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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자 불법 접속 책임없다"···쿠팡, '면책 조항' 약관 수정

서울경제 이용성 기자,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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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자 불법 접속 책임없다"···쿠팡, '면책 조항' 약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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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 불법접속 손해 책임 안져'
지난해 11월 이용 약관에 삽입



쿠팡이 고객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되기 전 ‘해킹, 불법 접속 등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회사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을 이용 약관에 추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5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쿠팡은 지난해 11월 회사의 이용 약관 제38조(회사의 면책)에 이 같은 내용의 조항을 삽입했다. ‘회사는 서버에 대한 제3자의 모든 불법적인 접속 또는 서버의 불법적인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손해(중략)에 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구다. 지난해 3월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조항이다.

쿠팡이 이 같은 면책 조항을 이용 약관에 넣은 것은 향후 제3자에 의한 불법 서버 접속 등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대규모 집단소송 등에 휘말릴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면책 조항이 포함된 약관에 이용자들이 이미 동의한 만큼,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에서 이를 근거로 회사에 유리한 해석을 시도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팡을 상대로 이용자들의 집단소송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법무법인 청은 이달 1일 이용자 14명과 함께 1인당 2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내용의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했다. 이후 소송 의사를 밝힌 이용자는 1500여 명인 것으로 전해진다.

법무법인 지향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집해 2500명의 위임계약을 완료했다. 번화 법률사무소도 전날 기준 위임 계약서에 사인한 이용자가 3000여 명이라고 밝혔다. 로피드 법률사무소를 통해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힌 이용자까지 포함하면 최소 7000~8000명 규모의 집단 법적 대응이 진행 중이다. 민관합동조사단이 현재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향후 조사 결과 쿠팡의 귀책사유가 명확해지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용의자가 지난해 12월 퇴사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쿠팡이 이를 전후해 위험을 사전에 감지하고 약관을 손질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통상적으로 사업자가 정밀하고 고도화된 해킹 수법에 대해서는 면책 조항을 넣는 경우가 있지만 쿠팡처럼 면책 범위를 과도하게 넓힌 것은 이례적”이라며 “회사가 정보 유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를 약관으로 회피하려 한 것으로 합리적인 의심을 해볼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e커머스 업계에서는 ‘제3자의 모든 불법 접속’ 등을 포괄한 면책 조항은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G마켓·SSG닷컴·11번가 등 주요 e커머스 사업자들 가운데 이용 약관에 쿠팡과 같은 포괄적인 면책 조항을 둔 곳은 없다. e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국내 e커머스 플랫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약관 조항”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면책 조항은 쿠팡에 유리하게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제7조(면책 조항의 금지)에 따르면 ‘상당한 이유 없이 사업자의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거나 사업자가 부담하여야 할 위험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조항’은 무효로 한다.


장윤미 변호사는 “보통 사람들이 약관을 잘 읽어보지 않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은 일반 사인 간 계약에서도 효력을 배척한다는 판례도 있다”며 “이번 쿠팡의 면책 조항 건 역시 법률적으로 쿠팡이 빠져나갈 근거로 작용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면책 조항을 추가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대응 과정에서 책임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앞서 쿠팡은 사과문에서도 ‘유출’ 대신 ‘노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논란을 자초했다. 쿠팡 애플리케이션에 띄운 사과문 배너도 이틀 만에 내려가 광고로 대체되면서 여야 의원들의 거센 질타를 받았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쿠팡에 대한 국민 정서도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쿠팡이 지금부터라도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갖춰야 국내에서 유통사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에 대해 쿠팡 관계자는 “해당 조항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면책 문구로서 약관 일원화 작업 과정에서 타 약관에 있던 내용을 추가한 것”이라며 “제3자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라고 해도 회사에 고의 과실이 있을 경우 회사가 책임을 진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용성 기자 utility@sedaily.com김지영 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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