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 민간LNG산업협회 부회장
최근 언론 헤드라인에 등장하는 정책목표들도 ‘재생에너지 100GW 확보’, ‘방위산업 5대 강국’, ‘K콘텐츠 300억 달러 수출’ 등 다분히 계획경제에 어울릴 법한 수치 정책목표 중심으로 제시되는 것에 익숙하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의 국민경제 규모가 작아 정부의 정책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수치 목표를 내세웠지만, 세계적 경제·산업 강국이 된 지금도 이러한 표현이 여전히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은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산업 정책을 마련할 때도 국내시장과 글로벌 시장을 구분해 접근하는 것이 익숙하였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국내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과 비즈니스 거점을 확보한 뒤 해외로 확장하는 단계적 산업정책 전략이 자연스러웠다.
이제는 글로벌 경제대국·산업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시장경제에 부응하는 정책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우리나라 정부 정책마인드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시장경제와 기술혁신의 모범 클러스터인 미국 실리콘밸리를 보면, 정부 차원에서 인공지능(AI)·바이오 등 혁신 산업에 대해 우리 같은 정책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글로벌 최고 수준의 인재와 기업들이 미국 내뿐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기술혁신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중소·중견 기업들도 국내 내수시장과 글로벌 수출시장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비즈니스 모델을 마련하여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다. 특히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은 오히려 한국 시장만큼 친근하고 접근이 편한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기에 우리 기업은 국내외 구분 없이 시장을 찾고 고객을 지향하는 마인드로 바뀐 것이 작금 마케팅 전략의 현실이다. 이제 정부도 이러한 기업환경 변화에 맞춰 정책 대응을 해야 한다. 과거처럼 ‘수출기업 몇 개 달성’과 같은 수치중심 정책목표는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방식이라고 여겨지기 십상이다.
정부와 기업의 관계도 재설정될 필요가 있다. 민간 주도의 기술혁신이 성장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우선 계획경제적 마인드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가 설정하는 정책목표는 시장경제에 걸맞게 새로운 산업이 자생적으로 창출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시장에서 기업 활동의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을 발굴해 제거하는 방향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계획경제가 없다. 실리콘밸리의 AI 혁신도 미국 연방정부나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실리콘밸리 지역을 타깃으로 추진한 정책산물이 아니다. 그곳에는 새로운 시장과 혁신, 기술 그리고 이러한 요소를 결합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기업가와 기업문화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경제·산업 강국의 이미지는 계획경제적 마인드와 정책 노력 없이는 도저히 이루기 어려운 눈부신 성과였다. 그러나 앞으로 이루어야 할 우리나라의 산업·경제 미래는 정부의 계획경제 마인드만으로는 그릴 수 없는 영역이다.
이제는 시장경제의 역동성과 창조성에 더 많은 역할을 맡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방향도 수치 중심의 계획경제 틀에서 벗어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고 기업이 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정책 어젠다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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