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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하고 미웠던 해외입양 진실규명 결과…피해자들 위로에 울컥” [안녕 진화위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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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하고 미웠던 해외입양 진실규명 결과…피해자들 위로에 울컥” [안녕 진화위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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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서울 중구의 거리에서 포즈를 취한 박건태 팀장. 맨 뒤로는 2기 진실화해위가 입주했던 남산스퀘어빌딩이 보인다. 고경태 기자

28일 오후 서울 중구의 거리에서 포즈를 취한 박건태 팀장. 맨 뒤로는 2기 진실화해위가 입주했던 남산스퀘어빌딩이 보인다. 고경태 기자




‘안녕’은 작별이자 환영의 인사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국가폭력 사건을 조사해온 독립기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또는 진화위)가 분기점을 맞는다. 5년간 활동해온 제2기는 11월26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국회는 제3기 탄생을 위한 법안 통과를 준비 중이다. 3기 설립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한겨레는 2기를 돌아보고 3기를 바라보며 ‘안녕 진화위’를 시작한다.



‘진화위’는 그동안 부정적 뉴스로 자주 등장했다. 내란 옹호 논란이나 설립취지에 반하는 발언으로 시끄러웠던 몇몇 위원장과 국회에 나와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기행을 벌인 국정원 출신 간부 탓이었다. 부정기 연재될 ‘안녕 진화위’는 그동안 조명되지 못한 얼굴과 목소리를 찾아 나선다. 과거사 조사와 규명에 진심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와 함께 3기로 가는 여정의 의지와 기대를 담아본다.



굿바이 진화위! 헬로 진화위!!





“의결 직후 나는 이 사건이 조사관의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난 실패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실화해위 지부가 2기 활동 5년을 정리하며 펴낸 백서 ‘진실화해위원회 5년의 기록, 다시 나아갈 길’을 읽다가 눈이 멎었다. 글을 쓴 조사관은 자신이 팀장을 맡아 조사한 ‘해외입양과정 인권침해 사건’의 의결 결과를 혹평했다. 2기 진실화해위가 주요 성과로 내세우며 언론의 대대적 관심을 모았던 사건을, 담당 팀장은 왜 이렇게 보는 것일까.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글의 주인공인 박건태(45) 조사2국 조사7과 해외입양사건팀장을 만났다.



박 팀장은 2기 진실화해위 조사관 중 유일한 공과대학 출신이다. 대학을 두 번이나 다녔는데, 첫 대학에선 화학공학을, 두 번째 대학에선 환경공학을 전공했다. 이력도 다채롭다. 경기 김포의 헬리콥터 운용업체에서 영업 보조 일을 했고, 고향 부산에 내려가 조선기자재업 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결혼 뒤 서울에 와 구의원 선거에 나선 친구의 사무장을 하다가 덜컥 당선시켰고, 식당에서 주방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화학 전공자가 필요하다는 지인 소개로 2019년 들어간 곳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였다. 여기서 가습기 살균제의 정부책임을 규명한 보고서를 썼다. 2021년 7월에 당도한 진실화해위(별정직 6급)는 사참위 경력의 연장선이었다.



박건태 팀장은 2기 진실화해위에서 해외입양 사건을 총괄하기 전에는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 사건 조사에 참여했다. 해외입양 사건은 선감학원과 형제복지원 등 집단수용시설 사건과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 박 팀장은 ‘위법한 공권력 행사’ 등 법원의 배·보상 판단 기준에 맞춘 해외입양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 과정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의결에 참여하는 위원 중 일부가 보고서를 다 읽어오지도 않은 것 같다”는 아쉬움도 토로했다. 그나마 위안을 준 이들은 진실규명이 무산됐음에도 “큰일을 해줘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피해자들이었다고 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2022년 7월 북유럽 쪽 피해자들을 조직해서 300건 넘는 해외입양 인권침해 사건을 진실화해위에 접수한 덴마크한국인진실규명그룹(DKRG)의 피터 뭴러 공동대표. 지난 3월26일 진실화해위의 해외입양 사건 진실규명 기자회견에서 본인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피터 뭴러씨는 2기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대상자 56명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2022년 7월 북유럽 쪽 피해자들을 조직해서 300건 넘는 해외입양 인권침해 사건을 진실화해위에 접수한 덴마크한국인진실규명그룹(DKRG)의 피터 뭴러 공동대표. 지난 3월26일 진실화해위의 해외입양 사건 진실규명 기자회견에서 본인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피터 뭴러씨는 2기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대상자 56명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해외입양 사건 제일 먼저 신청한 사람은 누구였죠?



“덴마크한국인진실규명그룹(DKRG)의 피터 뭴러씨였어요. 2022년 6월께였는데 이 분이 북유럽 쪽 피해자들을 조직해서 300건 넘는 사건을 접수했어요. 덩치는 큰데 꽤 까다로워 보이는 사건이 뒤늦게 들어온 거죠.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해외입양 인권침해에 관해 신청서에 작성한 분이 계셨어요. 형제복지원 사건 신청인 중에 해외입양된 분이 계셨거든요. 그분이 형제복지원 조사팀원이었던 박혜진 조사관의 관심을 끌게 됐어요. 5살쯤에 해외입양을 가 신청서에도 해외입양에 대한 서술이 더 많았죠. 집단수용시설이 해외입양의 주요 경로였던 겁니다. 형제복지원 조사팀원들이 해외입양 사건을 맡겠다고 자원하면서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해외입양 사건은 본질에서 형제복지원이나 선감학원과 다르지 않네요.



“어떤 아이는 고아원(보육원)으로 가고, 어떤 아이는 선감학원으로 가고, 또 나이가 좀 많으면 형제복지원으로 가고, 그리고 해외입양으로 간 거죠. 이전에는 가족이나 지역 공동체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보살폈는데 공동체가 붕괴하거나 변화를 겪으면서 국가가 직접 다루어야 하는 문제가 되었고, 비용도 가시화됐어요. 국가는 이들을 소위 ‘사회정화’ 차원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렸고, 치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최소한으로 아끼고 싶었어요. 부랑인과 부랑아 시설에서는 직업교육 명목으로 노동력을 착취했고, 해외입양은 경제적 대가가 따르는 해외의 수요가 있었어요.



입양인들은 본인의 정체성을 알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말합니다. 친생부모가 누구인지, 자신이 태어난 정확한 날과 장소를 모르는 거죠. 더 심각한 문제는 기록상 여러 가지 다른 신원이 존재하는 경우예요. 호적에는 그냥 고아라고만 돼 있어서 20여년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친생부모의 존재가 확인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일을 겪으면 입양 관련 기록과 그것을 관리하는 기관을 신뢰하기 어려워져요. 끝없이 의심하고 고민하게 되는 지옥에 빠집니다.”





―해외입양 사건 피해자들은 외국 국적입니다. 기존 신청인들과 다를 것 같은데요.



“먼저 태도가 다릅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이른바 ‘피해자다움’이 없어요. 바라는 것도 너무 달라요. 아동수용시설 피해자들 같은 경우는 ‘부모를 잃은 불쌍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있잖아요. 이분들은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법도 공부 많이 하고, 엄청 전투적입니다. 2023년 6월 덴마크에 일주일 출장을 가서 피해자분들 모아놓고 설명회를 했을 때 그걸 처음 느꼈어요.”





―1990년대에도 해외입양됐던 이들이 부모를 찾는다는 언론보도가 많기는 했어요. 그땐 인권침해로 보는 시각이 거의 없었죠.



“사람들이 고아원이나 집단수용시설에 가는 거는 불쌍한 일이라고 보면서도 해외입양을 가면 잘된 일이라고 축하해줬어요. 한국에 있으면 밥도 잘 못 먹고 학교도 못 가는데, 외국의 잘사는 집으로 간다고요. 반드시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그렇다 해도 제대로 행정 처리를 해야 하는데, 많은 것들을 덮어버리고 입양을 보낸 거죠. 아이 하나하나 상황과 조건 따져보고, 진짜 버려진 아이인지 확인하고 부모 기록도 확보했어야죠. 그렇게 하지 않고 무작정 해외입양 보냈던 일의 폐해가 뒤늦게 나타나는 겁니다. 시대가 달라졌고요. 지금 입양인들은 국가가 그때 책임을 다했는지 묻고 있습니다.”



지난 3월2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해외입양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발표 기자회견’에서 본인 사례를 발표하다가 무릎 꿇고 울먹이며 진실규명을 요청하는 김유리(오른쪽)의 손을 박선영 위원장이 잡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3월2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린 ‘해외입양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발표 기자회견’에서 본인 사례를 발표하다가 무릎 꿇고 울먹이며 진실규명을 요청하는 김유리(오른쪽)의 손을 박선영 위원장이 잡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3월26일 진실화해위에서 해외입양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기자회견을 했어요. 그때 촬영된 사진 한장이 인상적이에요. 한겨레가 찍은 사진인데 2기 진실화해위 종합보고서에도 크게 실렸어요.



“프랑스로 입양 갔던 김유리씨였어요. 그분이 현장에서 본인 사례 발표하다 갑자기 무릎 꿇고 진실규명 호소하면서 박선영 위원장이 달래는 장면이 극적으로 표현됐어요. 이때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마구 터지는 걸 보면서 해외입양에 관해 많은 것들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진이 나오겠구나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이 분은 진실규명이 된 56명에 포함이 됐어요. 300명 넘는 피해자들을 조직해 사건을 신청했던 덴마크한국인진상규명그룹(DKRG)의 공동대표 피터 뭴러씨나 한분영씨도 이날 사례 발표를 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진실규명이 되지 않았죠. 언론은 이날 해외입양 사건을 크게 보도했어요. 사실 저는 그날 매우 화가 나 있었어요. 슬프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밉기도 했고요. 그 전날 열린 전체위원회에서 98건 중 56건만 진실 규명되고 나머지 42건이 보류됐거든요.”





―결국 해외입양 사건 367건 중 56건만 제외하고 모두 ‘조사 중지’ 처리됐어요. 처음 전체위원회 의결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요.



“보고서의 형태로 작성된 안건은 소위원회 먼저 거치고 전체위원회에서 최종 의결돼요. 소위는 더불어민주당 추천 위원 2명, 국민의힘 추천 위원 2명이고 전체위는 각각 민주당 4명, 국힘 5명으로 구성이 돼 있었죠. 보고서를 작성한 뒤 의결시킬 자신이 없었어요. 여러모로 어려운 사건이었거든요. 진실화해위 기본법(과거사법) 제2조1항4호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를 진실규명의 근거로 삼았는데, 이렇게만 하면 개별 사건 위법성이 다 증명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거든요. 그래서 플랜비(B)로 같은 법 제2조1항6호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근거를 바꿀 계획도 있었어요. ‘한국전쟁 중 소년병 참전 사건’이 이런 케이스거든요. 그런데 소위에서 국힘 추천 위원 한 분이 조사관의 보고서 작성 의도를 정확히 짚으며 98건 모두 진실규명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나중에 법원에서 판단할 부분이 있다면 법원에 맡기면 되고, 위원회는 이 사건의 인권침해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였어요. 위원회 역할이 소송 근거를 마련하는데 그친다는 한계가 이 사건에서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2023년 6월 해외입양 인권침해 사건 조사를 위해 주요 입양 당사국인 덴마크를 방문해 덴마크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의 모습. 가운데가 카스파르 브로 라르센 덴마크 국제입양 담당 차관, 그 오른쪽으로 이상훈 상임위원, 유정호 조사7과장, 박건태 팀장. 박건태 제공

지난 2023년 6월 해외입양 인권침해 사건 조사를 위해 주요 입양 당사국인 덴마크를 방문해 덴마크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의 모습. 가운데가 카스파르 브로 라르센 덴마크 국제입양 담당 차관, 그 오른쪽으로 이상훈 상임위원, 유정호 조사7과장, 박건태 팀장. 박건태 제공


―그게 전체위에서 뒤집힌 거군요.



“하지만 전체위원회에서는 또 다른 국힘 추천 위원이 56명만 진실 규명해야 한다면서 위원회의 결정은 법원에서 인정돼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위원회가 신뢰를 잃게 된다고 주장했어요. 앞서 다른 국힘 추천 위원님이 언급한 내용과 정반대였죠. 위원회 역할을 심각하게 축소하는 말씀이어서 충격이었어요. 소위에서 모두 진실 규명해야 한다고 했던 분이 전체위원회에서 이 의견에 동의해 더더욱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진실화해위가 법원에 배·보상받기 위해 서류 발급해주는 기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위원회는 위원회대로 일하고, 법원은 법원의 일을 하는 거죠. 한데 법원 기준에 맞춰야 한다면서 처음에 상정한 98건 중 56건만 따로 분류해 선을 그었어요.”





―어떤 기준으로 선을 그은 거였죠?



“구체적으로 친생부모가 존재하는 게 확인되는데도 고아 호적이 만들어진 경우만 진실규명을 해준 겁니다. 그렇지 않은 신청인들도 친생부모 기록이 없을 뿐이죠. 저희가 보기에는 친생부모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실제 신원에 대한 정보가 지워지고, 입양알선기관 앞에서 발견됐다고 허위로 신고되어 고아 호적이 만들어진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당시 법(입양특례법)을 검토해 보면, 친생부모가 있음에도 입양을 시키려면 부모가 신분증 제출하고 아이와의 관계에 대한 증빙자료 제출하고 입양 동의서를 써야 했어요. 그게 복잡하고 불편하니까, 친생부모가 있어도 ‘기아’(버려진 아이)라고 신고한 겁니다. 입양알선 기관에서 그렇게 신고하면 동사무소에서는 기아로 발견됐다면서 고아 호적을 만들어준 거거든요. 그나마 입양 알선기관이 친생부모가 남긴 호적이나 주민번호 기록을 완전히 지우지 않아서 입양인들이 부모를 찾고 있는 거고요.”



2023년 5월15일 한겨레 지면에 실린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 한겨레 지면 갈무리

2023년 5월15일 한겨레 지면에 실린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 한겨레 지면 갈무리




2023년 5월15일 한겨레 지면에 실린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 한겨레 지면 갈무리

2023년 5월15일 한겨레 지면에 실린 해외입양인들의 이야기. 한겨레 지면 갈무리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진실규명에 인색했을까요?



“56건만 진실 규명하자고 제안하신 국힘 추천 위원님은 보고서 맨 뒤에 있는 개별 신청에 대한 내용만 읽고 진실규명 대상자를 분류해서 그렇게 주장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의 본문을 읽고 판단했다면 기준이 달라졌을 거예요. 앞 본문은 국가가 어떤 책임이 있는지, 또 신원 바꿔치기 등 어떤 유형의 인권침해가 있는지를 서술했거든요. 보고서 앞부분에서 인권침해의 사례로 다뤄졌는데도 진실규명 결정을 받지 못한 사건이 많아요..”





―소위에서 진실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가 전체위에서 뒤집은 분은 ㅈ위원이었고, 56명만 진실규명 해야 한다고 한 분은 ㄱ위원이었죠. 종합보고서에도 “(해외입양 사건과 관련해) 위원회 의결과정에서 한계가 드러났다”는 대목이 있어요.



“저희가 처음에 종합보고서에 ‘위원들이 보고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 보고서를 읽지 못했다고 발언을 하는 위원이 있을 정도였다’고 썼거든요. 이 초안 내용을 문제의 ㄱ위원님이 감수를 하게 됐는데, ‘사정이 있지 않겠냐’는 취지로 코멘트를 넣었더군요. ‘쏟아지는 보고서 분량 고려할 때 보고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 사실일지라도, 위원들의 태만이 있었던 것으로 단정적 서술한 것은 과격하다’고요. 위원님들은 전체위원회에 오기 전 반드시 보고서를 읽어보고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2024년 5월13일 덴마크·노르웨이·프랑스·미국 출신의 해외입양인 및 양부모들이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면담에 들어가기 직전 진실화해위가 입주한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고경태 기자

2024년 5월13일 덴마크·노르웨이·프랑스·미국 출신의 해외입양인 및 양부모들이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면담에 들어가기 직전 진실화해위가 입주한 서울 중구 퇴계로 남산스퀘어빌딩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고경태 기자


―해외입양 사건 진실규명은 정말 실패한 건가요?



“367건 조사 개시해서 56건 진실규명 결정 나고 311건 ‘조사 중지’됐으면 참패 아닌가요? 저희 팀원들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다만 신청인들이 너무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어요. 본인 진실규명이 안 됐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정부가 해외입양 문제를 밝혀준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제 평가도 조금 바뀌긴 했죠. 이 사건에 대한 위원들의 판단이나 태도는 한국사회 일반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일 뿐이라고요. 조사관들의 몫은 앞으로 이 사건을 어떻게 잘 드러낼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보고서를 쓸지 전략을 연구하는 거겠죠.”



―박선영 위원장은 해외입양 피해자가 20만명이라면서 종합보고서에 이 부분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불만을 드러내 왔어요.



“해외입양 수가 20만명으로 추정된다는 이야기를 많은 분이 하신 거로 알고 있기는 해요. 근데 그건 추정이잖아요. 조사과정에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해외입양 규모를 확인했어요. 첫째, 입양알선기관이 직접 제출한 연도별 국가별 해외입양 실적인데, 이건 숫자로 받은 거고요. 둘째,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의 해외이주 허가 대장이 있어요. 이건 명단이에요. 출처가 다른 두 자료로 확인한 해외입양의 규모는 1955년부터 1999년까지 14만명이었어요. 보건복지부 공식 통계와도 일치하고요. 그런데 위원장님은 ‘1980년대에 이미 20만명이었다고 들었으니 사실을 확인해 보라’고 하셨어요. 몇 번을 언급하실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셨으면서 본인이 의결한 보고서의 해당 내용은 확인해 보시지 않은 듯합니다. 종합보고서 쓰는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20만명’에 대한 코멘트를 해줘서 서면으로 반박했고요. 결국 위원장님 의견은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28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는 박건태 팀장. 고경태 기자

28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나 인터뷰하는 박건태 팀장. 고경태 기자


―3기가 출범하면 해외입양 사건을 어떻게 조사해야 할까요.



“3기에 추가로 신청할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 전에 2기에서 ‘조사 중지’ 처리된 311명을 진실 규명해야 할 거고요. 2기는 국가 책임을 규명하는 데 너무 많은 역량을 투여했어요. 국가기록원에 있는 보건복지부와 국무회의 자료 등을 보며 정책과 법이 어떻게 수립됐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입양이 이뤄졌는지에 중점을 뒀죠. 3기에서는 그 부분보다 다양한 종류의 인권침해가 어떤 방식으로 발생했는지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친생부모의 진술을 듣고 아이를 맡긴 과정을 조사한다거나 주민센터와 경찰의 행정기록을 뒤져본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3기에서는 또 어떤 사건들을 조사해야 할까요.



“저희 조사관들끼리도 많이 하는 이야긴데요. 2기에선 아동시설과 성인 부랑인시설을 주로 다뤘어요. 3기에서는 2기에서 못 다룬 시설 내 젠더 문제와 장애인 시설 문제를 꼭 조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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