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스노보더 이제혁, 왼발의 감각은 잃어도 삶의 방향은 잃지 않다

한겨레
원문보기

스노보더 이제혁, 왼발의 감각은 잃어도 삶의 방향은 잃지 않다

서울맑음 / 0.5 °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제혁.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제혁.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몸 쓰는 운동”이 좋았다. 첫 선택은 야구였다. 달리기를 좋아했고, 발도 빨랐다. 하지만, 중학교 1학년 때 관뒀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이후 아버지 지인의 권유로 스노보드를 탔다. 하얀 슬로프 위에서 처음 속도를 느꼈다. 시원함과 청량감이 있었다. 스키장 특유의 냄새도 코끝을 간지럽혔다. 두 발에 힘을 주는 게 처음에는 버거웠으나 곧잘 탔다.



보드 위의 질주는 오래가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큰 점프대에서 착지를 잘못해 발목을 다쳤고, 2차 감염으로 왼쪽 발목의 기능을 잃었다. 지난 가을 이천 대한장애인체육회 선수촌에서 만난 이제혁(28·CJ대한통운)은 “처음에는 단순골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치료 과정에서 인대와 근육이 상했다”고 했다. 희망을 갖고 보드를 타보려 했지만 발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경쟁이 안 되겠다” 싶어서 보드에서 내려왔다.



2015년 장애인 스노보드 얘기를 처음 들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보드 자체도 쳐다보기가 싫었다. 2018 평창겨울패럴림픽은 그의 가슴을 다시 요동치게 했다. “관중석에서 오랜 만에 보드 타는 것을 보니까 ‘재밌겠다’, ‘다시 타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부상 3년 만에 다시 보드 위로 올라갔다. 스케이트보드에서 멈췄던 시간이 스노보드 위에서 다시금 흘러갔다.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제혁이 경기하는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제혁이 경기하는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이제혁은 2019년 2월 세계파라스노보드 캐나다 빅화이트 월드컵 대회에 처음 출전해 7위를 기록했다. 첫 월드컵 출전이었는데, 3년의 휴지기가 있었어도 몸이 보드를 기억하고 있었다. 2021년 11월 네덜란드 랜드그라프 유로파컵에서는 뱅크드슬라롬 금메달을, 같은 해 12월 핀란드 퓌야에서 개최된 유로파컵에서는 스노보드 크로스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 장애인스노보드 선수가 국제 대회 우승을 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주위의 기대감을 품고 출전한 2022 베이징겨울패럴림픽. 예선 전날 공식 기록을 쟀는데 전체 5등이어서 “잘하면 (메달을) 딸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경기 당일 날씨가 엄청 더웠다. 보드는 왁스 세팅이 중요한데, 온도에 꽤 민감한 편이다. 게다가 하필 들고 간 보드가 1개뿐이었다. 예선에서 실수하면서 10위에 그쳤고, 결국 준준결승에서 탈락했다. 이제혁은 “이전까지 예선에서 8등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어서 불안하고, 당황했다”면서 “침착했으면 되는데 예선 기록에 너무 신경 썼다”고 했다. 이전까지 함께 경기해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미국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너무 부러웠다”고 한다.



그래도 패럴림픽 무대를 직접 경험해 본 것은 큰 자산이 됐다. 대회가 끝나고 인스타그램 디엠(DM) 등을 통해 응원의 메시지도 많이 받았다. 이제혁은 “그때 받은 응원 잊지 않고 있다. 많이 감사하다”고 했다.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제혁이 경기하는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제혁이 경기하는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이제혁은 이후 장애인, 비장애인 대회에 나서면서 경험을 쌓았다. 비시즌 때는 지상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훈련을 했다. 체중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무게도 늘렸다. 베이징 때는 몸무게가 70㎏ 남짓했는데 지금은 82~83㎏이다. “베이징 때보다 10㎏ 이상 찌워서 속도가 더 나고 있다”고 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겨울패럴림픽을 준비하면서는 안팎으로 아주 힘들었다. 한국에는 장애인 스노보드 지도자 자격증을 가진 이가 거의 없다. 마음이 심란할 때 코치 제의도 있었다. 이제혁은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선수로서 정신을 붙잡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스트레스는 골프나 크로스핏 같은 운동으로 풀어냈다.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제혁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제혁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이제혁은 스노보드를 “지지대”라고 했다. 야구를 그만두고 방황할 수 있던 때 그를 붙잡아줬고, 비장애인 스노보드를 타다가 그만뒀을 때도 그가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줬다. 이제혁의 루틴은 왼발부터 양말을 신고, 왼발부터 보드를 신는 것. 감각이 무뎌진 왼발을 아끼는 그만의 방식이다. 이제혁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보드를 탔으면 좋겠다. 눈이 안 무서워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쇄골이 부서져도 보드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 타면 탈수록 더 배울 게 남아 있는 게 스노보드 같기도 하다. 이제혁은 “보드 같이 타는 사람들이 좋아서 더 좋은 것도 같다”고 했다.



이제혁은 현재 유럽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다. “베이징 때는 처음부터 에너지를 다 썼다”는 그는 “이번 시즌에는 모든 월드컵에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컨디션 조절을 해가면서 내년 3월에 지친 상태가 아니라 좋은 컨디션으로 슬로프에 서겠다”고 했다. “다시 이 순간이 돌아온다고 해도 더 잘할 수 없겠다 싶을 만큼 최선을 다하자”가 좌우명이라는 이제혁. 왼발의 감각은 잃었지만, 그는 삶의 방향을 잃지 않았다. 다시 슬로프에 서는 한, 이제혁의 질주는 계속된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끝나지 않은 심판] 내란오적, 최악의 빌런 뽑기 ▶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