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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찢고 가격 2배”···AI 블랙홀이 삼킨 메모리 시장 [갭 월드]

서울경제 서종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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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찢고 가격 2배”···AI 블랙홀이 삼킨 메모리 시장 [갭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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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갑 기자’의 갭 월드(Gap World) <14>
마이크론 B2C용 메모리 판매 중단
일부 낸드사 계약 깨고 재협상 요구
범용 D램 가격 7년 만에 8달러 돌파


메모리 반도체 업계가 인공지능(AI) 칩 블랙홀에 빠져들었다. 빅테크 기업들의 공격적인 데이터센터 증설 경쟁이 메모리 반도체 물량을 집어삼키며 7년 만에 D램 가격이 최고치를 경신하고 공급 계약마저 파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가격 상승세가 멈추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5일 반도체 업계와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 등에 따르면 메모리 시장은 극심한 수급 불균형에 시달리며 공급사 우위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메모리 업계 3위인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4일 소비자용(B2C) 사업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힌 게 단적인 예다 . 마이크론은 자사 소비자용 브랜드 크루셜 제품 판매를 내년 2월까지만 유지하고 이후에는 기업용(B2B) 시장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돈이 되는 기업용 서버 시장에 올인하기 위해 소비자용 라인을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다.

‘신뢰가 생명’인데…공급 계약 약속 마저 휴지 조각




업계에서는 신뢰가 생명인 공급 계약마저 휴지 조각이 되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일부 판매자들이 더 높은 마진을 챙기기 위해 기존에 확정된 거래를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배짱 영업’이 성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만 메모리 모듈 업체 트랜센드는 최근 공급사들로부터 납품 지연 통보를 받고 일주일 새 부품 구매 비용이 50%에서 100%로 급등했다고 토로했다.



D램 7년 만에 최고가 뚫어, 전 제품군 가격 동반 상승



공급 부족 사태가 갈수록 심화하자 메모리 가격은 매달 새 기록을 쓰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1월 PC용 D램 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전달보다 15.7% 오른 8.1달러로 집계됐다. DDR4 8Gb 가격이 8달러를 넘어선 건 이전 메모리 슈퍼사이클 당시인 2018년 9월 이후 7년 2개월 만이다. AI 가속기가 D램 수요를 모두 흡수하며 메모리 업체들은 구형 제품인 DDR4 생산을 줄이는 영향이다. 트렌드포스는 “D램 업체들과 PC 제조사(OEM)들이 11월 중 4분기 고정거래가 협상을 대부분 마무리했고 거래가는 전 분기 대비 38∼43%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낸드 메모리 시장 역시 불이 붙었다. 메모리 카드와 USB용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의 11월 평균 고정 거래 가격은 전 월 보다 19.3% 급등하며 5.19달러를 기록했다. 11개월 연속 상승세로 올 9월부터는 10%대 상승률을 보이며 가격이 급등 중이다.




낸드 재고 4분기 7~10주 급감, 내년 상반기까지 공급난





메모리 업체들의 재고도 빠르게 줄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낸드 업체의 재고는 3분기만 해도 10주에서 15주 물량이 쌓여있었지만 4분기 들어 7주에서 10주까지 급감했다. D램의 경우 2주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재고가 줄어들 수록 협상 주도권은 공급 업체가 쥐게 된다.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 등 주요 메모리 업체가 AI 가속기용 HBM과 서버용 D램 생산에 D램 생산 라인을 총동원하고 있어 PC나 스마트폰용 범용 메모리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범용 메모리 공급난은 2026년 1분기 이후 PC와 스마트폰 시장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칩플레이션 현실화 내년 스마트폰·PC 가격 줄인상 예고





반도체 가격 급등은 결국 완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칩플레이션(Chipflation·반도체+인플레이션) 공포를 키우고 있다. 스마트폰과 PC 제조 원가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통상 15~20% 정도다. 핵심 부품 값이 뛰면서 완제품 업체들의 원가 압박도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분석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마저 내년 1월부터 첨단 공정 웨이퍼 가격을 최대 10% 인상할 것으로 알려졌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생성형 AI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의 확산과 부품 원가 상승으로 내년 글로벌 스마트폰 평균판매단가(ASP)가 올해보다 5% 이상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PC 제조사들은 내년 신제품 출고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값 상승분을 더 이상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감내하기 힘든 구조”라며 “내년 초 출시될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AI 노트북 가격이 전작 대비 최소 10만 원 이상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갭 월드(Gap World)’는 서종‘갑 기자’의 시선으로 기술 패권 경쟁 시대, 쏟아지는 뉴스의 틈(Gap)을 파고드는 코너입니다. 최첨단 기술·반도체 이슈의 핵심과 전망, ‘갭 월드’에서 확인하세요.






서종갑 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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