의 잠재력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임상 실패 확률과 파이프라인 가치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정보 인프라를 구축해 '깜깜이 투자'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벤처투자, '관(官) 주도' 한계 봉착…M&A·CVC 규제 풀어야

김현열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동맥경화' 현상을 집중 조명했다. 한국의 벤처투자 규모는 세계 5위권으로 성장했지만, 건당 투자 규모는 평균 14억원 수준으로 미국의 대형 투자에 비해 영세하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가장 큰 문제로 '회수 시장의 불균형'과 '정책금융 의존도'를 꼽았다. 그는 "국내 벤처 회수는 IPO(기업공개) 비중이 33%에 달하는 반면, M&A(인수합병)는 3% 미만에 불과하다"며 "미국이 M&A를 통해 활발한 회수와 재투자의 선순환을 이루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설명했다.

자금 조달 측면에서도 민간 자본의 참여 부족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내 벤처펀드 출자자 중 연기금과 공제회의 비중은 3% 미만에 그친다. 미국과 유럽에서 연기금·보험사가 벤처투자의 '큰손' 역할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김 연구위원은 해법으로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 규제 완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 활성화를 제시했다. 그는 "대기업의 CVC 투자는 전략적 M&A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며 "부채비율 제한이나 외부 자금 조달 규제를 합리화해 대기업 자금이 벤처 생태계로 흘러들도록 물꼬를 터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도입 예정인 BDC에 대해서도 "미국처럼 세제 혜택과 성과보수 시스템을 도입해 민간 모험자본의 유입을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4일 서울 광화문 예금보험공사에서 '혁신과 성장에 기반한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를 주제로 금융기관 합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자본시장과장(왼쪽에서 세번째)를 비롯한 패널들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오상엽 기자]

4일 서울 광화문 예금보험공사에서 '혁신과 성장에 기반한 한국 자본시장의 미래'를 주제로 금융기관 합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 자본시장과장(왼쪽에서 세번째)를 비롯한 패널들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오상엽 기자] 


◆ 금융당국, "민간 자금 공백, 정책금융이 메울 것…일반주주 보호 강화"

고영호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과장은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지원 방안과 시장 신뢰 회복 의지를 밝혔다. 고 과장은 "기업 성장 단계에서 발생하는 자금 공백, 특히 '그로스 갭(Growth Gap)' 구간을 정책금융이 메워야 한다"며 "150조원 규모의 혁신성장펀드를 통해 혁신 기술 분야에 집중 투자해 유니콘 기업 육성을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정보 비대칭 해소를 위한 인프라 확충 계획도 제시했다. 고 과장은 "코스닥 시장은 기업 분석 보고서가 턱없이 부족해 '깜깜이 투자'가 이뤄지는 측면이 있다"며 "대형 IB(투자은행)를 중심으로 코스닥 기업에 대한 애널리스트 보고서 발간을 활성화해 투자자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일반 주주 보호'에 대해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와 불공정 거래 엄단을 위한 합동대응단 가동 등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내년 도입되는 BDC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고 과장은 "그간 정부 지원으로 성장한 벤처기업의 성과가 소수 투자자에게만 집중된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BDC를 통해 일반 국민들도 벤처 투자에 소액으로 참여하고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 "양적 팽창 넘어 질적 도약으로"…동반성장·경제민주화 화두

이날 심포지엄에 참석한 원로 및 기관장들은 자본시장이 단순한 자금 조달 창구를 넘어 실물 경제의 혁신을 견인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운찬 한국금융연구센터 이사장(전 국무총리)은 "자본시장은 대기업 중심의 자금 편중을 해소하고 혁신 중소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동반성장'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며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경제민주화가 그 토대"라고 강조했다.

이항용 한국금융연구원장 역시 "인구 구조 변화와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며 "기업의 생애주기 전반을 뒷받침하는 자금 조달 체계와 디지털 전환에 대응하는 인프라 혁신이 시급하다"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Copyright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